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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멀리서 본 어량)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사진설명: 한적한 어량) 중국의 유명시골 중 일곱번째는 오늘도 여전한 어젯날 어촌 어량(漁梁, Yuliang)이다. 현대 건물이란 그림자도 없는 어량에는 어젯날의 길과 건물들만 있기 때문에 더우기 고풍스럽다. 759년에 조성되기 시작한 어량은 마을 모양이 물고기와 흡사하다. 뒤에 산을 업고 물가를 마주한 어량은 한 때 번화한 연강(練江)의 부두였다. 비록 오늘날 어량에서 어젯날의 번화함을 찾아볼수는 없지만 그 흔적은 여전하다. (사진설명; 여유로운 어린가 일각) 울퉁불퉁한 어량상가는 고기비늘길이라는 의미로 어린가(魚鱗街)로도 불리운다. 1km 길이의 이 거리는 오늘까지도 고대 부두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어량상가를 중심으로 수직으로 십여갈래의 작은 골목이 뻗어 있는데 하나같이 반들반들한 자갈을 깔고 양쪽에는 목조건물들이 즐비하다. 번화한 상가와 아늑하고 한적한 골목이 어량만의 경관을 형성한다. 높이 솟은 마두장(馬頭墻), 짙은 색상의 작은 청기와, 길게 튀어나온 처마, 원색의 나무문이 보면 볼수록 자연스럽다. (사진설명: 파위조의 생가 정문) 어량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가옥은 파위조(巴慰祖)의 생가이다. 세 겹의 뜰을 가진 이 건물은 동쪽과 서쪽에 별채를 두고 뒤에는 가든을 조성했다. 남쪽으로 신안강(新安江)에 연결된 어량가의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옛날 화물을 강남으로 실어나르던 부두 어량패(漁梁坝)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옛날 이 곳에서 물건을 배에 실으면 직접 장강(長江)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어량패) 천여년전에 신축되어 오백여년전에 보수를...
판다번역 2011.06.21 추천 0 조회 1721
(사진설명: 아름다운 시골 정감)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여섯번째는 풍수가 가장 좋은 정감(呈坎, Chengkan)이다. 정감에 들어서면 마치 아늑한 무릉도원에 들어선 듯, 몽롱한 꿈속에 들어선 듯 어젯날의 이야기들이 소리없이 자라는 풀처럼 마음속에 번진다. (사진설명: 정감의 물길) 옛날에 용계(龍溪)로 불리우고 10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정감은 중국에서 어젯날의 마을을 가장 완정하게 보존한 고대 촌락의 하나로 인정된다. <역경(易經)>의 풍수학에 의해 입지를 선택하고 마을을 조성했으며 정감이라는 마을이름도 풍수학적으로 지어 드릴 정(呈)자는 하늘을 의미하고 구덩이 감(坎)자는 땅을 의미한다. 맑은 용계가 S자모양으로 마을을 흘러 지나면서 팔괘도의 음양선역할을 하고 남과 북쪽에 각각 위치한 절은 두 눈이며 마을을 둘러선 여덟 산봉은 팔괘도의 여덟방향을 제시한다. (사진설명; 정감의 건물과 물) 서로 연결되는 마을안의 세 갈래 길과 99개의 골목은 바둑판 같은 미궁이고 이 모든 것이 합쳐 완벽한 팔괘도를 형성한다. 누구도 풀길 없는 이 수수께끼같은 팔괘도로 인해 정감은 고대 촌락의 기적으로 공인된다. 아담한 산 기슭의 물가에 지어진 정감은 "산을 베개로 삼고, 물을 바라보며, 병풍이 막아선" 고대의 풍수학적 이론에 딱 들어맞는 마을이다. 길과 골목을 따라 흐르는 물은 변함없이 소방과 배수, 홍수방지, 관개 등 기능을 한다. (사진설명; 정감의 다리) 마을속을 많은 물길이 흐르기 때문에 정감에는 다리도 많다. 그 중...
