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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용진교와 대괴각)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마흔 여덟 번째는 굴껍질로 지은 집의 대령(大嶺, Daling)촌이다. 대령촌에는 아담한 양옥과 굴껍질을 붙인 벽이나 해초로 지붕을 만든 등 역사의 흔적과 자연의 숨결이 느껴지는 건물이 함께 한다. (사진설명: 진씨종사 정문) 1119년에 조성된 대령촌의 비조는 허(許)씨가문이지만 지금은 진(陳)씨성을 가진 촌민이 더욱 많다. 뒤에 산을 업고 맑은 시냇물을 마주한 대령촌에는 물위에 드러누운 다양한 다리와 아아한 탑, 옛스러운 사당건물과 문루, 골목, 고목 등이 많은 볼거리를 만든다. 대령촌에는 백석가(白石街)가 다섯갈래나 있다. 1897년에 거액을 들여 조성한 이런 골목에는 전부 커다란 하얀 돌을 깔았다. 골목에는 또한 용진가(龍津街) 문루와 요덕리문(耀德里門), 상달리문(上達里門)을 비롯해 많은 문들이 남아 있다. (사진설명: 진씨대부조사의 굴껍질 외벽) 골목의 양켠에 위치한 모던한 새로운 건물들 사이로 굴껍질을 붙여 만든 사당건물인 진씨대부조사(陳氏大夫祖祠)와 그 맞은켠에 위치한 고파옥(姑婆屋)이 유난히 옛스럽다. 대령촌을 흘러지나는 옥대하(玉帶河)위에는 다리가 많은데 그 중 붉은 사암을 깔아 만든 룡진교(龍津橋)가 대표적이다. 청나라때 축조한 아치형 다리인 룡진교는 교각의 양쪽에 비스듬한 둑을 형성해 교각에 대한 강물의 압력도 줄이고 선박이 교각과 충돌하는 것도 방지한다. (사진설명: 가까이에서 본 접룡교) 난간에는 명(明)나라때 풍이 다분한 무늬가 새겨져 있고 가운데는 잉어가 용문을 뛰어넘는 그림이 조각되어 있으며 교각중앙에는 힘있는 필체로 룡진(龍津)이라는 두 글자가...
판다번역 2011.08.04 추천 0 조회 1883
(사진설명; 푸른 물의 벽강)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마흔 일곱 번째는 푸른 물 황금빛 건물의 동네 벽강(碧江, Bijiang)촌이다. 황금빛 건물과 흙집, 굴껍질로 된 벽, 벽돌조각의 벽강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산수속에서 유구한 역사와 어젯날 산업혁명의 그림자를 엿볼수 있다. (사진설명: 푸른 숲의 벽강) 송(宋)나라때 동네가 형성되었고 마을 곁에 벽강(碧崗)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고 해서 푸른 언덕이라는 의미로 벽강이라 불렀는데 후에 푸른 물이라는 벽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명청(明淸)시기에 이르러 벽강에서는 제지업과 쌀거래가 앞서가고 절임죽순이 유명해지게 되었으며 인근지역을 커버하는 화물중계소의 하나로 부상했다. (사진설명; 벽강의 골목과 건물) 경제와 문화의 발달이 풍부한 고건물자원의 형성을 유발해 벽강에는 금루(金樓)와 니루(泥樓), 직방제(職方第), 모당소공사(慕堂蘇公祠), 오간사(五間祠), 태흥대가(泰興大街)의 사당건물군락, 벽돌조각의 조벽, 소삼흥(蘇三興) 저택, 덕운교(德雲橋)를 망라해 일반 가옥과 사당건물, 종교문화, 근대 상공문화를 보여주는 문화재들이 아주 많다. 벽강의 고건물속에 들어서면 400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명(明)나라와 청(淸)나라의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벽강 고건물의 특징은 옛스럽고 방대하며 정교하고 진실하다는 것이다. (사진설명: 굴의 껍질로 만든 건물의 외벽) 벽강의 고건물은 외벽에 굴의 껍질을 붙이고 바닥에는 수공으로 반들반들하게 만든 벽돌을 깔았으며 지붕벽은 솥의 손잡이처럼 둥글게 위로 올라가 옛스럽고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방대하다는 특징은 조각에서 볼수 있다. 목각과 석각, 벽돌조각을 망라해 거의 모든 조각물이 다 갖추어져 있고 심지어...
