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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고요한 대각사)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절 대각사(大覺寺)는 도심에서 약 1시간 거리인 베이징(北京, Beijing)근교 서산(西山)에 위치해 있다. 1068년의 건물인 대각사는 옛스러운 양식과 얼룩진 건물, 키 높은 고목으로 사람들에게 세월의 풍상고초를 말해준다. 대각사에 들어서면 자연의 품속에 안긴 듯 청산녹수가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동쪽을 바라보고 앉은 절이 산발을 따라 비스듬히 뻗어 있는데 중심선상에 산문(山門)과 천왕전(天王殿), 대웅보전(大雄寶殿), 무량수불전(無量壽佛殿), 용왕당(龍王堂)이 차례로 자리잡고 있다. 역대로 보수와 확장을 거치면서 대각사는 웅장한 건물과 엄밀한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대각사에서는 또한 천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와 백여년의 수령을 가진 목련나무도 한 볼거리이다. (사진설명: 대각사 은행의 왕) 특히 해마다 10월 20일부터 11월 15일까지 사이에 대각사를 찾으면 은행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어 바람에 한들거리는 나뭇잎은 마치 노랑나비들이 나무를 둘러싸고 춤추는 듯 하다. 대각사에는 은행나무 4그루가 있다. 그 중 무량수불전의 왼쪽에 있는 천년수령의 은행나무는 은행의 왕으로 불리운다. 30m 높이에 줄기 지름 8m에 달하는 이 나무는 일여덟명이 둘러서야 그러안을수 있고 나무 그늘은 정원의 반을 덮는다. 무량수불전 오른쪽의 은행나무는 상대적으로 젊은 듯 줄기가 가늘다. 하지만 이 나무도 수령이 천년에 달한다. 이 은행의 줄기는 고목으로 변하고 그 줄기의 밑둥에서 새로운 줄기가 자라났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구자포모 은행) 대각사의 다른 두 그루 은행나무에도 스토리가 깃들어 있다. 그 중 하나가아홉 아들이 모친을 안고 있다는 구자포모(九子抱母)이다. 굵기가 다른 아홉갈래의 가지가 은행나무의 줄기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500여년 수령을 자랑하는 이 은행은 잎이...
판다번역 2011.10.25 추천 0 조회 2418
(사진설명: 아름다운 무원) 중국 중부의 강서(江西, Jiangxi)성은 관광자원이 아주 풍부하다. 천고의 명산 여산(廬山)과 도자기의 발원지 경덕진(景德鎭), 조물주가 만든 기이한 삼청산(三淸山), 민초의 명산 정강산(井岡山)외에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골 무원(婺源)도 비경이다. 중국에는 "오악을 보고나면 다른 산을 보지 않고 무원을 보고나면 다른 시골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가장 아름다운 시골 무원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사진설명: 무원의 유채꽃) 우아하고 아늑한 자연경관과 특이한 민속문화, 옛스러운 고건물 등을 보유한 무원의 아름다움은 생태와 문화의 조화, 인간과 자연의 조화, 즉 천인합일(天人合一)에 있다. 무원관광의 황금기는 3,4월의 봄이다. 봄에 무원에 가면 유채꽃이 비경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마다 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무원에 밀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사진설명: 무원의 봄) 사실 기후가 따뜻하고 공기가 습윤한 무원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계절마다 다른 경관을 자랑하며 계절에 따라 무원에서는 서로 다른 재미를 느낄수 있다. 봄에는 노오란 유채꽃속에 하얀 배꽃과 분홍빛의 복숭아꽃, 붉은 두견화, 푸른 풀과 맑은 물이 아름다운 수를 놓으면서 하얀 벽체와 검정기와의 산뜻한 가옥을 둘러싸고 산수화를 그린다. (사진설명: 무원의 가을) 여름밤에는 고요한 시골마당의 쪽걸상위에 앉아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하늘에 박힌 별의 숫자를 헤아리는 것도 번잡한 도시와는 전혀 다른 좋은 선택이 될것이다. 가을은 무원에서도 수확의 계절이다. 시골사람들은 가을의 열매를 마당에 널어두기를 좋아한다. 집집마다 건물사이에 조성된 아담한 마당에 곡식이나 빨간 고추를 널어 건조시킨다. 가을에 공중에서 무원을 내려다 보면 검정 기와사이로 노오란 곡식과 빨간 고추가 유난히 눈에 띈다....
