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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자연과 인문의 조화) 중국의 보물섬 대만(台灣, Taiwan)의 동쪽 해안은 태평양과 마주한 산간지대로 그 아름다움은 어느 시인이 쓴 시를 연상시킨다. "바다를 마주한 곳, 따뜻한 봄날 꽃이 만발하네". 사람들은 대만은 사람을 잡는 땅이라고들 말한다. 그것은 대만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기 때문만은 아니라 고요한 바다와 순박한 민풍이 산수에 아름다움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대만에서는 바다와 대화하고 유구한 역사문화와 교류하면서 심플한 생활을 느낄수 있다. 도시에서 예술적 영감을 찾지 못한 예술인들이 바다와 산 사이에서 자연이 주는 창작의 원동력을 찾는다. (사진설명: 대만의 동부지역) 사회가 고속도로 발전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젯날의 소박함을 지키고 있는 대만의 동부지역에서는 번화함과 모던함을 찾아볼수 없다. 심지어 전기화철도도 없지만 그 때문에 자연이 더욱 아름답다. 대북(台北)에서 대만 동쪽의 대동(台東)까지 가는데 열차로 6시간이 소요되며 두 지역을 왕복하는 항공편은 더욱 적다. 따라서 이 곳을 찾는 관광객수가 적을수밖에 없음으로 대동에 이르면 땅이 더 넓어 파도소리도 더욱 우렁차다. 대만의 고유한 역사를 기록한 가장 완정한 신석기 시대 유적을 보유한 대동의 도란산(都蘭山)일대는 신 이민자들의 서식지이다. 도란산 기슭에 산재한 도란촌에서 가장 삐어난 경관은 열애에 빠진듯한 산과 바다이다. (사진설명: 도란촌의 바다) 도란촌의 나지막한 언덕에 서면 저 멀리 끝간데 없이 펼쳐진 태평양이 가까운 도란산과 손에 손 잡은 모습이 푸른 하늘아래 볼수록 장관이고 보면 볼수록 따뜻한 감을 준다. 도란산 기슭의 바닷물도 대만의 다른 지역에 비해 다르다. 흑조가 경유하는데다 해저의 지질구조가 복잡한 원인으로 바닷물이 다양한 색상을 자랑한다. (사진설명:...
판다번역 2011.11.09 추천 0 조회 2303
(사진설명: 살찐 흑룡강 삼강벌판) 중국 최북단의 흑룡강(黑龍江, Heilongjiang)은 북국의 풍광을 자랑하는 신기한 땅이다. 아름다운 산수가 펼쳐지고 원생태 숲과 넓은 대초원, 지구의 허파격인 습지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2009년부터 흑룡강성에서는 오대연지(五大連池), 경박호(鏡泊湖), 야부리(亞布力), 탕왕하(湯旺河), 북극촌(北極村) 등 관광지를 중심으로 12개의 중점 관광명소 건설을 시작해 흑룡강의 매력을 더욱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설명: 흥개호의 철새들) 흑룡강 동쪽에 위치한 흥개호(興凱湖)는 중국과 러시아 국경에 자리잡은 담수호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흥개호는 조류의 극락으로 되어 떼를 이룬 철새들이 불원천리 찾아와 둥지를 틀고 살거나 북행길의 쉼터로 잠간 쉬어가기도 한다. 습지에서 새구경을 하고 호수에서 배놀이를 하며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로 맛 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흥개호의 대표적인 체험관광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넓은 벌판속에 바다같이 큰 호수가 있고 그 호수에 수를 헤아릴수 없이 많은 새들이 사는 경관은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그 속에서 북대황(北大荒)과 그 벌판 검은 땅의 정을 느낄수 있다. (사진설명: 흥개호의 겨울) 겨울이 되면 흥개호는 또 다른 경관을 연출한다. 꽁꽁 언 흥개호의 수면위에는 두터운 솜이불같은 눈이 부드럽게 깔려 있고 불어오는 북풍이 그 눈으로 쉬지 않고 호수위를 달리는 많은 은색의 용을 만든다. 호수기슭의 백사장에서 가끔 작은 동물의 발자국을 볼수 있고 갈대가 무성한 호심의 풀더미에는 다양한 새둥지들이 가득해 지난 여름에 이 곳이 조류의 극락이었음을 말해준다. (사진설명: 흥개호의 겨울철 어로) 겨울철에 흥개호의 또 다른 볼거리는 겨울철 어로작업이다. 얼음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판다번역 2011.11.04 추천 0 조회 2765
