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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몽롱한 소하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스물 일곱번째는 아름다운 뜰 속의 뜰 소하(小河,Xiaohe)촌이다. 맑은 강물이 뭇 산의 품속에 안긴 소하촌을 경유하고 무성한 숲은 더 없이 아늑하다. (사진설명: 석가화원의 뜰) 뜰 속에 뜰이 있고 뜰 위에 뜰이 있으며 뜰 곁에 뜰이 있는 석가화원(石家花園)으로 인해 소하촌은 옛스럽고 소박하게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석씨족보에 의하면 석씨가문은 팔백여년전의 명(明)나라때 이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16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앞으로 맑은 강물이 흐른다고 해서 동네 이름이 소하촌이다. (사진설명; 소하촌의 건물과 뜰) 소하촌에는 건축양식이 다양하고 인테리어가 정교한 고건물들이 아주 많은데 전통적인 뜰만 해도 178채나 된다. 대표적인 뜰로는 석가화원과 이가대원, 석가노원 등을 들수 있다. 그밖에 소하촌에는 석가사당과 이가사당을 비롯한 사당건물, 관제묘(關帝廟)와 관음암(觀音庵) 등 절, 복지항(福地巷)과 이가사당항(李家祠堂巷), 석가노택항(石家老擇巷)을 비롯해 옛 거리도 적지 않으며 옛 우물과 옛 맷돌 등 문화재도 많다. 이런 역사유물들은 풍부한 역사문화정보로 당시의 찬란했던 문화와 명청시기 이 지역의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석가화원) 청나라때 조성한 석가화원은 소하촌의 남쪽 산언덕에 위치해 있다. 북방건물의 웅장함과 남방건물의 수려함을 한 몸에 모으고 정교한 예술적 가치와 풍부한 역사연구가치를 두루 갖춘 석가화원은 소하촌에서 가장 완정하게 보존된 고건물이다. 크고 작은 문만 해도 9개, 움집 65채, 방 112칸을...
판다번역 2011.07.07 추천 0 조회 2064
(사진설명: 상장촌 패방)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스물 여섯번째는 관료의 저택, 문화의 고장인 상장(上庄,Shangzhuang)촌이다. 푸른 산의 품속에 안긴 상장촌은 아늑하고 무성한 숲이 고풍스러운 고건물과 조화를 이룬다. (사진설명: 상장촌의 건물과 골목과 정문) 상장촌은 명(明)나라때 유명한 정치인이며 재정학자이고 문학자이기도 한 왕국광(王國光)의 고향이다. 그 때문에 상장촌은 관료의 저택이라는 의미로 천관왕부(天官王府)로 불리운다. 평야와 산간지대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상장촌은 지세가 남쪽이 높고 북쪽이 상대적으로 낮은편이다. 명나라때인 1506년에 한 사람이 물가를 가까이 한 산 기슭이고 또 동쪽에 오래된 절이 하나 있는 것을 보고 이 곳 풍수가 좋다고 여겨 터를 잡았다고 한다. (사진설명: 영녕갑) 명나라 초반에 건설된 아치형 문인 영녕갑(永寧閘)에는 마을의 항구적인 안녕를 바라는 아름다운 소망이 깃들어 있다. 고목이 울창한 가운데 맑은 물위에 세워진 이 문은 붉은 벽체에 황금의 기와를 반짝이면서 더 없이 우아하면서도 장엄하다. 상장촌의 심벌인 영녕갑은 풍수와 수리, 풍경, 종교, 문화를 한 몸에 모은 건물로써 실용적인 기능과 건축예술의 완벽한 접목을 과시하면서 가장 멋진 중국 시골의 문루(門樓)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설명: 하가 일각) 돌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명청시기 상장촌의 거리인 하가(河街)에 이른다. 이 곳에는 물길을 따라 양쪽에 바위로 둑을 쌓고 그 너머로 화색의 기와와 청색의 벽돌로 지은 오래된 보루식 건물들이 줄지어...