판다번역 2011.10.22 추천 0 조회 2322
(사진설명: 아름다운 정강산) 중국 중부의 강서(江西, Jiangxi)성은 관광자원이 아주 풍부하다. 천고의 명산 여산(廬山)과 도자기의 발원지 경덕진(景德鎭), 조물주가 만든 기이한 삼청산(三淸山)외에 민초의 명산 정강산(井岡山)도 비경이다. 산 좋고 물 맑은 정강산은 순박한 민풍을 유지하고 있다. 정강산의 산 사람들은 예로부터 손님이 오면 노래를 부르고 명절때도 노래를 부른다. 산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너 한마디 나 한마디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맛 좋은 술을 마시면 그 속에 취하지 않을수 없다. (사진설명: 정강산의 봄) 정강산의 순박한 민풍은 변하지 않지만 산노래의 노랫말과 음율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교통이 불편해 세상과 동떨어졌던 어젯날 우물안의 개구리격으로 산속에서만 살던 이 곳 사람들은 기차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따라서 그 때 이 곳의 산 노래는 "고구마밥에 목탄불, 밤에는 짐승과 함께 하네"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전혀 다르다. 중국전역을 휩쓴 개혁개방의 물결속에서 정강산은 떠오르는 스타로 되었다. (사진설명: 정강산의 겨울) 어둠의 장막이 내리면 정강산에 불빛이 명멸해서 어느것이 가로등이고 어느것이 별인지 분간할수 없다. "저 멀리 거리에 불이 밝았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듯 하늘의 별무리가 내려앉은 듯 무수한 불빛이 거리를 비추네"라는 산 노래가 그 변화를 잘 말해준다. 오래동안 닫혀 있던 정강산의 산문이 열리면서 정강산은 내외의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정강산은 풍부한 대나무 자원을 이용해 백여가지에 달하는 대나무 제품을 개발해서 해외로 수출하기도 한다. 정강산은 날마다 새로운 변화를 보인다. 땔나무를 집으로 메어 나르던 오솔길 대신 넓은 도로로 자동차들이 오가고, 고요하던 산길대신 열차가 숨가쁘게 역으로 들어온다....
판다번역 2011.10.21 추천 0 조회 2062
(사진설명: 아아한 삼청산) 중국 중부의 강서(江西, Jiangxi)성은 관광자원이 아주 풍부하다. 천고의 명산 여산(廬山)과 도자기의 발원지 경덕진(景德鎭)외 조물주가 만든 작품으로 불리우는 삼청산(三淸山)도 비경이다. 삼청산을 말할라치면 10억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지구에 아직 인류가 태어나기 전인 그 때 이 푸른 행성에서 삼청산은 푸른 바다속의 외딴 화산섬이었다. 그 뒤에 지금으로부터 8억 5천만년전에 이르러 삼청산 부근의 두 지질구조가 서로 부딪쳐 위로 솟아 오르면서 바다물이 빠지고 화산섬이 점점 위로 솟아 올아 험준한 산봉을 가진 산으로 변했다. (사진설명: 삼청산의 바위산) 이어 억년에 달하는 비바람과 지질변화를 통해 삼청산은 오늘날 아름답고 기이한 선사시대 자연경관으로 세인들앞에 우뚝 솟아 있게 되었다. 2008년 삼청산은 특이한 지질구조와 자연경관으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뭇 산봉이 하늘을 찌르고 깊은 골짜기가 아늑한 산악경관중심의 삼청산은 세계적인 화강암지형 중 모양이 다양한 산봉과 바위가 가장 밀집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설명: 음악을 감상하는 관음보살바위) 조물주가 창작한 기이한 모양의 바위들은 원래 별다른 의미가 없었으나 인류가 살면서 돌산에 생명을 부여해 이쁜 이름을 달아주고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 주었다. 관음상곡(觀音賞曲)이라는 바위산은 비파를 뜯는듯한 노인모양의 산봉과 그 뒤에 앉아서 음악을 듣는듯한 관음보살모양의 바위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명소는 또한 뭇 신선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하다고 가이드들은 말한다. 꼬불꼬불한 삼청산의 산길을 걷노라면 10억년의 세월속에 자연이 만든 비경에 사람들이 "옥녀(玉女)", "신룡(神龍)", "도사(道士)", 원숭이왕 등 재미나는 이름을 붙여 자연과 인문의 교묘한 조화를 잘 보여준다. (사진설명: 삼청궁 일각) 삼청산의...