(사진설명: 아름다운 오운산 엽차공원) 중국 중부의 호북(湖北, Hubei)성에는 오운산(烏雲山)이라는 푸른 산이 있고 그 산에는 중국 최초로 다도를 테마로 한 엽차공원이 있다. 이 엽차공원은 2006년에 중국 농업관광시범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깊은 산속에서 차를 맛 보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시골음식을 먹는 것은 오운산 관광에서 빼놓을수 없는 코스로 되었다. 해마다 오운산을 찾는 관광객은 연 20여만명에 달하고 그 중에는 많은 외국인도 있다. 관광객들은 오운산에서 향기로운 차를 맛 보는 동시에 차나무밭에서 직접찻잎을 따고 가공실에서 엽차로 가공하면서 노동의 즐거움을 만끽할수도 있다. (사진설명: 오운산 엽차공원의 차나무밭) 산속에 난 길을 따라 오운산엽차공원에 들어서면 뭇 산의 품속에 안긴 차나무밭에 푸르름이 가득하다. 그 사이로 붉은 기와를 떠이고 하얀 벽을 가진 양옥들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찻잎을 따는 여성들의 붉은 옷 또한 유난히 환하다. 발아래로는 거울같이 맑은 호수물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거꾸로 비껴 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수려한 산수와 활력있는 인문경관이 서로 어울려 오운산 엽차공원의 독특한 매력을 펼쳐보인다. (사진설명: 오운산의 차나무밭) 오운산의 차가 유명하게 된데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1900년대의 청(淸)나라때 건륭(乾隆)황제가 사복을 하고 오운산의 한 시골집에 이르게 되었는데 목이 말라서 자체로 만든 차 한잔을 마시게 되었다. 그 순간 온 입안에 차의 향기가 가득해 건륭제는 엄지를 내들었고 그 때로부터 오운산의 차는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최근에 와서는 경작지가 적고 좋은 차가 나는 오운산의 특징을 살려 엽차와 연관된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사진설명; 오운산의 폭포) 오운산에는 엽차외에...
판다번역 2011.11.04 추천 0 조회 2758
(사진설명: 아라산의 사막과 호수) 중국 북부의 내몽골자치구 아라산(阿拉善)은 장수하는 백양나무 호양(胡楊)이 자라는 고장이고 사막의 쪽배 낙타의 고향이다. 망망한 사막에 모래산이 우뚝 우뚝 솟아 찬란한 석양아래 금빛으로 빛나면서 아늑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바단지린(巴丹吉林)과 텅거리(騰格里), 우란부허(烏蘭布和) 등 세 개의 사막으로 구성된 아라산은 중국에서 두번째로 큰 사막이다. 사막에서 첫번째 볼거리는 당연하게 호양이라고 하는 사막의 백양나무이다. (사진설명: 사막의 백양나무 호양) 사막에만 있는 백양나무 호양은 삼엽수(三葉樹)라고도 한다. 봄이면 나뭇잎이 버드나무잎같이 가늘고 여름이 되면 둥글고 크게 되었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갸날픈 단풍나뭇잎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호양은 생명력이 강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천년동안 살고 죽어서도 천년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쓰러진 뒤에도 천년동안 썩지 않는다는 설을 통해 사막의 백양 호양의 생명력을 알수 있다. 아라산에는 세계 3대 호양림으로 공인되는 어지나(額濟納)가 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끝간데 없이 펼쳐진 백양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금빛의 바다를 형성한다. (사진설명: 단풍 든 호양) 2000년부터 어지나에서는 가을에 호양관광문화제를 개최해 내외 관광객과 촬영애호가들에게 좋은 선물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축제에는 약 20만명의 촬영가들이 상주인구 2만명미만인 어지나를 찾아 성황을 이루었다. 호양은 사막에서 자라지만 보통 물가에 자리를 잡는다. 어지나의 흑하수(黑河水)가 물량이 적어지면서 호양림의 면적이 줄었는데 최근에 인공으로 흑하수에 물을 보충해 호양의 수요를 만족시켜 호양림의 면적이 원래의 규모를 넘어 더 크게 발전했다. (사진설명: 호양과 낙타) 사막의 백양 호양은 쉽게 재배가 가능한 나무이다. 가을이 되면 열매가 바람을 따라 퍼지고 이듬해 봄이 되면 새로운...