판다번역 2011.06.21 추천 0 조회 1821
(사진설명: 병풍산기슭의 병산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다섯번째는 병풍산을 업은 물 맑은 곳 병산(屛山, Pingshan)촌이다. 아름다운 산 허리에 위치한 병산촌은 주변의 굉촌과 서체촌의 명성이 하도 높아 오히려 고요함을 지키고 있다. (사진설명: 병산촌의 골목과 건물) 병산촌의 주민은 대부분 서(舒)씨성을 띤다. 사서에 의하면 당(唐)나라때 이 곳으로 이주해온 서씨에 의해 병산촌이 형성되면서 오늘날까지 1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병산촌은 풍수촌으로도 불리운다. 풍수학적으로 조성된 병산촌에서는 그 어디서나 음양과 팔괘를 볼수 있으며 마을 전체가 풍수학이 소망하는 조화로움으로 넘친다. (사진설명: 병산촌의 물길과 건물) 뒤에 산을 업고 물을 낀 병산촌은 산동네와 물동네의 특색을 두루 지닌다. 산동네라고 보면 맑은 강물을 사이두고 양쪽에 나뉘어 있는 두 마을을 이쁘장한 돌다리들이 하나로 묶고 물동네라고 보면 또 높고 낮은 산봉이 둘러서서 첩첩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동네니 물동네니 분류하지 않고 강남의 마을을 묘사하는 "작은 다리, 흐르는 물, 그 곁의 인가"로 병산촌을 형용한다. 단, 이 곳에서 작은 다리는 오래된 돌다리이고 흐르는 물은 동쪽으로 흐르는 강물이며 인가는 푸른 벽돌에 검은 기와를 한 옛날의 가옥이다. (사진설명: 병산촌 세과갑제 문루) "부엌 삼천, 오리 길"을 가진 병산촌에는 장녕(長寧) 여덜 다리, 경여당(慶餘堂), 성도당(成道堂), 광유당(光裕堂), 삼고묘(三姑廟), 홍묘(紅廟), 장녕호, 옥란정, 호로정을 비롯해 200여채의 명청(明淸)시기 고건물들이 남아 있다. 그...
판다번역 2011.06.07 추천 0 조회 1799
(사진설명: 아름다운 당모)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네번째는 아름다운 그림속의 당모(唐模, Tangmo)이다. 사면에 산이 둘러서고 맑은 단간계(檀干溪)를 가운데 두고 조성된 당모는 산 좋고 물 맑은 그림속 마을이다. 당(唐)나라 월국공(越國公) 왕화(汪華)의 증조부가 당나라때의 양식과 풍모, 기준에 의해 마을을 조성했고 그 뒤에 몇대에 걸쳐 발전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서 이름이 당나라의 모양을 갖추었다는 의미의 당모이다. (사진설명: 당모의 고양교) 1,000m 길이로 마을을 경유하는 단간계위에는 모양이 상이한 다리 13개가 놓여 있다. 가장 유명한 다리로는 청(淸)나라때 지은 지붕을 떠인 랑교(廊橋) 고양교(高陽橋)이다. 오늘날 고양교는 다실로 탈바꿈되어 황산명차 한 잔을 들고 흘러가는 강물을 구경하면서 다도표연과 현지의 지방극을 구경하면 선인이 부럽지 않을 정도이다. (사진설명: 당모의 물의 거리) 단간계를 따라 물의 거리가 조성되었다. 맑은 강물위에 양안의 푸른 벽과 하얀 기와가 거꾸로 비껴있고 물가에는 지붕을 떠인 복도가 있고 복도에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만들어져 여유로운 한 때를 즐길수 있다. 수백년의 세월속에서도 이 물의 거리는 변함없이 번창을 지속한다. 기분을 밝게 해주는 붉은 초롱이 높이 걸려 있고 동네 노인들이 안온하게 환담을 나누는 경관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진설명: 상의당 입구) 허(許)씨가문의 사당인 상의당(尙義堂)은 사오백년전의 명(明)나라때 세워졌다. 앞쪽의 사랑채와 가운데 안방, 그 뒤의 후원으로 구성된 상의당에서 한 볼거리는 나무로...