판다번역 2011.10.19 추천 0 조회 2216
(사진설명: 이쁜 도자기들) 중국 중부의 강서(江西, Jiangxi)성은 관광자원이 아주 풍부하다. 천고의 명산 여산(廬山)외에도 도자기의 발원지 경덕진(景德鎭)이 내외 도자기의 달인들이 너도 나도 찾는 성지로 부상하고 있다. 천여년의 도자기 문화가 이어지는 경덕진은 중화문화의 보고이다. 차이나를 대문자로 쓰면 중국을 의미하고 소문자로 쓰면 도자기를 뜻한다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다 아는 상식이다. 경덕진은 과거에 신평(新平)이라고 부르다가 당(唐)나라때 창남(昌南, Changnan)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송(宋)나라때에 이르러 경덕진의 도자기가 황궁에 납품되었고 송나라 황제가 경덕진이라는 이름을 하사하면서 지금까지 경덕진으로 불리우고 있다. (사진설명: 산수화 도자기) 경덕진이라는 이름을 가지기 전, 당나라때 도자기가 서방으로 전파되었고 서양인들이 "이렇게 이쁜 물건이 어디서 난것이냐"고 물었고 그에 "창남에서 났다"고 대답하면서 도자기는 서양에서 차이나(china)로 불리우고 중국도 차이나(CHINA)로 부르게 되었다. 중국 각지의 도자기 기법을 모아 최고의 도자기 생산기지로 된 경덕진의 도자기 역사는 한(漢)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나라전까지 경덕진의 도자기는 황궁에 납품하는 외 중국 전역은 물론 멀리 해외에까지 전파되었다. (사진설명: 모던한 도자기) 품목별로 도자기들이 상선에 실려 창강(昌江)을 통해 파양호(鄱陽湖)를 거쳐 장강(長江)의 물길로 세계각지로 수송되었고 따라서 이 수송로는 해상에 도자기의 길, 차이나 로드를 형성했다. 바다를 통한 이 차이나 로드는 중국 중원지역에서 서북쪽으로 유럽까지 뻗은 육지의 실크로드와 함께 동서방 문화 교류의 중요한 도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백년전 외국인들은 정교한 도자기를 통해 중국을 알기 시작했다. 그 때외국인들은 도자기에 그려진 중국식 정원과 인물, 스토리들을 너도나도 본땄으며 집안에 중국 도자기를 두는 것을 신분과 부의 상징으로 여겼다. (사진설명: 경덕진의...
판다번역 2011.10.19 추천 0 조회 3943
(사진설명: 태극무늬의 낙등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아흔 다섯번째는 천년역사의 바이족 동네 낙등(諾鄧, Nuodeng)촌이다. 낙등촌에 들어서면 마치 살아 있는 역사책을 읽는 듯 기이한 건물과 다채로운 풍속을 통해 낙등촌 천년의 문화를 느낄수 있다. (사진설명: 낙등촌의 거리와 건물과 고목) 낙등촌은 1300여년전의 당(唐)나라때 조성되어 지금까지 이름도 바꾸지 않고 동네는 더욱 드팀없이 똑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금업으로 인해 발전해온 낙등촌은 오래동안 소금가공을 주로 해왔다. 최근에 이르러 각지에서 소금업이 발전하면서 소금이라는 낙등촌의 핵심산업이 무너지고 따라서 낙등촌은 세상뒤에 모습을 감추면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사진설명; 어젯날 소금을 만들던 우물터) 오늘날 낙등촌에는 소금을 생산하는 우물이 하나만 남아 있는데 그것도 주변에 항상 습하고 가끔 건조한 곳에 하얀 소금알이 나타나 고대 중국의 소금무화를 연구하는 교재로 될뿐이다. 명청(明淸)시기에 건설한 낙등촌의 고건물은 모두 산세를 따라 산언덕에 첩첩 자리를 잡고 있다. 경사도가 급한 언덕이라 윗쪽의 집은 항상 아랫쪽 집의 지붕과 나란히 한다. (사진설명: 낙등촌의 건물들) 낙등촌의 가옥은 마당을 사이두고 사면에 건물이 있는 사합원과 건물 한채만 지은 구도, 조벽뒤에 세 겹의 건물이 있는 구도, 마당 다섯개를 가진 사합원 구도 등 중국고대의 전통적인 건축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산발을 따라 비스듬히 조성되었기 때문에 낙등촌의 건물은 모두 경사도에 따라...