판다번역 2011.07.07 추천 0 조회 2135
(사진설명: 곽욕촌의 성과 성문)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스물 다섯번째는 중국 시골 최초의 성인 곽욕(郭峪,Guoyu)촌이다. 당(唐)나라때 축조된 보루식 건물군락인 곽욕촌은 산발에 기대서 웅장함을 과시한다. 성안에는 높이 솟은 예루(豫樓)와 고풍스러운 절, 호화한 관저, 우아한 사택들이 늘어서서 "산위에 산이 있고 절안에 절이 있는" 기이한 경관을 형성한다. (사진설명: 곽욕촌의 입구) 곽욕과 시랑채(侍郞寨), 흑사파(黑沙坡) 세 부분으로 구성된 곽욕촌에는 노사원(老獅院)과 소사원(小獅院), 진씨 십이택(陳氏十二宅), 왕가 십삼원(王家十三院)을 비롯해 명(明)나라때 저택 40개 뜰에 1100여개 방이 남아 있다. 그밖에 예루와 탕제묘(湯帝廟), 무대 건물을 비롯한 공공 고건물도 적지 않다. 600여년전 명나라때 도적떼를 막기 위해 거주와 방어기능을 갖춘 곽욕성을 쌓았다. 성벽의 옆에는 보조용으로 3층 높이에 628개 창을 둔 움을 파서 사람이 살기도 하고 방어시설로도 사용했다. 이런 움은 멀리서 보면 마치 벌둥지 같다고 해서 곽욕성은 일명 봉와성(蜂窩城)으로도 불리운다. (사진설명: 곽욕촌의 성) 곽욕성에는 성문 3개에 망루 10개, 움막 18개가 설계되어 있고 성의 귀퉁이에는 정자가 아담하게 솟아 있다. 그 중 물가에 위치한 동문은 곽욕촌의 정문으로 세 성문 중 지세가 가장 낮다. 성문위에 경양(景陽)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곽욕성은 경양성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다. 오늘은 한 구간만 남아 있지만 높이 솟은 곽욕성은 아아하고 웅장할 뿐만 아니라 아주 견고하다. 전하는데 의하면...
판다번역 2011.07.04 추천 0 조회 2132
(사진설명: 멀리서 본 황성상부)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스물 네번째는 산서(山西, Shanxi)의 첫 동네 황성(皇城, Huangcheng)촌이다. 깊고 아늑한 황성의 뜰에 서서 빗바람에 퇴색한 푸른 벽돌과 창틀에 새긴 글자를 만지고 혹은 은은한 차의 향기속에서 유유한 음악을 들으면 마치 300여년전의 어제로 돌아간 듯 그 속에 심취하게 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황성상부) 산 기슭의 물가에 위치한 황성촌은 234가구가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지만 자랑스러운 역사흔적으로 인해 산서의 첫 동네로 공인된다. 웅장한 성벽과 관가의 건물, 일반 사택들이 즐비한 황성은 고대 중국의 축소판이다. 건물이 첩첩하고 뜰이 겹겹한 황성상부(皇城相府)는 청(淸)나라 강희(康熙)제의 스승이었던 진정경(陳庭敬)이 모친을 위해 지은 건물이다. 진정경은 황제의 스승이면서 그때 당시의 재상이고 <강희자전(康熙字典)>을 비롯한 고전의 심열관이기도 했다. 전하는데 의하면 진정경이 그 때 베이징에서 벼슬을 할 때 그의 모친이 베이징을 한 번 가보는 것이 꿈이었으나 연로한 몸으로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사진설명: 황성상부의 정문) 그래서 진정경은 고향에 베이징의 자금성(紫禁城)과 유사한 저택을 지어 이름도 황성상부라 하면서 모친에게 효도했다고 한다. 진정경의 호가 오정(午亭)임으로 황성상부는 일명 오정산촌(午亭山村)으로도 불리운다. 570여년전의 명(明)나라때 공사를 시작해 청(淸)나라 강희제때에 이르러 오늘의 규모를 형성한 황성상부는 자금성을 본 따서 건물을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분류했으며 1700m길이의 성에 성문도 아홉개를 쌓았고 크고 작은 뜰은 19개에...
