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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종루에서 본 혜원과 혜원성)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이리(伊犁, Yili) 아홉동네 중 첫 마을인 혜원(惠遠, Huiyuan)은 청(淸)나라 정부가 신강(新疆, Xinjiang)지역 지배를 위해 파견한 최고의 행정 및 군사장관 이리장군의 주둔지이다. (사진설명: 이리장군저택입구) 청나라 건륭(乾隆)제가 하사한 혜원이라는 이름은 청나라 황제의 은혜가 멀리까지 간다는 의미이다. 한 때 신강의 정치, 군사, 경제, 문화허브였던 혜원옛성은 이리하 하류의 개활지대에 위치해 있다. 역사적으로 이리는 신강으로부터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교통요충지이다. 청나라 황제는 바로 이 곳에 행정장관을 파견해 혜원성을 축조하고 혜원의 주변에 위성동네 8개를 두어 토탈 "이리구성(伊犁九城)"이라 했다. (사진설명: 혜원의 성문) 전란과 제정 러시아의 침략으로 인해 혜원성의 건물은 거의 모두 파손되고 이리하의 침식으로 지하의 문화재도 찾아볼수 없다. 오늘까지 남아 있는 문화재는 일부 성터뿐이다. 1882년 청나라는 혜원성에서 북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기존의 혜원성을 본따서 새로운 성을 축조했다. 우리가 오늘 보는 혜원성이 바로 그 때 지은 것이다. (사진설명: 이리장군부 정원) 혜원성안에 위치한 이리장군부 유적에는 정원과 오솔길, 복도, 정자, 돌사자만 남아 있다. 사합원(四合院)식으로 된 장군부에는 또 키 높은 고목 네 그루가 옛 동네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사진설명: 이리장군저택입구의 돌사자) 장군저택 입구에 들어누운 두 마리 돌사자는 남방조각의 세밀함과 북방조각의 호방함을 두루 갖추었다. 전한데 의하면 위엄과 용맹함보다는 순박하고 둔해보이는 이 돌사자는 제정...
판다번역 2011.05.27 추천 0 조회 2351
(사진설명: 아늑한 동네 창주)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문성공주의 발자국이 찍힌 동네 창주(昌珠, Changzhu)는 가장 높은 곳에 사원이 위치하고 그 사원을 중심으로 가옥들이 펼쳐지며 동네의 모든 거리가 사원으로 통한다. (사진설명: 창주사 일각) 13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토번시기 티베트의 첫 불교사원인 창주사(昌珠寺)는 당(唐)나라의 문성(文成)공주와 결혼한 티베트의 두령 숭잔감보가 지은 절이다. 티베트어에서 창주는 독수리와 용을 말한다. 전하는데 의하면 문성공주가 티베트에 와서 토번의 강산을 바라보니 모양이 길게 드러누운 식인귀같아서 토번의 입국에 불리할것이라고 인정했다. (사진설명:창주사 입구) 문성공주가 그 식인귀의 심장과 사지위에 절을 지어 눌러야 한다고 해서 절을 지었는데 그 중 창주사는 바로 식인귀의 왼쪽 팔위에 지어진 절이라는 설이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옛날 창주사앞에 호수가 하나 있었는데 호수속의 용이 난동을 부려 숭잔감보가 변한 대붕이 그 용을 눌렀고 그리고 나서 호수가에 절을 지어 이름을 창주사라 했다는 것이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창주사) 창주사는 송잔간보와 문성공주가 겨울을 보내는 곳이다. 그로 인해 창주사에는 문성공주가 사용했던 기물들이 적지 않게 보존되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솥과 부뚜막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문성공주가 사용했던 이 부뚜막을 만지면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만들수 있다고 한다. 대궐과 전경복도, 곽원(廓院)으로 구성된 창주사는 2층으로 된 건물이다. 건물 1층에는 송잔감보와 석가모니, 관세음보살의 조각상이 공양되고 2층에는 연화...
