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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아늑한 장곡영촌 일각)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예순 여덟 번째는 강남의 첫 동네 장곡영(張谷英, Zhangguying)촌이다. 웅장한 규모와 교묘한 구도, 정교한 디자인의 장곡영촌은 건축예술과 민속문화, 종교문화, 농경문화를 한 몸에 안은 명청시기의 동네이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장곡영촌) 600여년전의 명(明)나라때 형성된 장곡영촌은 산 좋고 물 맑은 청산녹수의 동네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풍수학자 장곡영이 전란을 피해 가족을 이끌고 이 곳에 이르러 집을 짓고 정착했는데 가문이 번창하여 그의 자손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고자 그의 이름을 동네이름으로 했다고 한다. 장곡영촌은 반달모양으로 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중심건물은 뒤에 청산을 업고 앞쪽으로는 맑은 위계하(渭溪河)를 마주하고 있다. 건물의 정문에는 태극도안이 가문의 평안과 부귀를 지키고 있다. (사진설명: 장곡영촌의 연못과 용주석) 정문을 넘어서면 마당의 양쪽에 용의 두 눈을 의미하는 연못 두 개가 보인다. 이 두 연못은 풍수학적으로 중요한 역할를 하는 동시에 화재시 진화용으로도 사용된다. 동네를 관통하는 위계하에는 크고 작은 돌다리 47개가 놓여 있고 강물의 양쪽에는 높고 낮은 건물들이 첩첩하게 모여서서 "시냇물은 계단아래로 흐르고, 문은 물가를 향해 열려 있다." (사진설명: 물가의 회랑) 물가에는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청석을 깐 회랑을 조성하고 모든 집과 모든 골목을 하나로 연결시킨다. 따라서 이 곳 주민들은 이 회랑을 이용해 맑은 날에는 햇빛을 피하고...
판다번역 2011.08.31 추천 0 조회 2062
(사진설명: 아늑한 양하구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예순 일곱 번째는 산 허리의 토가(土家)족 동네 양하구(兩河口, Lianghekou)촌이다. 민간문화예술의 고장, 무형문화재의 동네 양하구촌에 들어서면 푸른 전야와 그 속의 가옥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가 정답게 안겨온다. (사진설명: 가까이에서 본 양하구촌) 약 이천년전의 편종(編鐘)이 발굴된 양하구촌은 토가족의 젖줄인 유수(酉水)원천지에 자리잡고 있다. 두 갈래 산발이 뻗어내린 가운에 맑은 용담하(龍潭河)가 정기를 더해준다. 푸르른 산 허리에는 점점의 별처럼 동네들이 위치해 있는데 목조건물들이 청산녹수속에서 더욱 환하게 빛을 뿌리며 "심산속인줄 몰랐더니 그림속에 살고 있는" 비경을 형성한다. (사진설명: 양하구촌의 옛 거리) 양하구의 옛 거리는 천여년전 송(宋)나라때 형성된 염화고도(鹽花古道)의 한 구간이었다고 한다. 거리의 양쪽에는 팽가채(彭家寨)를 중심으로 증가채(曾家寨), 왕가채(汪家寨), 당가평(唐家坪) 등 고상가옥들이 별이 달을 둘러선 모양을 가진다. 그밖에 옛 거리와 연결된 거리 백과패(白果坝)의 양쪽, 맑은 용담하 양안에는 부가채(符家寨)와 밤평 등 크고 작은 건물들이 진주처럼 줄줄이 늘어서 있다. (사진설명: 고요한 팽가채) 산 기슭에 위치한 팽가채는 아름다운 모양과 아름다운 공간, 아름다운 입체감, 아름다운 윤곽 등 토가족 고상가옥의 특징을 한 몸에 지닌 건물이다. 청나라때 지은 수부묘(水府廟)앞의 돌비석은 팽가채 형성초기의 건물규모와 완벽한 조직체계, 종교신항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단독건물과 연립식, 2층 건물과 3층 건물 등...