판다번역 2011.07.01 추천 0 조회 2411
(사진설명: 서문흥촌의 유씨종사와 유종원 동상)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스물 세번째는 가장 원초적인 시골 서문흥(西文興, Ximenxing)촌이다. 날개를 활짝 편 봉황보양의 산발에 의지해 조성된 서문흥촌은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유씨가문의 정문) 태항산(太行山)과 태악산(太岳山), 중조산(中條山) 세갈래 산의 지맥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서문흥촌은 천여년전 당(唐)나라때 문학자인 유종원(柳宗元)의 자손들이 모여사는 동네이다. 오늘날도 이 마을의 90%가 유씨여서 서문흥촌은 중국 북방에서 유일하게 동문이 자자손손 집거하는 원초적인 마을이다. 또한 "하동세택(河東世澤)"과 "사마제(司馬第)"라는 액자에서 유종원의 흔적을 엿볼수 있다. (사진설명: 서문흥촌의 석패방) 서문흥촌의 뼈를 이루는 줄기는 굽이를 돌면서 몇 개의 뜰을 통과하는 통로이다. 그 중 가장 넓은 패방가(牌坊街)에는 이 마을의 심벌인 석패방 두 개가 솟아 눈길을 끈다. 목조건물을 모방해 지은 석패방에는 "청운접무(靑雲接武)"와 "단계전방(丹桂傳芳)"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랜 세월의 빗바람속에서 돌이 부식되어 돌사자의 윤곽이 조금 모호해지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완정하게 보존되어 있다. (사진설명: 서문흥촌의 건물) 종교건물의 특색과 중국의 남북 건물양식을 한 몸에 모으고 궁궐건물의 기법과 역대 명인들의 서예를 교묘하게 접목시킨 유씨민가는 선비가문이 명(明)나라때에는 관료로부터 사업가로 되고 청(淸)나라때에는 사업가로부터 다시 관료로 돌아간 유씨가문의 발전사를 잘 보여준다. 마을의 설계에서 서문흥촌은 복과 장수를 뜻하는 구도를 선택했다. 전반적인 건물은 대략 세 부분으로 나뉜다. 한 구역은 유씨사당과 관제묘(關帝廟)와 문묘(文廟), 땔나무방, 통로의...
판다번역 2011.07.01 추천 0 조회 2309
(사진설명: 멀리서 본 두장)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스물 두번째는 시골 보루식 건물의 전형인 두장(竇庄, Douzhuang)촌이다. 두장의 보루식 건물은 다양한 건물양식과 완벽한 시설을 통해 당시의 생활양식과 생활상태를 아주 잘 보여준다. (사진설명: 두장의 성과 성문) 서쪽으로 산을 등에 업고 삼면에 물을 가까이 한 두장은 우아한 환경과 두터운 문화를 자랑한다. 두장의 현존 고건물중에는 민가외에 절과 누각, 사당, 책방, 운동장, 재판소, 땅굴, 성벽, 성문, 패방, 가게, 비석 등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있다. 두장고보(古堡)는 둘레 2,000m이고 높이 12m이며 너비는 1.5m에 달한다. 만(卍)자형의 구도를 가진 두장고보는 동서남북 네 갈래의 길과 네 갈래의 골목을 두고 길과 골목이 성과 만나는 곳에 성루(城樓)를 도합 8개 쌓았다. (사진설명; 두장의 성과 해자) 거기다가 옹성(瓮城)까지 합치면 성문숫자가 아홉이고 그 때문에 두장은 구문구관(九門九關)으로도 불리운다. 보루의 구도가 베이징(北京, Beijing)의 자금성(紫禁城)과 유사하다고 해서 두장은 또한 미니 베이징이라는 미명도 가진다. 오랜 세월과 빗바람속에서 9개의 성문 중 오늘날까지 남아 내려오는 성문은 4개뿐이며 그 중에서도 남과 북 두 성문만 어제의 웅장함과 삼엄함을 과시하고 있다. (사진설명: 두장의 성문과 길) 남문에는 남문(南門)이라는 두 글자가 벽돌에 새겨져 있고 성문위에는 포대와 감시구멍이 설치되어 있다. 성의 바깥쪽에는 물길을 파서 홍수방지용과 해자로 사용하고 물길위에는 현수교를 놓았다. 북문에는...