판다번역 2011.05.27 추천 0 조회 2236
(사진설명: 살가의 절)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회색빛 땅위의 돈황(敦煌)으로 인정되는 살가(薩迦, Sajia)는 외딴 곳에 깊숙이 숨어 있는 동네이다. 외부와 단절된 듯한 신비한 이 동네는 고요함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사진설명: 살가의 절) 두번째 돈황으로 인정되는 티베트 사원 살가사(薩迦寺)가 위치한 살가의 살가는 티베트어로써 회색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그로 인해 살가사도 온통 하얀색에 가까운 회색빛을 자랑한다. 살가사는 원래 남과 북으로 분류되었으나 북쪽의 절은 사라지고 1268년에지은 남쪽의 절만 오늘까지 남아 있다. 넓은 평야에 자리잡은 살가남사는 네 모난 성 두 겹에 안겨 있다. 절을 지키기 위해 높은 성을 쌓았고 성에는 많은 성가퀴와 보루 4개, 각루4개도 지었다. 멀리서 살가남사를 바라보면 절을 둘러싼 성이 더 없이 장엄하고 대칭을 이루면서 조화롭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살가남사) 멀리서 살가남사를 바라보면 바같쪽 성이 안쪽 성을 감싸서 회(回)자모양을 이룬다. 또한 성밖에는 해자를 팠고 성문은 공(工)자모양으로 만들었다. 검붉은 색 중심의 성에는 사이사이 검정과 흰색을 수놓았는데 티베트 불교에서 짙은 붉은색은 문수보살을 의미하고 검정은 금강호법신, 흰색은 관음보살을 의미한다. 한족과 티베트 건물양식을 한 몸에 모은 살가남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물은 대경당(大經堂)이다. 사원의 중앙에 위치한 대경당은 40개의 굵은 기둥에 받들려 있다. (사진설명: 살가남사의 네 기둥) 그 중 건물 앞쪽에 위치한 원(元)나라 황제가 하사했다고 해서 이름한 원조황제주(元朝皇帝柱)와...
판다번역 2011.05.20 추천 0 조회 1979
(사진설명: 나윤의 산과 물과 건물)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토사가 남긴 타이족의 옛 동네 나윤(娜允, Nayun)은 1289년에 태왕 맹련(孟連)이 세운 성이다. 원(元)나라에서 지방관리를 위해 나윤에 "군민부(軍民府)"를 세우고 토사(土司)제도를 구축했다. 그때로부터 완벽한 지배제도를 구축한 맹련토사는 수백년동안 인근을 관리하는 지배기관으로 존속하다가 1949년 맹련의 해방과 함께 28대에 걸쳐 660년동안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진설명: 나윤의 건물과 정원) 이 곳의 건물은 타이족과 한족의 상이한 건물양식을 한 몸에 모았다. 나윤은 상중하(上中下)에 위치한 성(城) 세 개와 진(鎭)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의 위치와 서열에서는 과거 이 곳의 존귀와 비천을 엿볼수 있다. 토사시대에 상성(上城)에는 토사와 가족, 토사가족의 하인들이 주거했고 중성(中城)에는 토사의 관리와 그 가족들이 살았으며 하성(下城)에는 일반 직원들이 주거했다. 망방강(芒方崗)과 망방모(芒方冒) 두 진에는 임업관과 사냥을 업으로 하는 서민들이 살았다. (사진설명: 선무사서의 정문) 1878년-1919년에 재건한 맹련 선무사서(宣撫司署)는 상성에서도 최고점에 위치해 있다. 맹련토사의 관청과 저택으로 사용된 이 건물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타이족과 한족의 건물양식을 한 몸에 모은 건물이고 운남의 18개 토사관아 중 가장 잘 보존된 토사의 관청건물이다. 문당(門堂)과 의사청(議事廳), 정청(正廳), 동서별채, 식량창고, 주방 등 건물 중에서 정문인 문당은 한족식 건물이다. 세 개의 출입문을 가진 패루(牌樓)는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 서까래로 처마를 단장했다. 13개의 계단을 거쳐서야 선무사서의 문에 이를수 있음으로 이...