판다번역 2011.08.04 추천 0 조회 2052
(사진설명: 대기촌 정씨공사 정문)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마흔 여섯 번째는 특이한 건물의 동네 대기두(大旗頭, Daqitou)촌이다. 우아한 대기두촌에 들어서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듯 착각하게 된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대기촌) 솥의 손잡이 모양의 지붕벽에 청색의 벽돌로 된 똑 같은 건물 200여채가 바둑판처럼 질서 있게 줄지어 있고 임의의 건물에 들어가 봐도 건물구도 역시 거의 비슷하다. 대기두촌은 일명 정촌(鄭村)으로도 불리운다. 청(淸)나라 병부상서와 광동(廣東) 해군 제독을 지낸적 있는 1834-1896년까지의 정소충(鄭紹忠)의 생가가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아늑한 대기촌) 청나라 자희(慈禧)태후가 정소충을 아끼는 마음에서 1894년 정소충의 60세 생일때 건물을 지어 동네를 만들고 정씨성의 모든 사람이 무료로 살게 했다고 한다. 대기두촌에는 유례정공사(裕禮鄭公祠)와 정씨종사(鄭氏宗祠)를 망라한 사당건물, 진위장군가묘(振威將軍家廟) 등 가문의 절, 상서제(尙書第)와 건위제(建威第)를 비롯한 관저, 탈곡장, 광장, 연못 등이 똑 같은 풍격으로 조화로운 구도를 형성한다. (사진설명: 하수도 입구) 그밖에 석각과 목각, 벽돌조각, 벽화 등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정교한 기법으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대기두촌의 여러 곳에서 앞쪽은 열려 있고 뒷쪽은 막힌 빗 모양으로 된 동네의 구도를 볼수 있다. 동네 자체가 앞쪽이 낮고 뒷쪽이 높으며 집집마다의 뜰도 뒤로 올라가면서 비스듬히 경사를 이룬다. 이는 배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건물과 건물사이의 청석길에도 가끔 동전만큼 크기의 구멍을 내서 빗물이...
판다번역 2011.08.04 추천 0 조회 2096
(사진설명: 멀리서 본 대붕고성)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마흔 다섯 번째는 장군이 많은 대붕의 동네 붕성(鵬城, Pengcheng)촌이다. 600여년의 세월속에서도 붕성촌은 아아한 성문과 우아한 가옥, 아늑한 돌길, 장엄한 장군저택을 완정하게 보존하고 있다. (사진설명: 대붕고성 성문) 1381년에 군사시설로 축조된 붕성촌의 대붕고성(大鵬古城)은 바다길로 침입하는 왜구를 성공적으로 막으면서 이름을 날렸고 그로부터 붕성촌이 속한 심천(深圳, Shenzhen)시도 대붕의 도시로 불리운다. 대붕고성은 성문과 망루, 해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은 불규칙적인 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성안에는 동문가(東門街)와 남문가(南門街), 정가(正街) 등 세 갈래 골목이 조성되어 있다. (사진설명; 대붕고성 골목) 골목의 양켠에는 좌영서(左營署)와 참장부(參將府), 수비서(守備署), 식량창고, 군복국, 화약국, 관제묘(關第廟), 조공사(趙公祠), 천후묘(天後廟) 등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대붕고성은 기존의 구도와 성문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으며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장군저택들인 진위장군제(振威將軍第), 유기룡장군제(劉起龍將軍第)도 지금까지 남아 있다. (사진설명: 진위장군제 정문) 1844년에 지은 뢰은작(賴恩爵)진위장군제는 대붕성 남문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청나라때 관저건물이다. 대붕고성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잘 보존된 고건물인 진위장군제 문에는 청나라 도광(道光)황제가 친필로 쓴 "진위장군제"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다. 문앞에는 돌 사자 한 쌍과 무관저택임을 보여주는 돌 북이 놓여져 있다. 처마와 기둥, 대들보에는 금박칠을 하고 꽃나무와 새를 그리거나 시를 썼다. (사진설명: 진위장군제 내부) 방 아홉칸을 가진 건물 세 채로 된 안채는 장군의...