판다번역 2011.06.29 추천 0 조회 2545
(사진설명: 아늑한 마을 양호)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스물 한번째는 고대 마을의 활화석 양호(良戶, Lianghu)촌이다. 삼면에 산이 둘러서고 한면으로 물이 흐르는 양호는 자연환경이 아주 좋다. (사진설명: 양호의 석각) 양호는 옛 거리가 아늑하고 고건물이 즐비하며 문루가 웅장하고 옛 액자가 고풍스러우며 민풍이 순박하고 조각기법이 정교하다. 특히 창가에 놓은 돌과 문턱에 놓은 돌을 망라해 돌이면 모두가 정교한 조각물이어서 감탄을 자아낸다. 양호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이다. 천여년전의 당(唐)나라때 곽(郭)씨와 전(田)씨 두 가문이 이 곳에 눌러 앉아 동네를 형성했다고 해서 원래는 이름이 두 가문이라는 의미로 양호(兩戶)였는데 후에 두 양(兩)자를 어질 양(良)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중국의 고대 마을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양호촌이 태항산(太行山)속의 명청(明淸)시기 마을 중 가장 대표적인 고대 마을로 중국 고대 마을의 활화석이라고 평가한다. (사진설명: 양호의 거리) 후가(後街)와 서가(西街), 동가(東街), 태평가(太平街)를 망라해 양호의 길에는 모두 모래를 깔아 배수가 원활하게 되면서 고건물의 보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양호에는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들인 철공소와 구리 가공소, 은 세공소, 방아간, 염색집, 기름집 등이 있다. 양호에는 지금까지도 금과 은, 쇠와 구리를 가공하는 장인들이 적지 않다. 보루식 건물인 반용채(蟠龍寨)는 공간 구도과 건축양식에서 궁궐과 지방특색을 한 몸에 모아 예법과 건축기법을 교묘하게 접목했다. 북방의 대범함과 남방의 수려함을 갖춘...
판다번역 2011.06.28 추천 0 조회 2389
(사진설명: 사가구의 조각)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스무번째는 심산속의 장원 사가구(師家溝, Shijiagou)촌이다. 황토고원(黃土高原)속의 사가구촌은 옛스럽고 신비로우며 아늑함으로 이름난 시골이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사가구) 심산속에 위치한 사가구촌은 엄청난 규모와 독특한 설계를 자랑하며 벽돌조각과 목각, 석각을 한 몸에 모은 예술품이다. 사가구촌은 또한 산간지대 건축의 대표이며 농경문명을 보여주는 마을이기도 하다. 이 곳의 건물은 지세와 교묘하게 접목되어 있다. 멀리서 사가구를 바라보면 산세를 따라 들어앉은 건물의 삼면에는 산이 둘러서고 한쪽에는 강물이 흘러 좋은 풍수를 보여주는데 계단식으로 높낮이가 첩첩한 건물들이 조화의 극치를 자아낸다. (사진설명: 사가대원의 건물) 사가구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사가대원(師家大院)은 1769년에 지은 고건물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사가대원은 사씨네 네 아들이 출세한 후 70여년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 가장 높은 건물은 5층이고 그밖에 뜰 31개가 달려 있다. 움집형식의 대다수 건물의 높이가 4m이고 깊이도 깊어서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하다. (사진설명: 사가대원의 문) 계단식으로 된 사가대원의 뜰마다 각자의 특색을 자랑한다. 뜰마다 거실과 복도, 안채와 별채, 서재, 수놓이 방, 하인 방이 있으며 뜰과 뜰사이에는 문루와 정문, 옆문 등을 두어 건물위에 건물이 있고 뜰속에 뜰이 있으며 문과 문이 연결된 듯 기이하다. 좁고 긴 골목에는 월동문(月洞門)으로 공간을 분류하고 뜰과 뜰도 하나로 연결되어 사가대원은 한 뜰에만 들어서면 사가대원의...