판다번역 2011.11.03 추천 0 조회 2649
(사진설명: 장가계의 비경) 2천년전 중국 동진(東晉)때의 문인 도연명(陶淵明)이 <도화원기(桃花源記)>라는 글에서 아름다운 경치속에서 사람들이 유유히 살아가는 무릉도원을 묘사해 수천년동안 사람들은 현실속에서 그런 무릉도원을 찾아왔다. 호남(湖南, Hunan)성 장가계(張家界)에 무릉원(武陵源) 금편계(金鞭溪) 계곡이 바로 현실속의 무릉도원이다. 270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무릉원명소는 장가계 국가 산림공원과 천자산(天子山) 자연보호구, 삭계욕(索溪峪)자연보호구로 나뉜다. 1992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무릉원명소를 바라보면 불쑥 튀어오른 바위산들이 끝간데 없이 펼쳐져 첩첩함을 이루는데 마치 거대한 죽순이 속세에 내려온 듯 하다. (사진설명: 금편계 계곡) "삼천개 산봉, 팔백의 물"로 장가계 산림공원을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장가계는 황석채(黃石寨)와 금편계 계곡, 원가계(袁家界), 양가계(楊家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편계 계곡의 바닥에 금편암이라는 바위가 있고 그 바위곁으로 시냇물이 흐른다고 해서 계곡 이름이 금편계이다. 금편계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고 아무리 홍수가 져도 물이 항상 맑다. (사진설명: 금편계 계곡의 매화장) 5.7km의 계곡은 금편계를 따라 꼬불꼬불 펼쳐져 있는데 그 계곡을 걷는데 약 두시간 30분이 소요된다. 관광객의 피곤을 풀어주기 위해 현지인들은 계곡의 구간구간에 매화장(梅花桩)이라는 말뚝을 박았다. 사람들은 그 매화장을 밟으면서 쿵후를 본따기도 하고 흐르는 맑은 시냇물소리를 들으면서 계곡의 경치를 구경할수도 있다. 시냇물속에는 도롱뇽이 헤어다니고 빨갛고 푸르고 하얀 자갈이 빛을 뿌린다. (사진설명: 금편계 계곡의 사람과 원숭이) 금편계에 사는 원숭이들은 관광객을 많이 만나다 보니 이제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원숭이를 무서워한다. 시도 때도 없이 원숭이들이 튀어나와 관광객들이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을 빼앗기 때문이다. 금편계 계곡을 다녀온 사람들은...
판다번역 2011.11.03 추천 0 조회 2593
(사진설명: 장가계의 비경 중국 최초의 산림공원인 장가계(張家界)에는 기이한 바위산이 울창한 숲에 겨 비경을 이루는 명소이다. 장가계라고 하면 모두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장씨성을 가졌기 때문에 장씨가문의 땅이라고 해서 이름을 장가계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고 머리를 갸웃거린다. 장가계의 이름은 기원전의 서한(西漢)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한왕조를 세운 유방(劉邦)의 휘하에 장량(張良)이라고 하는 장군이 한 명 있었는데 유방을 도와 세상을 평정하고나서 벼슬을 그만두었다. (사진설명: 밖에서 본 황룡동) 나그네식으로 세상을 돌아다니던 그가 산 좋고 물 맑은 무릉(武陵)산맥에 이르러 그 곳에 자리를 잡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말을 타고 한 바퀴 돌며 비석을 세운 다음 그 위에 장가계라는 이름을 새겼다. 그 중 황룡동(黃龍洞)은 지하 장가계로 불릴만큼 동굴속에 다양한 경관을 가지고 있다. 황룡동이 위치한 산은 모두 속이 비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굴에서 가장 높은 천정은 산정과 17m거리에 있다. (사진설명: 황룡동 내부 전하는데 의하면 옛날 이 동굴에 노란 용이 살았다고 해서 동굴 이름이 황룡동이다. 1983년 여덟 청년이 이 동굴을 발견한 후 1984년부터 관광객들이 동굴을 관광할수 있게 되었다. 아늑한 물길과 높이 걸려 있는 폭포, 수천개의 보석같은 연못, 수만개의 석순이 모여 있는 황룡동은 지질학자로부터 "최대의 규모, 최다의 내용, 최고의 아름다움"을 가진 동굴, 세계동굴의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설명: 황룡동의 종유석) 동굴의 종유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래로부터 위로 자라는 종유석은 석순(石筍), 위로부터 아래로 자라는 것은 석종유(石鐘乳), 상하가 서로 연결된 종유석은 석주(石柱)라 한다. 해마다...