판다번역 2011.10.17 추천 0 조회 1907
(사진설명: 멀리서 본 백무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아흔 네번째는 하얀 안개의 동네 백무(白霧, Baiwu)촌이다. 꿈속의 선경 백무촌에 들어서면 뒤에는 원숭이 모양의 산봉이 드러누워 저 멀리 금사강(金沙江)을 바라보고 앞쪽에는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다. (사진설명: 백무촌의 고건물 백무촌은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전에 동네가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면서 풍부한 문화유산과 많은 유적을 보유하고 있다. 백무촌에 보전된 옛 가옥만 해도 3천여채에 달한다. 명청시기 백무촌은 아주 번화해서 각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동광을 구입했으며 따라서 많은 상인들이 이 곳에 회관과 사당, 절 등을 지었고 많은 가게를 차렸다. (사진설명: 오늘날의 백무가 백무촌의 백무가(白霧街)는 줄곧 인근에서 중요한 정치, 경제, 문화의 거리였고 주요한 고건물들이 대부분 이 거리의 양쪽에 집중되어 있다. 한 일자로 뻗어 있는 2km 길이의 백무가는 옛적에 동광을 수송하던 도로이기도 하다. 거리의 양쪽에는 수불사(壽佛寺)와 장성궁(張聖宮), 만수궁(萬壽宮), 삼성궁(三聖宮), 재신묘(財神廟), 태양궁, 사당, 상평창(常平倉), 양제원(養濟院), 무대건물, 성당을 비롯해 24채의 고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와 함께 많은 가옥과 여인숙, 역참, 마구간 등 건물들이 모여 기능이 구전한 장터를 이룬다. 백무촌에는 1860년에 쌓은 성이 있다. 백무가의 주요 건물을 둘러싸고 길이 300m, 너비 200m 정도의 장방형 모양으로 쌓여져 있는 성의 높이는 약 6m, 두께는 3m에 달한다. 성의 동쪽에 관문을 두고 남쪽과...
판다번역 2011.10.17 추천 0 조회 1984
(사진설명: 멀리서 본 이사라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아흔 두번째는 이족의 첫 동네 이사라(迤沙拉, Yishala)촌이다. 이사라촌의 넓은 포도밭에 서면 벌판에서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오고 은은한 선율과 함께 이족처녀의 귀맛좋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사진설명: 고요한 이사라촌) 이사라촌은 지금으로부터 600여년전인 명(明)나라때 조성된 마을이다. 이족언어인 이사라의 그 뜻은 "물이 새는 곳"이다. 마을 총 인구의 96%가 이족인 이사라촌은 중국에서 이족의 첫 동네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유구한 이민역사와 특이한 역참(驛站)의 지위로 인해 이사라촌은 중국의 이민사와 서남역도사, 민족촌사, 이족과 한족의 교류사 등을 한 몸에 모은 살아 있는 교과서로 부상했다. (사진설명: 이사라촌의 건물) 크지 않은 이사라촌에는 이족과 한족문화의 융합을 보여주는 유적과 제갈공명이 군사를 주둔시켰던 장소, 남부 실크로드 연선의 역참, 포도밭, 특이한 고대 음악, 풍부한 음식문화, 다른 지방의 이족과 전혀 다른 특이한 이족의상 등 많은 역사문화보물들이 남아 있다. 남부 실크로드로 불리우는 고대 중국 서남역도(驛道)는 사천(四川, Sichuan)성의 소재지 성도(成都, Chengdu)에서 시작해 운남(雲南, Yunnan)을 거쳐 버마에 이른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이사라촌 일각) 그 중 이사라촌은 사천경내에서 운남경내로 진입하는 관문이다. 전한데 의하면 그 때 이사라촌의 나루터에는 사천과 운남이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로 "촉진교회"라는 네 글자를 새긴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이사라촌의 이족 중에 한족의 성씨인 모(毛)씨나 장(張)씨 성을 가진 사람이...