판다번역 2011.05.20 추천 0 조회 2140
(사진설명: 아늑한 화순)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아름다운 화교의 고장 화순(和順, Heshun)은 반들반들한 청석길, 바람에 설레는 참죽나무, 물가에 아늑한 사당, 주변의 모든 것을 거꾸로 그러안은 담소 등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화순) 화순은 맑은 강물이 동네를 따라 흐른다고 해서 원래 하순(河順)으로 불리웠는데 우아함이 부족하다고 해서 화순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변에 많은 산봉이 둘러서고 골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화순은 "화산의 품속에 안긴 무릉도원"으로 인정된다. 맑은 강물이 화순을 안고 돌며 흐르다가 아찔한 절벽을 날아내리면서 용동(龍洞)의 주렴이라는 아름다운 폭포를 만든다. 강물은 이어 흡수동(吸水洞)과 소첩수(小疊水), 독석봉(獨石峰), 대석벽(大石壁)등 다양하고 기이한 경관을 만든다. 웅장한 오봉사(鰲峰寺)와 주변의 비석, 사당건물과 패방, 정자와 누각, 단,돌난간 등 동네의 고건물이 아름다운 화순에 유구한 역사의 무게를 더해준다. (사진설명: 무지개모양의 쌍홍교) 화순의 입구에는 모양이 무지개와 같다고 해서 쌍홍교(雙虹橋)라고 하는 다리 두 개가 있다. 수백년전의 청(淸)나라때 만들어진것으로 알려진 이 쌍홍교는 녹음속에 안겨 있고 맑은 물위에서는 오리떼가 헤어다니면서 무릉도원의 한 장면을 펼친다. 1928년에 오픈한 화순도서관은 중국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시골도서관이다. 높이 올라앉은 정문은 쌍홍교를 마주하고 두번째 문도 높은 단위에 솟아 있다. (사진설명: 화순 도서관 건물) 두번째 문을 지나면 동서양 건축양식을 모은 2층 건물이 나타난다. 1층은 서양식으로 되어 있고 누각식의 건물로 된 2층은 중국식이...
판다번역 2011.05.19 추천 0 조회 2141
(사진설명: 고요한 사계)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차마고도위의 장터동네 사계(沙溪, Shaxi)는 천년동안 이어온 먼 산과 고도(古道), 건물, 장터가 세월속의 골목처럼 사람들은 이끌고 어제와 오늘을 오고간다. 청산의 품속에 안긴 나지막한 산 둔덕에 위치한 사계는 산 좋고 물 맑으며 기후가 좋고 물산이 풍부하다. 바이족을 중심으로 많은 민족들이 모여사는 이 동네는 사람들로부터 "산 좋고 물 맑으며 둔덕이 아름답고 처녀는 더욱 이쁜 물산과 노래의 고향"으로 인정된다. (사진설명: 사계의 옥진교) 사계로 들어가려면 흑혜강(黑惠江)위에 드러누운 옥진교(玉津橋)를 지나야 한다. 1935년에 건설한 이 다리는 축조시간은 길지 않지만 고풍스럽고 웅장한 모습으로 사등가(寺登街)의 일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35m길이의 난간에는 위엄있는 돌사자를 조각하고 다리 중앙의 돌에는 용을 새겼는데 용머리가 흑혜강의 원천쪽을 바라본다. 또 강물의 흐름을 비유하여 상류를 향한 교각면에는 자라머리를 조각하고 하류쪽 교각면에는 자라의 꼬리를 조각했다. 그리고 난간의 양쪽 끝머리에는 흑혜강에서 난다는 도룡농 네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옥진교의 조각물은 교묘한 설계와 정교한 기법으로 높은 예술성을 자랑하면서 사람들의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설명: 사계의 장터 사등가)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통상의 길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일부분인 사계에는 차마고도에서 유일하게 지금까지 남아내려오는 장터 사등가(寺登街)가 있다. 무대건물과 여관, 절, 문을 보존한 사등가에 들어서면 말잔등에 상품을 싣고 차마고도를 따라 여기 저기 다니던 행상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들을 통해 장터의 옛...