판다번역 2011.11.03 추천 0 조회 2183
(사진설명: 아름다운 부용진 일각) 연꽃의 동네 부용진(芙蓉鎭, Furongzhen)은 호남(湖南, Hunan)성 장가계(張家界)에 위치한 토가족들의 동네이다. 이천여년전 토가족의 최고 통치자인 토사(土司) 왕증(王曾)이 이 곳에 살았다고 해서 일명 왕촌(王村)으로도 불리운다. 청석길과 수상누각이 완정하게 보존된 이 곳에서 1980년대에 <부용진>이라는 영화가 촬영됐고 그로부터 내외에 알려지고 이름을 부용진으로 정하게 되었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부용진) <부용진>이라는 영화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사이에 이 소도시에서 살던 민초인물들의 운명을 적었다. 연꽃선녀로 불리우는 여주인공이 두부를 팔아 생활하는 영화를 통해 부용진이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부용진 113번지는 영화 주인공의 쌀두부 가게이다. 영화를 촬영하기전에도 이 곳은 쌀두부 가게였고 지금도 변함없이 쌀두부 가게지만 영화라는 미디어의 강한 광고효과로 인해 오늘날은 관광지로서의 역할도 한다. (사진설명: 영화에 나온 쌀두부집) 현지 토가족의 특산인 쌀두부는 말 그대로 쌀로 만든 두부이다. 맛이 상큼하고 두부결이 매끄러운 쌀두부는 참기름과 고추 등 온갖 양념으로 신 맛과 단 맛을 낸다. 두부를 먹기 좋게 잘라서 양파와 절임야채 등을 두고 그 위에 단 맛과 신 맛이 어우러진 뜨거운 국물을 부으면 그 맛에 혀가 넘어갈 지경이고 몸과 마음이 행복을 느낀다. (사진설명: 부용진의 청석길) 2.5km 길이의 부용진 옛 길은 지난 2000여년동안 보수해본적 없는 가장 완정하게 보존된 청석길이다. 청석길의 옆으로는 맹동하(猛洞河)로 불리우는 강물이 흐르며 비경을 이룬다. 별도로 이름이 없이 오리장가(五里長街)로 불리우는 부용진의 옛 길을 걸으면 세월을 거슬러 어제로 돌아간 듯 착각하게 된다. (사진설명: 부용진의 민속박물관) "토가관폭 수상누각"이라는 민속박물관이 바로 이 길에 위치해...
판다번역 2011.10.31 추천 0 조회 2955
(사진설명: 아름다운 봉황) 호남(湖南, Hunan)성 상서(湘西, Xiangxi) 토가족 묘족 자치주의 서남쪽에 창공을 날아예는 봉황모양의 산이 있다. 산의 이름을 딴 그 산 기슭의 동네 봉황옛성은 경치가 수려하고 역사가 유구하며 명승고적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청석을 깐 길과 옛스러운 성루, 명청(明淸)시기의 건물, 성을 안고 흐르는 맑은 강물이 봉황을 아늑하고 고요하게 만든다. 근대 중국문학의 거장인 심종문(沈從文)선생이 고향의 아름다움을 <변성(邊城)>이라는 책에 생동하게 그렸고 그 책이 세상에 퍼지면서 봉황은 더욱 내외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중국의 유명 화백 황영옥(黃永玉)도 온 세상을 다 돌아보고 나서 고향인 봉황에 다시 돌아와 옛 도시 봉황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남겼다. 중국 국가급 역사문화 명도시 중 하나인 봉황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풍부한 인문명소가 하나로 접목된데 있다. (사진설명: 봉황의 성과 성문) 원(元)나라때 조성된 봉황의 성은 명(明)나라때 와서 토성을 벽돌로 바꾸었으며 총 둘레 2,000m의 성위에 500m 거리로 동서남북 네 개의 성루를 쌓았다. 많은 사람들은 봉황관광의 첫 목적지로 심종문 선생의 생가를 선택한다. 이 곳에서 태어난 심종문선생은 15살때 고향을 떠나 호남일대에서 군영생활을 몇 년 하고나서 19살때 베이징(北京, Beijing)에 이르러 문학창작을 시작했다. (사진설명: 심종문 선생의 생가) 심종문선생의 생가는 대표적인 중국 남방의 사합원(四合院) 건물이다. 꽃을 조각한 아담하고 운치있는 창틀이 옛스러운 명청시기 건물특색을 다분히 보여준다. 붉은 돌을 깐 네모난 공간 천정(天井)을 사이두고 사면에 11채의 건물이 둘러서 있다. 이 건물은 청나라때인 1866년에 이 지역 제독(提督)으로 있은 심종문 선생의 한 선인이 신축했다. (사진설명:...