판다번역 2011.07.29 추천 0 조회 2219
(사진설명: 고요한 심오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마흔 네 번째는 고건물의 건축조각 박물관 심오(深澳, Shen'ao)촌이다. 고유한 문화와 유구한 역사, 특이한 지리적 환경, 풍부한 문화재를 보유한 심오촌은 아늑한 골목과 오래된 사당, 얼룩진 담벽이 볼만하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아름다운 심오촌) 나지막한 구릉지대에 위치한 심오촌은 사자암에 기대어 선산(璇山)을 마주하며 맑은 시냇물 응가계(應家溪)와 양파계(洋婆溪)가 동네를 흘러 지나면서 아름다운 산수를 형성한다. 남송(南宋)때 신도(申屠)씨의 조상이 이 곳에 이르러 터를 잡았고 그로부터 자손이 번창한 명문가로 부상했으며 오늘날도 심오촌 주민 대부분이 신도라는 성씨를 가지고 있다. (사진설명: 심오촌의 지하 배수로) 심오촌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천여년전의 서한(西漢)말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청(明淸)시기의 고건물만 해도 백여채나 보유하고 풍부한 내용과정교한 기법의 건축조각이 특히 유명하다. 장방형 모양의 심오촌에는 500m 길이의 옛 거리 노가(老街)가 있다. 거리 지하에 배수로를 팠는데 옛적에 그런 숨은 물길을 깊을 오(澳)라고 해서 동네 이름이 심오촌이다. (사진설명: 심오촌의 옛 거리) 양켠에 점포나 가게로 사용되는 명청시기 건물과 민국(民國)시기의 건물을 거느린 이 거리는 인근에서 함께 사용하는 유명한 거래센터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심오촌에는 황가농(黃家弄), 후거농(後居弄), 삼방농(三房弄) 등 전통골목이 있으며 그 중 비(菲)자모양의 골목이 특이하다. 물길과 골목사이에 위치한 유서당(攸敍堂)과 신농당(神農堂), 회삭당(懷索堂), 공사당(恭思堂), 회형당(懷荊堂) 등 건물들은 각자의 독특한 모습을 자랑하면서 조화를 이룬다. (사진설명: 심오촌의...
판다번역 2011.07.29 추천 0 조회 1698
(사진설명: 아늑한 삼문원촌의 일각)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마흔 세 번째는 벽돌조각위의 연극사 삼문원(三門源, Sanmenyuan)촌이다. 삼문원촌에 들어서면 보이는 것은 맑은 물과 그 위의 다리, 그 곁의 가옥이오, 들리는 것은 어제를 이야기하는 전설뿐이다. (사진설명; 수려한 삼문원촌) 삼면에 산을 업고 맑은 시냇물을 낀 삼문원은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교통이 불편한 산속에 위치한 원인으로 삼문원은 전란의 피해를 입지 않아 오늘날까지 청(淸)나라때의 건물을 완정하게 보존하고 있다. 자갈을 깐 삼문원촌에 들어서면 옛스러운 건물과 정교한 조각, 하얀 벽체의 검정 기와가 소리없이 삼문원촌의 어제를 소곤소곤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사진설명: 밖에서 본 엽씨민가건축) 1846년에 지은 엽씨(葉氏)민가건축군락은 산세를 따라 조성되었다. 세 채의 주요 건물에는 "지란인좌(芝蘭人座)", "형화영무(荊花永茂)", "환도생춘(環堵生春)"이라는 우아한 내용의 액자가 걸려 있다. 뜰과 가든, 연못을 동반한 건물은 째인 구도와 정교한 모양, 웅장한 기세를 자랑한다. 전하는데 의하면 이 건물은 6여년의 시간에 들여서야 완공했고 다양한 조각에만 3년이라는 시간을 소요했다고 한다. (사진설명: 엽씨민가 내부) 엽씨민가에 들어서면 마치 예술의 전당에 들어선 듯 하다. 굵은 기둥과 아름드리 대들보, 복잡한 천정구조, 창틀을 화려하게 수놓은 조각 등 모두가 눈을 어지럽힌다. 외벽이 아찔하니 높지만 건물사이의 뜰을 통해 채광과 통풍을 기했기 때문에 이 건물들은 배수가 잘 되고 방안에도 햇빛이 잘 들며 공기가...