판다번역 2011.06.03 추천 0 조회 1853
(사진설명: 남병의 사당정문)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세번째는 중국 사당건물의 박물관으로 인정되는 남병(南屛, Nanping)촌이다. 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남병촌은 외로운 마을이다. 지난 세월동안 이곳에서 태어난 명인도 없었고 수많은 전쟁의 불길도 이 곳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남병은 마치 세월과 동떨어진 듯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게 고독을 즐기고 있다. (사진설명: 뒤에 병풍을 두른 남병촌) 마을의 북쪽에 병풍산(屛風山)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다고 해서 이름이 남병이다. 1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남병촌의 현 주민은 1000명밖에 안된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명청(明淸)시기의 고건물 약 300채가 기묘한 구도와 별다른 운치를 자랑한다. 한 집의 뜰, 그것도 주인이 있는 자그마한 뜰을 통해서 마을에 들어설수 있는 남병촌은 처음부터 신비감을 안겨준다. 뜰에는 덩굴나무가 돌담위로 올라가고 뜰 귀퉁이에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놓여 있다. 반들반들한 청석을 깐 뜰 가운데는 나지막한 돌탁상이 놓여 있고 정갈한 복도로는 노인들이 조용한 걸음걸이로 오간다. 그 속에 서면 마치 어젯날의 고향집으로 돌아온듯 착각하게 된다. (사진설명: 남병촌의 골목 장방농) 72갈래의 골목을 가진 남병은 골목의 미궁으로도 불리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골목이 장방농(長房弄)이라고 하는 보보고승항(步步高昇巷), 걸음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골목이다. 남병의 모든 골목 중 길이가 가장 길고 층차감이 가장 뚜렷한 이 골목의 끝에는 23개의 계단을 만들어 골목이름이 걸음마다 높은...
판다번역 2011.06.02 추천 0 조회 2684
(사진설명: 아름다운 서체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두번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골 서체촌(西遞村, Xidicun)이다. 대리석으로 쌓은 벽과 대리석을 깐 길, 양쪽에 키 높은 담을 둔 99갈래의 골목이 미궁을 방불케 하고 그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면서 무릉도원을 만든다. (사진설명: 아늑한 서체촌의 골목) 중국 최고의 명산 황산(黃山)에서 멀리 않은 서체촌은 900여녀전의 송(宋)나라때 형성되었다. 서체촌은 사면이 산이고 맑은 강물 두 갈래가 마을을 경유한다. 사서 기록에 의하면 서체촌의 선조는 당(唐)나라 소종(昭宗)황제였던 이화(李樺)의 아들이라고 한다. 난을 피해 이 곳에 이른 그는 성씨를 호(胡)씨로 바꾸었고 그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이 곳에서 자자손손 살아온다. 전성기를 누리던 청(淸)나라때 이 곳에는 크고작은 저택 600여채가 있었다. 벽돌조각과 목각, 석각물이 많은 서체촌은 2000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사진설명: 배모양의 서체촌) 서체촌은 모양이 선박과 같다. 높고낮은 마을의 가옥은 선체이고 마을입구의 키 높은 나무와 13개의 패루(牌樓)는 돛대을 의미하며 마을주변의 산은 바다의 파도와 흡사하다. 마을앞 연못 월호(月湖)와 넓은 경작지는 멀리서 돌아온 선박을 품에 안은 부두와 같다. 지금까지 완정하게 보존된 124채의 명청건물은 대부분 세 겹 혹은 네 겹으로 된 건물구도를 가진다. 높이 솟은 벽과 푸른 기와의 건물들은 서체촌을 "가장 아름다운 마을", "고건물의 보고"로 만든다. (사진설명: 마당에서 본 하늘) 서체촌의 가옥에는...