판다번역 2011.05.18 추천 0 조회 1620
(사진설명: 아늑한 흑정)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오늘날 잃어버린 소금의 동네 흑정(黑井, Heijing)에 들어서면 고요한 저녁 붉은 돌을 쌓아 만든 패방과 물가에 환한 불빛, 바람에 둥글어진 돌기둥과 돌담이 어젯날의 번화함을 말해주는 듯 하다. (사진설명: 붉은 흑정) 흑정은 "길은 꼬불꼬불하고 산은 높고 험준하며 첩첩 산봉은 하늘과 잇닿아 있고 산과 산이 얼굴을 맞댄 사이로는 맑은 강물이 흐른다"는 용천강(龍川江)기슭에 위치해 있다. 소금이 많지 않았던 운남(雲南, Yunnan)에서 흑정은 고대 대리국(大理國)의 9대 소금의 도시의 하나였다. 충족한 소금자원으로 튼튼한 경제실력을 쌓은 흑정은 풍부한 역사문화유적도 많이 남겼다. (사진설명: 흑정의 거리) 어젯날의 찬란함을 보여주는 흑정의 유적들은 오늘날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흑우염정(黑牛鹽井)이라고 하는 염정유적은 지금까지 남아내려온다. 비스듬히 경사를 조성한 이 염정은 깊이가 80m에 달하고 입구에 2.2m높이에 1.2m너비의 돌문을 달았다. 문묘(文廟)뒤에는 홍수방지목적으로 쌓은 경안제(慶安堤)가 볼만하다. 옛날부터 특대 홍수를 17번이나 맞은 흑정인들은 백여년전의 청(淸)나라때 국고자금을 받아 물가에 방둑을 쌓았다. 찹쌀과 석회, 두장, 진흙을 혼합해 접착제를 만들고 그런 접착제로 돌을 쌓았으며 사이사이에 쇠줄을 넣은 경안제는 큰물에 끄떡하지 않는 작은 장성을 방불케 한다. (사진설명: 흑정의 소금) 오늘날 흑정에서는 어젯날 소금도시로서 흑정의 번화함은 찾아볼수 없지만 전통적인 공법은 피부로 느낄수 있다. 이 곳의 오늘날 주민들은 모두 자체로 소금을 직접 만들줄 알고 이 곳에서는 소금가공의...
판다번역 2011.05.18 추천 0 조회 1937
(사진설명: 아름다운 숭구)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시골에 뿌려진 보석동네 숭구(嵩口, Songkou)는 꿈처럼 황홀하고 현실처럼 진실한 마을이다. 웅장한 고건물과 신비의 보루, 이끼로 덮힌 부두와 운치 있는 조각은 어젯날의 찬란함과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사진설명: 숭구의 고건물) 교통요충지에 위치한 숭구는 예로부터 인근의 경제문화중심지였다. 칠팔백년전의 명(明)나라때에 벌써 이 곳에 순검사(巡檢司)를 두었으며 1949년 남진한 중국인민해방군도 이 곳을 거쳐 복건(福建, Fujian)의 소재지 복주(福州, Fuzhou)로 진군했다. 옛 동네 숭구에 들어서면 높고 낮은 고건물들이 즐비한데 키 높은 담벽과 날아갈듯한 처마, 푸른 기와, 시적인 창문이 이 마을에 들어선 모든 사람을 타임터널로 끌어들인다. (사진설명: 숭구의 가옥) 완정하게 보존된 웅장한 규모와 정교한 공법을 자랑하는 옛 가옥들인 용탄착(用坦厝)과 녕원장(寧遠庄), 만안보(萬安堡), 노양채(蘆洋寨) 등이 푸른 산과 맑은 물속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명청시기 남방특색을 가진 토목구조의 고건물특징과 남부지방의 사당, 산채 등 건물의 특징을 한 몸에 모은 이런 건물은 목각물과 석각물, 벽돌조각 등 예술품도 보유해 민간의 고건물 박물관으로 인정된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용탄착) 넓은 부지를 자랑하는 용탄착은 청(淸)나라때 현지의 부자인 진(陳)씨저택이다. 크고 작은 홀과 서재, 문루, 복도, 마당, 가든을 보유한 이 저택은 방이 200여개에 달한다. 가장 큰 메인홀의 신단앞 창틀 4개에는 삼국시기 인물을 그린 정교한 조각이 있는데 다섯겹으로 된 입체배경과 생동한 표정의 인물이...