판다번역 2011.10.31 추천 0 조회 2478
(사진설명: 멀리서 본 승덕) 베이징(北京, Beijing)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하북(河北, Hebei)성 승덕(承德, Chengde)은 중국의 역사문화 명도시 중 하나이다. 수려한 경치와 좋은 공기를 자랑하는 이 곳에는 베이징 황실정원 이화원(颐和園)보다도 몇 배 더 큰 청(淸)나라때의 여름행궁인 피서산장과 십여채에 달하는 금빛 찬란한 황실전용 사원이 있다. 청나라때 이 곳은 베이징 버금으로 가는 정치중심지었고 해마다 여름이 되면 베이징 자금성(紫禁城)에서 겨울을 보낸 황제들이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이 곳 피서산장에 와서 여름을 보냈다. (사진설명: 목란위장의 황혼) 여름철 이 곳에서 피서를 즐긴 황제들은 집무를 보는 외 넓은 북방의 사냥터에서 사냥을 즐기기도 했고 따라서 오늘날 이 곳의 목란위장(木蘭圍場)에서는 황궁의 사냥문화를 느껴볼수 있다. 1681년에 목란위장이 형성된 후 100년동안 강희(康熙)제와 건륭(乾隆)제, 가경(嘉慶)제 등 청나라때 황제들이 도합 92차례나 이 곳에서 사냥을 즐기고 88회에 걸쳐 가을철 사냥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사진설명: 목란위장의 가을) 청나라때 황제들은 이 곳에서 사냥을 통해 군대를 훈련시킨 동시에 사냥중에 몽골 각부의 왕공두령들을 만나 민족단합의 목적을 이루었으며 그를 통해 튼튼한 북방국경을 유지하고 통일된 다민족 국가를 지켜왔다. 풀과 물이 아름다운 초원이었던 이 사냥터는 당시 인근의 몽골족 부락두령이 청나라 황제에게 준 선물이다. 사냥터의 지형과 동물의 분포에 의해 72개 구역으로 분류했다. 사냥이 시작되면 먼저 사냥터 관리 대신이 기마병을 이끌고 사전에 정해진 범위에서 포위권을 점점 좁혀나간다. 포위권이 좁아지면서 들짐승들이 좁은 공간에 모이면 황제가 첫 화살을 쏘고 이어 황태자와 왕공귀족들이 사냥을 시작한다. (사진설명: 그림으로 본...
판다번역 2011.10.31 추천 0 조회 2522
(사진설명: 아름다운 스차하이의 호수와 건물) 십찰해(什刹海) 스차하이는 베이징(北京, Beijing) 도심의 동남쪽에서 시작해 서북쪽으로 산재해 있는 호수들인 전해(前海)와 후해(後海), 서해(西海)를 통털어 이르는 말이다. 계절에 따라 푸른 물, 푸른 숲의 스차하이는 다양한 경관을 연출한다. 전해와 후해사이의 은정교(銀錠橋)에 서서 서북쪽을 바라보면 수십킬로미터밖에 뻗어 있는 베이징 서산(西山)이 한 눈에 안겨온다. (사진설명: 고요한 스차하이) 오늘날 스차하이는 아주 고요해서 700여년전에 이 곳이 번화한 국제통상의 무역항이었다고 상상할수 없을 정도이다. 베이징-항주(杭州, Hangzhou)간 대운하의 북쪽 종착지였던 이 곳에 그 때는 실크와 엽차를 가득 실은 남쪽의 상선들이 대거 정박해 있었다. 수로를 통해 북쪽까지 수송된 강남의 이런 상품은 다시 실크로드와 차마고도(茶馬古道)를 통해 서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까지 전파되었다. 그로부터 700여년이 지난 오늘 어젯날의 번화함은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번창이 남긴 그림자는 찾아볼수 있다. (사진설명: 옛스러운 회현당) 스차하이의 서쪽 기슭에 줄지어 있는 다양한 양식의 바(Bar)들사이로 고풍스러운 고건물이 보인다. 100년전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던 이 회현당(會賢堂)은 크지 않은 2층건물이지만 그때로서는 웅장한 규모였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회현당의 남쪽은 탁 트인 넓은 호수여서 전망이 아주 좋다. 레스토랑앞의 두터운 청석위에 난 차바퀴자국으로부터 과거의 번화함을 상상할수 있다. 그때로부터 백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 건물은 여전히 어젯날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설명: 연대사가 입구) 언제부터인지 스차하이는 외국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기 시작했고 따라서 다양한 바와 기념품 가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외국인들은 특히 스차하이 동쪽기슭의 연대사가(煙袋斜街)를 좋아한다. 2,300m거리의 연대사가는 스차하이로부터 가장 가까운 큰길로...
판다번역 2011.10.25 추천 0 조회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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