판다번역 2011.06.01 추천 0 조회 2450
(사진설명: 아름다운 굉촌) 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 시골 중 첫번째는 그림속 아름다운 시골 굉촌(宏村, Hongcum)이다. 명청(明淸)시기의 고건물 138채를 보유한 굉촌은 우아한 건물이 수려한 산수와 어울려 비경이다. (사진설명: 그림같은 굉촌) 자연스럽게 마을을 경유하는 물길과 거리, 건물, 심지어 건물의 내부도 어젯날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현대사회의 흔적이란 찾아볼수 없어 이 마을에 들어서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어제로 돌아간듯 하다. 천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굉촌은 2000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전문가들은 굉촌을 보고 "세상에 둘도 없는 물가의 마을"이라고 평가했다. (사진설명: 운무속 굉촌) 황산(黃山)의 지맥을 뒤에 업고 높은 해발고를 가진 원인으로 굉촌에는 항상 운무가 자욱하다. 혹은 짙은 안개속에 검정기와 하얀 벽이 물에 거꾸로 비끼고 혹은 면사포같은 옅은 안개가 모두를 몽롱하게 만들어 먹의 색갈을 완벽하게 활용한 그림 그 자체이다. 굉촌은 엄밀한 구도를 자랑한다. 마을이 소 우(牛)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을북쪽의 뢰강산(雷崗山)은 소의 머리이고 마을 입구의 고목 두 그루는 소뿔이다. (사진설명: 굉촌의 물길) 마을중앙의 연못 월소(月沼)와 남호(南湖)는 소의 위이고 꼬불꼬불한 물길은 소의 창자이며 남호기슭의 언제는 소꼬리이고 네 개의 다리는 소의 다리이며 마을에 즐비한 가옥은 소의 몸체를 형성한다. 산을 머리로 하고 나무를 다리로 하며 가옥을 몸체로 한 이 거대한 소는 마치 유유한 물소 한 마리가...
판다번역 2011.05.31 추천 0 조회 2028
(사진설명: 애휘의 어제를 보여주는 풍경벽)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오랜 세월속의 동네 애휘(愛輝, Aihui)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동네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모습을 자랑하는 부유한 동네이다. 흑룡강물을 사이두고 러시아와 마주하는 애휘는 구동네와 신동네로 나뉜다. 구애휘는 흑룡강의 왼쪽기슭에 위치하고 애휘진으로도 불리우는 신애휘는 흑룡강의 오른쪽기슭에 위치해 있다. 애휘는 청(淸)나라때 흑룡강유역의 경제와 문화, 군사중심지였고 오늘날은 농업과 관광업, 축산업이 앞서가는 동네이다. (사진설명: 애휘의 옛 성유적) 1907년 애휘를 수복한 후 성을 쌓고 동네를 새롭게 조성했다. 애휘신성의 북쪽에는 카륜산이 솟아 있고 동쪽에는 포대산이 있으며 남쪽에는 나루터가 있고 서남쪽 북대령(北大嶺)은 바로 1900년에 제정러시아와 싸운 전쟁터이다. 신성은 동서남북에 성문 하나씩 두었으며 남문밖에 성황묘(城隍廟)를 짓고 성안 사거리의 중앙에 종루(鐘樓)를 세웠다. 그밖에 성안에는 관공서와 성황묘, 문묘 등 건물과 일반 가옥들이 위치해 있다. (사진설명: 애휘 역사전시관) 1975년에 건설한 애휘역사전시관은 청나라때 장군의 저택에 위치한, 중국에서 유일하게 극동지역에서의 중러관계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왼쪽은 네모나고 오른쪽은 둥글게 조성된 전시홀은 국토의 완정함을 보여준다. 전시홀은 둘로 나눈 커다란 삼각형의 변이 하나는 견증송(見證松)을 가리키고 다른 한 변은 괴성각(魁星閣)을 바라본다. 그리고 오른쪽의 둥근 건물은 성밖으로 나가 제정러시아에 강점되었음을 의미한다. 전시실 왼쪽의 벽에는 <아름답고 부요한 흑룡강>을 보여주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 벽에는 1858년에 체결한 <애휘조약>의 불평등을 의미하는 풍경 1858개가 달려...