판다번역 2011.05.16 추천 0 조회 1997
(사진설명: 화평의 고건물)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300여채의 명청(明淸)시기 고건물을 기적적으로 보존하고 있는 하얀벽체 검정기와의 동네 화평(和平, Heping)은 머나먼 어제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소박한 보석이고 유구한 역사의 박물관이다. (사진설명: 화평의 성문) 교통요충지에 위치한 화평은 926년 당(唐)나라때에 벌써 번화한 무역거리를 조성하면서 많은 역사유적을 남겼다. 화평에는 원래 동서남북 네 방향에 성문이 있었는데 그 중 동쪽과 서쪽의 성문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반면에 600m 길이의 시장거리 구시가(舊市街)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청석을 깐 남북향의 이 거리는 높고 낮은 지세의 굴곡을 따라 "아홉굽이 열셋고개"를 형성하면서 멀리서 보면 마치 막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청룡을 방불케 한다. (사진설명: 화평 구시가) 거리 양쪽에는 백갈래에 이르는 좁은 골목들이 키 높은 담사이에 뻗어 옛스럽고 아늑하면서도 역동적인 생명력을 보여준다. 아무리 좁고 짧은 골목이라 해도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 이름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깃들어 있다. 최대로 너비가 75cm이고 가장 짧게는 50cm에 달하는 골목은 이름이 화기항(和氣巷)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이 골목에서 만나면 서로 몸을 옆으로 탈면서 양보해야 지나갈수 있기 때문이다. 양쪽에 반(潘)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산다고 해서 이름한 반가항(潘家巷)의 골목어귀에 서서 바라보면 빼곡한 건물사이에 골목이 보이지 않지만 골목에 들어가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다. (사진설명: 화평의 골목) 백갈래의 골목들이 건물사이를 오가면서 미로를 형성하는데 거리와 골목에 깐...
판다번역 2011.05.16 추천 0 조회 2596
(사진설명: 동파서원의 건물)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소동파(蘇東坡)가 살았던 시의 고장 중화(中和, Zhonghe)는 천여년전의 송(宋)나라때 대문호 소동파가 3년간 살면서 영향을 끼쳐 오늘날 이 곳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를 즐긴다. (사진설명: 중화의 무정문) 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화는 해남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이다. 한(漢)나라때 인근지역의 도읍지로 된 후 송(宋)나라와 당(唐)나라, 원(元)나라, 명(明)나라, 청(淸)나라를 겪은 중화는 해남에서 가장 완정하게 보존된 옛 성터도 가지고 있다. 1373년 명(明)나라때 축조된 옛 성은 성가퀴 814개를 쌓고 동쪽에 덕화문(德化門), 남쪽에 유원문(柔遠門), 서쪽에 진해문(鎭海門), 북쪽에 무정문(武定門) 등 성문 네 개를 두었다. 성문위에는 망루를 짓고 성밖에는 월성(月城)을 쌓았으며 성을 따라 해자도 파고 해자위에 다리를 세우고 성의 네 귀퉁이에는 각루(角樓)를 새로 쌓았다. 오랜 세월속에 중화의 옛 성은 수차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날은 북문과 서문, 그리고 성 한 구간만 남아 있다. (사진설명: 중화의 건물) 1922년에 조성된 옛 거리 복흥노가(復興老歌)는 옛스러우면서도 모던하다. 250m 길이와 7.5m너비의 거리에는 모두 청석을 깔았는데 청석의 크기가 다양해서 풍부함을 보여준다. 거리 양쪽에는 청(淸)나라때의 건축양식과 중화민국시대의 특징을 모은 건물인 기루(騎樓)가 줄지어 있다. 색이 바랬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보이는 벽면의 입체조각에서는 흘러간 세월을 느낄수 있다. (사진설명: 동파서원의 정자와 정원) 동파서원(東坡書院)은 소동파가 중화에 주거할때 강의하던 곳이다. 역대로 계속 새로운 건물을 추가하면서 오늘날...
판다번역 2011.05.11 추천 0 조회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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