판다번역 2011.08.31 추천 0 조회 1879
(사진설명: 곤룡패촌의 골목)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예순 여섯 번째는 토가(土家)족 농가들의 동네 곤룡패(滾龍坝, Gunlongba)촌이다. 곤룡패촌에 들어서면 청석을 깐 도로들에 의해 하나로 연결된 명청(明淸)시기의 건물들이 마을 주변의 산과 물과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사진설명: 곤룡패촌의 고건물) 곤룡패촌에 남아 있는 고건물은 13곳이고 완정하게 보존된 방수는 200여칸에 달한다. 그밖에도 보탑과 향씨(向氏)사당유적, 향씨가옥유적, 도자기 유적, 옛 가구, 옛 현판 등 유물들이 많다. 넓지 않은 평지에 위치한 곤룡패촌으로는 첨룡하(尖龍河)와 양어구(洋魚溝)라는 이름의 시냇물 두 갈래가 흘러지나는데 물 색갈이 노오란 첨룡하는 노란 용이라는 의미로 황룡(黃龍)으로 불리우고 물 색갈이 맑은 양어구는 푸른 용이라는 의미로 청룡(靑龍)으로 불리운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곤룡패촌) 두 갈래 강물이 꿈틀거리는 용처럼 천갱(天坑)이라는 방죽안로 흘러든다고 해서 용이 꿈틀거리는 언제라는 뜻으로 동네 이름이 곤룡패이다. 언제의 주변에는 청룡산(靑龍山)과 필포산(筆包山), 사모산(紗帽山), 마안산(馬鞍山), 첨은산(尖銀山), 오봉산(五峰山), 외피산(外陂山), 마환산(馬環山), 보탑산(寶塔山), 노호제산(老虎諸山) 등 산봉들이 둘러서 있다. 현지인들은 동네 주변의 산모양을 이렇게 말한다. "동쪽에는 청룡이 내려다 보고(청룡산), 서쪽에는 하늘의 말이 막아서며(마안산), 남쪽에는 봉황 다섯마리가 태양을 바라보고(오봉산), 가운데는 붓과 먹이 은은하다(보탑산)". (사진설명: 곤룡패촌의 고목) 방죽에 들어서면 키 높은 고목이 태양을 가리며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곤룡패에는 수령 500년 이상의 은행이 7그루가 있다. 이런 고목은 곤룡패의 고건물과 함께 곤룡패의 유구한...
판다번역 2011.08.31 추천 0 조회 1772
(사진설명: 고요한 대여만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예순 다섯 번째는 무릉도원의 동네 대여만(大餘灣, Dayuwan)촌이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대여만촌에 들어서면 청석을 깐 골목이 꼬불꼬불 뻗어 있고 그 양켠으로 옛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하다. (사진설명: 운치 있는 고건물) 청석을 붙인 외벽과 검정기와를 얹은 날아갈듯한 지붕, 우물과 맷돌, 세월의 흔적이 역역한 정자와 벽화, 완정하지는 못하지만 정교한 목각과 편액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머나먼 어제로 부르는 듯 하다. 대여만촌에는 20여갈래의 골목사이에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명청(明淸)시기 돌집 50여채가 완정하게 보존되어 있다. 돌집의 대들보에 새긴 조각과 기둥에 그린 그림은 명청시기 휘파(徽派)건물양식을 충분히 보여준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대여만촌) 대여만촌은 자연과 가까이 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인문정신을 구현한다. 자연의 걸작인 목란산(木蘭山)의 기슭, 원초적인 계곡인 목란천(木蘭川)의 물가에 위치한 대여만촌의 문화형성에 아름다운 자연이 큰 기여를 한 것이다. 이 곳의 특이한 건물특색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앞쪽에는 담이 물을 막아서고, 뒤에는 산이 담을 둘러서며, 큰 뜰이 작은 뜰을 끼고 작은 뜰은 건물을 품에 안고 있네. 백여가구사이에 이십갈래의 골목이 얼기설기하고, 집집마다 서로 연결되며 청석길과 돌벽에 조각과 그림 또한 화려하네. " (사진설명: 옛스러운 집) 이처럼 대여만촌의 건물은 자신을 낮추며 모두를 수용하는 유교학적 사상과 한 곳에 눌러앉아 안락한 생을 보내려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소망을 보여준다. 대여만촌의...