판다번역 2011.07.28 추천 0 조회 2246
(사진설명: 아름다운 후오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마흔 한 번째는 세월속의 시 동네 후오(厚吳, Houwu)촌이다. 건물이 입체적인 시이고 소리없는 노래라면 후오는 세월속에 형성된, 자연과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는 시이고 음악이다. (사진설명: 후오촌의 건물과 물과 사람들) 117년에 후오의 비조인 오양경(吳陽卿)이 자손을 거느리고 이 곳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오씨 중심의 마을을 형성했다. 촌민들이 대부분 순박하고 후덥다고 해서 동네 이름이 후오촌이다. 시냇물 금계(錦溪)를 뒤로 하고 청산을 마주한 후오는 반듯한 구도에 푸른 벽돌, 검은 기와의 건물들이 높낮이가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명(明)나라때의 건물은 옛스럽고 소박하며 장중하고, 청(淸)나라때의 건물은 다양하고 정교하며 우아하고, 민국(民國)때의 건물은 대범하고 완벽하며 실용적이다. (사진설명: 후오촌의 뜰) 세월의 이끼로 가득한 돌길을 걸으면 수백년의 세월을 겪어온 오래된 건물들이 소리없이 어젯날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거리 양쪽 건물의 문들에는 효도와 출세, 풍작 등을 뜻하는 정교한 조각들이 후오촌의 안녕을 지키고 있다. 1810년에 세워진 사마제(司馬第)는 후오촌 입구에 위치해 있다. 뜰 세 겹에 방 29칸을 가진 사마제는 삼중으로 된 문을 두었다. 첫번째 문은 벽돌로 쌓은 처마 세 겹의 문이고 앞뒤에 사마제라는 이름을 새겼다. (사진설명: 후오촌의 건물과 사람) 두번째 문은 둥근 아치형의 문이며 양쪽에 작은 문을 하나씩 거느린 세번째 문에는 "앙첨산두(仰瞻山斗)"와 "서부(書府)", "묵림(墨林)"이라는...
판다번역 2011.07.28 추천 0 조회 2185
(사진설명: 멀리서 본 곽동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마흔 번째는 강남에서 풍수가 가장 좋은 동네 곽동(郭洞, Guodong)촌이다. 아늑한 골목과 오래된 건물, 고요한 연못, 기이한 산봉, 험준한 벼랑의 곽동은 산수와 수목, 옛 다리와 옛 사찰, 옛 성이 비경이다. (사진설명: 고요한 곽동촌) 곽동은 풍수학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물위에 성을 쌓아 물이 모이는 수구(水口)를 형성하고 회룡교(回龍橋)로 기운과 바람을 모으며 북두칠성을 본따서 골목을 조성하고 건물주변에 나무를 심어 조경의 목적을 이루었다. 곽상(郭上)과 곽하(郭下) 두 동네로 구성된 곽동촌의 동구밖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저 멀리로는 청산이 지켜서서 사자가 문을 지키는 풍수를 형성한다. 성문위의 태극무늬도 이 곳의 풍수학적 경관을 잘 보여준다. (사진설명: 하씨사당 정문) 1609년에 지은 하씨사당(何氏祠堂)은 곽동의 명청(明淸)시기 고건물 중 가장 대표적인 건물로 곽동 가족문화의 축소판이다. 사당입구의 장대 여섯개는 주인의 관직과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고 주련과 죽간, 병풍은 명인문화를 보여준다. 사당의 뒷뜰에는 현지의 풍속을 보여주는 관이 놓여져 있고 사당과 함께 심어진 나한송도 보기 드문 귀중한 수목이다. 그밖에 조상의 위패를 공양하는 불단은 명나라때의 유물이고 우아하고 옛스러운 무대건물은 동네 제사를 지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진설명: 신옥리의 액자) 고대의 일반 가옥의 대표로는 명나라때 신축한 신옥리(新屋里)이다. 뜰 세겹에 방 30칸을 가지고 있으며 8개 창틀의 목각이 모두 상이하다. 안채창틀에는...