판다번역 2011.10.10 추천 0 조회 1969
(사진설명: 산허리에 위치한 토치카식 건물들)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아흔 한번째는 토치카식 건물의 동네 막락(莫洛, Moluo)촌이다. 막락촌에는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특이한 티베트식 돌집과 웅장한 규모와 다양한 양식, 강한 방어성을 자랑하는 토치카식 건물이 집중되어 있다. (사진설명: 산위에서 본 막락촌) 대도하(大渡河)기슭의 막락촌은 삼면에 높은 산봉이 둘러선 협곡지대에 위치해 있다. 티베트족과 소수의 한족이 살아가는 이 동네는 티베트의 민족전통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사서에 의하면 이 곳은 옛날에 동녀국(東女國)이었다고 한다. 동녀국에서는 국왕과 관리들이 모두 여자였고 남자는 정치에 종사하지 못하고 전쟁과 농사에만 참여했다고 한다. 여자가 적고 여자의 위상이 높았기 때문에 그 때 이 곳에서는 여자 한 명이 여러 명의 남편을 거느렸고 국왕은 더 말할것도 없었다. 당시 4만여가구에 달하는 동녀국의 사람들은 높은 토치카식 건물에 살았는데 국민은 6층미만의 건물에 살고 국왕만 9층건물에 살았다. (사진설명; 토치카식 건물 조루) 조루(碉樓)라고 하는 건물은 적을 방어하기 위한 토치카식 건물이다. 이런 조루는 관문용으로 사용되는 건물과 연대용, 산채용과 가족용 등 다양한 용도로 분류된다. 키 높은 토치카식 건물앞에 주거용 낮은 건물이 있는 것이 가족용 조루이다. 가족용 조루는 대부분 작고 아담하게 지어져 있다. 가족용 조루는 평소에는 창고로 사용되다가 산적이 출현할 경우 은신처로 된다. 산채용 조루는 마을을 보호하는데 사용되고 관문용 조루는...
판다번역 2011.10.10 추천 0 조회 1731
(사진설명: 아름다운 마두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여든 여덟번째는 맑은 물가의 고건물동네 마두(馬頭, Matou)촌이다. 부의족들이 살아가는 마두촌은 아름다운 산수속에서 부의족 문화와 한족문화가 하나로 어우러진 동네이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마두촌) 7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두촌은 넓은 벌판을 마주하고 백화산(百花山)기슭 청룡하(靑龍河) 물가에 위치해 있다. 마두촌에는 명청시기의 고건물 90여채와 50m의 담벽, 1000m에 달하는 고도(古道)가 있으며 절과 돌다리, 무대건물, 옛 우물, 홍군표어, 고목 등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자갈을 깐 동네의 골목은 대부분 사람 인(人)자형으로 뻗어 있고 명청시기의 가옥은 돌담을 쌓은 사합원이나 삼합원구도이다. 안채와 양쪽에 별채를 거느린 구도와 안채만 있는 건물은 동네 외곽지에 위치해 있다. (사진설명: 마두촌의 창틀) 건물들에는 복과 장수, 즐거움, 영화, 다자다복 등을 의미하는 조각물들이 즐비하고 용과 봉황, 만(卍)자형의 무늬가 특히 많다. 부의족들은 만(卍)자가 물과 연관된다고 인정하면서 물가에 터를 잡고 만자를 많이 사용한다. 청나라 말에 지은 송영종택(宋榮宗宅)은 안채 두 줄과 조벽으로 구성된 삼합원이다. 돌을 깐 아담한 정원과 돌로 만든 복도, 날아갈듯한 처마, 정교한 조각, 문앞의 돌사자 등이 완정하게 남아 있으며 문의 내벽에는 홍군의 표어가 지금도 잘 보인다. (사진설명: 마두촌의 홍군표어) 마두촌은 중국 혁명시기 홍군장정때 경유한 곳의 하나이고 따라서 마두촌에는 홍군표어 20여폭이 남아 있다. 1935년 홍군은 이 곳에 이르러...
판다번역 2011.10.07 추천 0 조회 2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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