판다번역 2011.08.27 추천 0 조회 1565
(사진설명: 소박한 임풍채의 가옥)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예순 네 번째는 붉은 돌의 옛 산채 임풍채(臨灃寨, Linfengzhai)이다. 마을안에는 명청시기의 고건물들이 첩첩하게 모여 있고 동구밖으로는 맑은 강물이 흐르는 가운데 하얀 갈대꽃이 붉은 담벽과 어울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임풍채는 백수(柏水)와 풍계(豊溪)라는 이름의 두 갈래 물길이 동네를 안고 흐르면서 마을이 물에 안긴 논과 같다고 해서 원래는 이름을 수전촌(水田村)이라 했다. (사진설명: 주가대원의 문) 저지에 몸을 담은 임풍채는 주변에 넓은 갈대밭과 대나무를 거느리고 있다. 동네에는 완정한 구도를 자랑하는 명청(明淸)시기의 사합원(四合院) 10여채와 고건물 100여채가 담과 해자, 문, 사당, 절, 우물, 다리, 묘지, 고목 등과 어울려 비경을 이룬다. 또한 옛 산채박물관과 하남 제일의 저택인 주진부(朱鎭府)를 비롯해 명청시기의 거의 모든 고건물을 볼수 있어 임풍채는 명실공히 중원(中原)지역 문화에서 귀중한 보고이다. (사진설명: 임풍채의 붉은 돌담) 붉은 돌로 동네주변에 담을 쌓았다고 해서 임풍채는 붉은 돌의 옛 산채로 불리운다. 1862년에 조성한 붉은 돌담은 불규칙적으로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동네를 안고 있다. 6m 높이에 1100m 길이의 돌담에 약 800여개의 성가퀴가 있으며 팔괘의 방향에 근거해 문 3개를 두었다. 그 중 서북쪽의 풍계를 향한 산채문은 풍계를 가까이 한 문이라는 의미로 임풍이라 하고 그로부터 동네 이름도 임풍으로...
판다번역 2011.08.27 추천 0 조회 1532
(사진설명: 첩첩한 백로의 고건물)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예순 세 번째는 강서 객가(客家)의 옛 동네 백로(白鷺, Bailu)촌이다. 유규한 역사의 백로촌에는 중국 최초의 여인사당, 중국 최초의 촌급 민속박물관 등 다양한 최초와 유일을 자랑한다. 백록촌은 북쪽에 옥병산(玉屛山)을 업고 남쪽에는 용강(龍崗)을 마주한다. 첩첩한 뭇 산봉의 다섯갈래 산맥이 백록촌에 닿아 용 다섯마리가 둘러선 오룡산형(五龍山形)의 풍수이다. (사진설명: 꼬불꼬불한 백로의 골목) 마을의 네 갈래 골목은 풍(丰)자모양으로 뻗어 있다. 백록촌은 북쪽의 고향을 떠나 남쪽나라에 이주한 객가(客家)인들이 강서에 잡은 첫 동네이다. 남송(南宋)때 동네가 형성되어 지난 800여년동안 객가인을 제외한 외부인은 없어서 백록촌은 종(鍾)씨가문의 가족촌으로 오늘까지 보전되고 있다. 정교한 조각이 화려한 문루(門樓) 69개와 넓은 면적의 명청시기 고건물이 다양한 양식을 자랑하면서 심히 장관이다. 거기다가 목각과 석각, 벽돌조각이 어울려 백록촌은 고건축문화의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불리운다. (사진설명: 우아한 무대건물) 세월의 풍상고초속에서 백록팔경은 대부분 소실되고 삼관전(三官殿)으로도불리우는 삼원궁(三元宮)만 남아 있다. 문을 지나면 무대건물이 있고 그 뒤에 정자가 있으며 정자 뒤에는 보살이 공양된 불단이 위치해 있다. 무대앞 광장이 아주 넓어 백여명이 모일수 있다. 명절이 되면 무대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평소에는 보살상앞에 향을 피우는 사람들도 많다. 1488년에 조성된 십자가(十字街)는 현재 백록촌의 주민구로 되었다. (사진설명: 왕태부인사 정문) 백록촌의 사당 중 가장 특이한 것이...