판다번역 2011.07.25 추천 0 조회 2198
(사진설명: 아름다운 꽃동네 명월만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서른 아홉 번째는 아늑한 꽃동네 명월만(明月灣, Mingyuewan)촌이다. 이천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명월만은 시적인 이름과 그림같은 경관을 가진 강남 시골의 축소판이다. 뒤에 청산을 업고 태호(太湖)를 마주한 명월만촌은 모양이 둥근 달과 같다고 해서 이름이 명월만이다. 먼 옛날 춘추전국(春秋戰國)시기에 오(吳)나라 왕이 미인 서시(西施)와 이 곳에서 달 구경을 했다고 해서 이름이 명월만이라는 야사도 있다. (사진설명: 아늑한 명월만촌 입구) 전하는데 의하면 명월만은 이천여년전의 춘추시기에 벌써 오나라의 포로로된 월(越)나라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일부 오나라 사람들이 모여 동네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과거 명월만 사람들은 일하면서 자신을 먹여 살리는 동시에 오나라 왕과 서시가 이 곳에 와서 달구경을 할때 휴식터와 음식,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명월만의 뒷산에는 지금도 서시가 그 때 세안과 화장을 하던 화미천(畵眉泉)유적이 남아 있다. 그 뒤에 당송(唐宋)때에 이르러 명월만은 바둑판같은 동네의 구도를 형성했고 청(淸)나라때 최고의 번성일로를 달렸다. (사진설명: 고요한 석판길) 1770년에 건설된 돌길 석판가(石板街)는 1140m길이에 4560조각의 커다란 화강암을 깔아 만들었다. 바둑길이라고도 하는 이 길은 오늘날 명월만특색의 하나로 부상했다. 돌길의 지하에는 배수구가 가설되어 아무리 큰 비가 내려도 금방 물이 빠지고 노면이 깨끗해져 "명만가에서는 비온 뒤에도 꽃을 수놓은 헝겊신을 신는다"는 말이 있다. 거리의 양쪽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역한 색바랜...
판다번역 2011.07.25 추천 0 조회 2215
(사진설명: 아름다운 육항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서른 여덟 번째는 태호(太湖)기슭의 첫 동네 육항(陸巷, Luxiang)촌이다. 뒤에 산을 업고 물가를 마주한 육항촌은 멀리서 보면 호수를 맑은 눈망울로 하고 산을 짙은 눈썹으로 한 빼어난 미인이다. (사진설명: 육항촌의 정원일각) 주변에 한곡산(寒谷山)공원과 공리(鞏俐)섬, 화룡지(化龍池), 왕오(王鏊)무덤 등 태호의 명소와 이웃한 육항촌은 수려한 경치와 명승고적, 인문경관을 한 몸에 모은 관광지이기도 하다. 육항촌은 천여년전의 남송(南宋)때 형성되어 육칠백년전의 명청(明淸)시기에 벌써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인재가 바로 명나라때 대학사라는 높은 보직을 지낸 왕오이다. 연속 몇 단계에 걸친 과거시험에 급제하고 관리로 있으면서 당시 "최고의 문장가, 둘도 없는 재상"이라는 평가를 받은 왕오의 모친이 육씨라고 해서 동네 이름도 육항촌이다. (사진설명: 육항촌의 건물) 육항촌의 건물은 중심선을 중심으로 밖으로부터 안으로 조벽(照壁), 문청(門廳), 교청(轎廳), 대청(大廳), 루청(樓廳), 계장(界墻) 등 건물을 두고 양쪽에 별채를 세웠다. 육항촌은 혜화당(惠和堂), 수화당(粹和堂), 만산당(晩山堂), 견삼당(見三堂), 명봉당(鳴鳳堂), 동산초당(東山草堂), 회덕당(懷德堂) 등 30여채에 달하는 명청시기 고건물을 완정하게 보존하고 있다. (사진설명: 자석가와 패방) 2m 길이의 화강암을 깔아 만든 울퉁불퉁한 노면의 자석가(紫石街)는 색바랜 모습으로 저 멀리 뻗어 있다. 올리막길과 내리막길이 조화로운 자석가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에 반들반들 윤기난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계단양쪽으로 깊이 패인 명청시기 차흔적이 보이고 그...
판다번역 2011.07.21 추천 0 조회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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