판다번역 2011.06.27 추천 0 조회 2418
(사진설명: 멀리서 본 하문고보)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열 아홉번째는 신비한 옛 성들의 모임 하문(夏門, Xiamen)촌이다. 어젯날의 찬란함과 세월의 풍상고초를 지켜온 하문고보(夏門古堡)는 웅장함속에 질박함을 감추고 질박함속에 정교함을 숨기고 대칭속에서 변화를 보여주며 변화속에서 실용성을 추구했다. 뒤에 산을 업고 물가의 둔덕위에 세워진 하문보고에 서면 전망이 아주 좋다. 맞은켠에 아찔한 절벽이 막아서고 뒤에는 험준한 산봉을 업었으며 발아래로는 분수(汾水)가 흘러 북방의 웅장함과 남방의 수려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사진설명: 하문고보의 길) 하문고보에는 전통적인 길 9갈래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동서향의 동가(東街)와 중가(中街), 서가(西街)가 있고 후보도(後堡道)라는 남북향의 길 한 갈래, 그리고 골목 5갈래가 있다. 거리와 길과 골목은 모두 뜰과 연결되고 숨은 길 암도(暗道)와도 연결된다. 지하의 암도는 교통의 역할도 하고 배수의 역할도 하며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등 다양하게 좋은 점을 가진다. (사진설명: 하문고보의 건물) 양(梁, Liang)씨가문이 지은 하문고보는 명나라 중반부터 시작해 300여년에 걸쳐 지은 성이다. 현재 뜰 6개와 건물 60여채가 남아 있고 움집과 전통가옥 천여채가 보전되어 있다. 하문고보의 역사는 현지의 명문 양씨가문과 연관되어 있다. 명청 두 조대에 걸쳐 양씨가문에서 185명의 관료가 나왔고 그 중 5품 이상 고위관직에 있은 사람이 66명이나 된다. (사진설명: 하문고보의 문) 하문고보의 유명 뜰로는 대부제(大夫第)와 어사부(御史府), 지부원(知府院), 심수택(沈秀宅), 후보문(後堡門),...
판다번역 2011.06.27 추천 0 조회 2829
(사진설명: 미니 성 장벽)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열 여덟번째는 보기 드문 미니 성 장벽(張壁, Zhangbi)촌이다. 군사와 거주, 생산, 종교 활동을 한 몸에 모은 장벽촌은 성과 지하도, 궁궐과 절 등 거의 모든 건축기법으로 두터운 역사책을 방불케 한다. (사진설명: 장벽의 성문) 일명 장벽고보(張壁古堡)라고도 하는 장벽촌은 면적은 크지 않지만 기원전 하상(夏商)시기의 문화유적과 수당(隨唐)시기의 지하도, 금(金)나라시기의 무덤, 원(元)나라시기의 무대건물, 명청(明淸)시기의 가옥 등 다양한 시기의 건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수당시기의 지하도와 유무주묘(劉武周廟), 유리비석 등은 이 곳에만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사진설명: 장벽의 길) 천오백년전 당(唐)나라 초기에 형성된 장벽촌은 용의 모양이다. 남쪽성문에 새긴 용조각이 용의 머리이고 남쪽문에서 성밖으로 뻗은 9갈래의 돌길이 용의 수염이며 성안의 300m 길이의 청석길은 용의 몸체이다. 거기다가 길 양쪽에 줄지어 선 우아한 가게와 소박한 가옥들, 노오란 유리기와를 떠인 절과 아름드리 고목이 조화로운 운치를 자랑하면서 장벽을 풍부하게 한다. (사진설명: 골목의 문) 장벽에는 다른 곳에서는 거의 소실된 수당시기 동네의 특색인 이방(里坊)이라는 골목이 보존되어 있다. 장벽의 용가(龍)가와 작은 골목의 삼거리에서 항문(巷門)이라고 하는 골목문을 볼수 있다. 항문이라고 하는 골목문은 골목을 출입하는 유일한 출입구이기 때문에 이 문만 닫으면 이방은 폐쇄된 성안의 성으로 된다. 이런 이방들은 서로 호응도 하고 그러면서 단독으로 싸울수도...
판다번역 2011.06.27 추천 0 조회 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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