판다번역 2011.05.30 추천 0 조회 1825
(사진설명: 횡도하자 성문)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위호산(威虎山)기슭의 보석 횡도하자(橫道河子)는 봄이면 들꽃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운무가 자욱하며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고 겨울이면 설경이 눈부신 동네이다. (사진설명: 횡도하자 대백루) 횡도하자는 옛날에 남북향의 도로가 강물을 경유했다고 해서 동네 이름이 횡도하자이다. 장광재령(張廣才嶺)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 횡도하자는 역사적으로 줄곧 중요한 전략적 위상을 보유한 교통요충지였다. 1,000m에 달하는 러시아 옛 거리에는 백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러시아식 건물 50여채가 보존되어 있다. 특이한 모양으로 완정한 모습을 자랑하는 이 거리는 횡도하자 역사의 한 단락을 보여준다. (사진설명: 횡도하자 성모성당) 1902년에 건설된 성모성당은 건물의 단면이 열 십(十)자모양을 형성한다. 원목을 깎고 조각해서 지은 이 건물은 러시아식 종교행사의 장소로써 500여명의 신도들이 모일수 있는 큰 규모를 자랑한다. 1903년에 건설된 횡도하자 기차고(機車庫)는 부채형으로 펼쳐져 있고 그 앞쪽 30m 떨어진 곳에 기관차방향을 돌리는 둥근 시설이 있으며 그 시설과 15개의 차고가 각기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설명: 횡도하자 기차고) 15개의 차고는 별도로 둥근 모양의 우아한 문을 가지고 있고 벽체는 벽돌로 쌓고 기와도 특이해 가까이에서 보면 독특한 건축풍을 자랑하고 멀리서 보면 심히 장관이다. 1903년에 신축한 철도 횡도하자 대백루(大白樓)는 무성한 숲속에 위치해 아늑한 환경을 자랑한다. 푸른 숲속에 하얀 처마와 노란 벽의 2층 건물이 우아해 이름하여 대백루이다. (사진설명: 러시아식 통나무집) 1904년에 지은...
판다번역 2011.05.30 추천 0 조회 2518
(사진설명: 아름다운 다륜)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시린거러초원의 수상동네 다륜뇨이(多倫淖爾,Duolunnaoer)는 몽골어로써 일곱호수라는 의미이다. 물이 다륜의 영혼이라면 숲은 다륜의 운치이고 사막은 다륜의 의상이라 할수 있다. (사진설명: 다륜의 고건물) 시런거러 초원의 동남쪽, 음산(陰山)산맥과 대흥안령(大興安嶺)지맥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다륜은 몽골초원에서 이름난 종묘의 고장이고 상업의 동네이다. 많은 하천의 발원지인 다륜은 산 좋고 물 맑은 아름다운 동네이며 시린거러의 지표수 중 반이상의 수자원을 차지하고 그로 인해 명실공히 수상동네라는 이름을 가진다. (사진설명: 다륜의 월량호) 월량호(月亮湖)로 불리웠던 처녀호에는 비정의 러브스토리가 깃들어 있다. 다륜의 상업이 발달하면서 어느해 베이징(北京, Beijing)의 한 청년사업가가 다륜을 경유하다가 폭설때문에 발이 묶여 한 목민의 집에 들었다. 그 청년사업가는 아름다운 목민의 딸과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목민의 딸을 눈독들인 현지의 관리가 구실을 대서 청년사업가에 사형언도를 내렸다. 절망에 빠진 목민의 딸은 월량호에 몸을 던져 자살했고 거금을 들여서 목숨을 살린 청년사업가도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호수에 몸을 던졌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월량호를 처녀호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산서회관) 산서회관(山西會館)은 1745년에 산서의 사업가들이 돈을 모아 지은 그 때 당시 내몽골에서는 유일한 타지방 회관이다. 황궁의 건축기준에 따라 키 높이 올라앉은 무대건물과 입체조각이 화려한 산서회관은 다륜의 찬란했던 어제를 보여준다. 네 겹의 뜰을 가진 산서회관은 패방(牌坊) 5개와 대산문(大山門), 하숙(下宿), 대희루(大戱樓), 종루(鐘樓),...
판다번역 2011.05.27 추천 0 조회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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