판다번역 2011.08.27 추천 0 조회 1556
(사진설명: 아름다운 나전촌 동구밖)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쉰 여덟번째는 시골정취가 짙은 옛 동네 나전(羅田, Luotian)촌이다. 인근동네와 절 만수궁(萬壽宮)사이, 남창(南昌)행 교통요충지에 위치한 나전은 예로부터 불교신자와 행상들이 필히 거쳐가는 번화한 곳이었다. (사진설명: 나전촌의 건물과 골목) 1120여년전의 당(唐)나라때 나전(羅田)출신의 황극창(黃克昌)이 난을 피해 이 곳에 이르러 고향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새로운 동네 이름을 나전이라 하였다. 오늘날도 이 곳에는 모두 황씨성만 살고 있으며 그들은 엄밀한 관리체계와 완정한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동서남북에 문을 하나씩 둔 마을에는 열 가문의 황씨들이 가족별로 나누어 살고 있다. 반들반들한 청석길과 차바퀴흔적이 역역한 거리들이 째인 구도를 자랑하는데 그 사이로 고건물과 벽돌조각, 석각, 목각 등이 옛스럽고 정교하다. 또한 골목과 거리지하에 완정하게 조성된 배수시설은 나전 선조들의 총명과 지혜를 충분히 보여준다. (사진설명: 나전촌의 골목과 가게) 나전촌에는 세월의 풍상고초를 겪은 옛 골목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3m 너비에 400m 길이의 이 골목에는 돌을 깔았고 지하에는 하수도를 팠다. 이 골목은 옛날 인근 동네의 불교신자들이 절을 찾아갈때 거쳐가던 길이었으며 남창까지 통하는 고도(古道)의 한 구간이기도 했다. 최고 번성기에 나전에는 철공소와 식품가게, 양조장, 약방, 금은장신구방, 전당포 등 백여개의 상가가 운집했었다. "앞쪽 거리에는 온갖 비단, 뒷쪽 거리에는 창고, 위쪽 거리에는 소금과 잡화, 아래쪽 거리에는 술과...
판다번역 2011.08.26 추천 0 조회 1424
(사진설명: 아름다운 나전촌 동구밖)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쉰 여덟번째는 시골정취가 짙은 옛 동네 나전(羅田, Luotian)촌이다. 인근동네와 절 만수궁(萬壽宮)사이, 남창(南昌)행 교통요충지에 위치한 나전은 예로부터 불교신자와 행상들이 필히 거쳐가는 번화한 곳이었다. (사진설명: 나전촌의 건물과 골목) 1120여년전의 당(唐)나라때 나전(羅田)출신의 황극창(黃克昌)이 난을 피해 이 곳에 이르러 고향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새로운 동네 이름을 나전이라 하였다. 오늘날도 이 곳에는 모두 황씨성만 살고 있으며 그들은 엄밀한 관리체계와 완정한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동서남북에 문을 하나씩 둔 마을에는 열 가문의 황씨들이 가족별로 나누어 살고 있다. 반들반들한 청석길과 차바퀴흔적이 역역한 거리들이 째인 구도를 자랑하는데 그 사이로 고건물과 벽돌조각, 석각, 목각 등이 옛스럽고 정교하다. 또한 골목과 거리지하에 완정하게 조성된 배수시설은 나전 선조들의 총명과 지혜를 충분히 보여준다. (사진설명: 나전촌의 골목과 가게) 나전촌에는 세월의 풍상고초를 겪은 옛 골목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3m 너비에 400m 길이의 이 골목에는 돌을 깔았고 지하에는 하수도를 팠다. 이 골목은 옛날 인근 동네의 불교신자들이 절을 찾아갈때 거쳐가던 길이었으며 남창까지 통하는 고도(古道)의 한 구간이기도 했다. 최고 번성기에 나전에는 철공소와 식품가게, 양조장, 약방, 금은장신구방, 전당포 등 백여개의 상가가 운집했었다. "앞쪽 거리에는 온갖 비단, 뒷쪽 거리에는 창고, 위쪽 거리에는 소금과 잡화, 아래쪽 거리에는 술과...
판다번역 2011.08.26 추천 0 조회 1744
(사진설명: 보루식 건물 조루가 많은 자력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쉰 한번째는 보루식 건물의 동네 자력(自力, Zili)촌이다. 보루식 건물 조루(碉樓)가 가장 유명한 곳은 광동(廣東), 광동에서도 개평(開平)이며 개평에서는 자력이다. 산적이 많던 1920년대에 외국에 나갔던 화교들이 고향에 돌아와 외국건물의 양식과 현지건물을 접목하고 방어에도 좋은 돌로 된 보루를 지었는데 이름하여 조루이다. (사진설명: 자력촌의 보루식 건물들) 청나라때 조성된 자력촌에는 1919년의 양한(養閑)별장과 1920년의 구안거로(球安居盧), 1921년의 운환루(雲幻樓), 1922년의 거안루(居安樓), 1923년의 요광(耀光)별장, 1924년의 죽림루(竹林樓)와 진안루(振安樓), 1926년의 안로(安盧) 등 15채의 보루식 건물 조루가 보존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조루로는 1925년의 명석루(銘石樓)와 1930년의 엽생거로(葉生居盧), 1934년의 관생거로(官生居盧)이다. 축조역사가 가장 긴 조루는 1919년의 용생루(龍生樓)이고 가장 젊은 조루는 1948년의 담로(湛盧)이다. (사진설명: 자력촌 동구밖 조루들) 자력촌 동구밖의 고목을 지나 동네에 들어서면 한 곳에 모여 있는 보루식 건물 조루가 한 눈에 보인다. 청색의 벽돌을 쌓아 만든 건물에는 조각과 벽화가 흘러간 세월을 말해준다. 조루들의 만남의 장소를 지나 넓은 탈곡장을 거치면 그 뒤로 푸른 숲속과 맑은 호수가 여기저기에서 십여채의 조루나 양옥들이 아담한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설명: 밖에서 본 명석루) 철근으로 지어진 보루들이 다양한 모양과 높고 낮은 키로 조화를 이룬다. 이런 건물들은 대부분 건물 하단은 심플하게 장식되어 있는 반면에 건물의 상단은...
판다번역 2011.08.25 추천 0 조회 2072
(사진설명: 멀리서 본 천보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예순 번째는 강서의 첫 동네 천보(天寶, Tianbao)촌이다. 작은 다리밑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강가에 아담한 집들이 있는 천보촌은 길 2갈래, 골목 48갈래, 우물 48개를 거느린 대나무 담을 두른 마을이다. (사진설명: 천보촌의 건물과 골목) 18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천보촌은 청산의 품속에 안겨 있고 동네주위로는 해자가 있고 북쪽에는 1500m에 달하는 옛성 유적이 고풍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을에는 명청(明淸)시기의 고건물 170여채가 남아 있고 돌을 깐 골목 48갈래가 꼬불꼬불한 물길과 함께 동네를 거미줄처럼 감싸고 있다. 그 사이로는 고목과 옛 우물, 다리, 편액 등 풍부한 유적이 사람들에게 천보촌의 어제를 이야기하는 듯 하다. (사진설명: 천보촌 사당건물 내부) 천보촌에 들어서면 책의 향기가 풍겨오고 사처에 오래된 녹나무와 옛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사이로 꼬불꼬불한 골목이 찬란했던 천보촌의 어제로 이끈다. 천보촌의 건물은 사당과 누각, 절, 관가, 일반 가옥, 패방, 탑 등 다양한 건물기능을 자랑하며 키 높은 외벽과 건듯 들린 처마에 목각, 석각, 벽돌조각 등이 화려하다. 높은 건축기법과 교묘한 건물구도는 오늘날 현대적인 건축가들도 감탄하게 만든다. (사진설명: 문밖에 세우는 문당) 중국의 고건물에서 문당(門當)과 호대(戶對)는 정문의 한 부분이다. 문당이란 양쪽 문틀에 새긴 벽돌조각 혹은 목각을 말하는데 가문의 번창함을 의미한다. 호대란...
판다번역 2011.08.25 추천 0 조회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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