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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포전의 바닷가)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번창하던 어젯날 부두 포전(鋪前, Puqian)은 뒤에 산을 업고 앞쪽으로 바다를 마주하면서 유리한 지리적 위치를 이용해 짙은 부두문화를 형성한 부요한 동네이다. 삼면이 바다에 안긴 포전은 원래 계북(溪北)이라 불렀고 편리한 수로와 육로교통으로 인해 해남이라는 큰 섬속의 섬으로 인정되며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사진설명: 고풍스러운 승리가) 1895년에 조성을 시작한 승리가(勝利街)가 바로 번창한 부두를 업고 형성된 옛 거리이다. 동서향과 남북향의 거리가 열 십(十)자로 사귄 이 거리 양켠에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이 곳의 건물은 남양풍이 다분한 기루(騎樓)로 거리쪽을 향한 건물의 1층은 기둥만 있는 공간이어서 지붕있는 보도로 사용된다. 때문에 이 곳의 모든 거리양쪽에는 복도가 펼쳐져 장관이다. (사진설명: 승리가의 건물) 이런 건물들은 특히 지붕장식에 신경을 쓰고 베란다와 난간, 기둥도 각자의 특색을 자랑한다. 그리고 벽체의 무늬와 바람벽의 모양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이 서로 다르다. 동서양 건축기법의 기묘한 접목을 실현한 독특한 이런 건물들은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백여년의 세월속에서 오늘날도 고풍스러운 어젯날의 풍채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계북서원 입구) 해남지역 유명서원의 하나인 계북서원(溪北書院)은 1893년 청(淸)나라때 건물이다. 넓은 부지를 차지한 이 서원은 문도 양쪽에 건물이 딸리고 지붕에 유리기와를 떠인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서원이 서서부터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 곳에서 강연을 했고 많은 인재들이 이 곳에서...
판다번역 2011.05.11 추천 0 조회 1528
(사진설명: 정성의 옛 거리)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남양풍의 옛 물가동네로 불리우는 정성(定城, Dongcheng)은 토지가 비옥하고 자연여건이 우월한 원인으로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인물이 많이 나는 동네였다. (사진설명: 정성의 성문) 강가에 솟아 있는 정성의 옛 성 정안고성(定安古城)은 서문과 북문, 1,000m에 달하는 성벽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성안의 동문가와 중남가, 서문가, 북문가 주변에는 남양풍이 다분한 건물 기루(騎樓)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1369년의 명(明)조때 지은 관아건물인 현아(縣衙)는 사면이 막힌 사합원(四合院)구도이다. 색바랜 문을 지나면 어젯날의 북과 돌기둥, 돌기초 등이 보인다. (사진설명: 정성의 청담정) 1559년의 청(淸)나라때 세운 청담정(淸潭亭)이 북쪽문 옆에 세워져 있고 그 정자에는 청렴한 문화를 고양하는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이 세워진 뒤로 이 곳은 정성의 명소로 정해져 많은 문인묵객들이 이 곳을 찾아 글을 남겼다. 청나라때 신축한 왕영두(王映斗) 생가는 세 개의 큰 뜰이 품(品)자의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뜰마다 방 3개를 가진 안채 4채에 방 3개의 별채 3채, 방 3개의 서당 1채를 거느리고 가운데 거실을 두었다. 왕영두 생가는 크고 작은 뜰 12개에 문 72개를 가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정성의 해원방) 해원방(解元坊)은 1568년의 명(明)나라때 해남 최초로 과거에 급제한 현지인을 위해 세운 패방이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웅장함을 자랑하는 패방은 태풍이 많은 현지의 환경을 감안해 패방의 앞뒤에 비스듬한 기둥을 세웠다....
판다번역 2011.05.11 추천 0 조회 1890
(사진설명: 고풍스러운 동네 애성)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아름다운 남국의 명승 동네 애성(崖城, Yacheng)은 옛날부터 당(唐)나라 감진(鑒眞)스님 등 일본행 스님과 다른 많은 명인들이 찾은 관광지이고 원(元)나라 직포의 어머니로 불리는 황도파(黃道婆)도 이 곳에서 일을 배웠다. 해남(海南, Hainan)도 남단의 최고 관광도시 삼아(三亞, Sanya)시에서 가까운 애성은 경치가 좋고 교통이 편리하다. 기원전 500년부터 해남에 군(郡)을 두었는데 애성이 역대의 고을이었다. (사진설명: 애성의 성문) 1198년에 축조를 시작한 옛 성은 수차의 보수와 증축을 거쳐 완정한 구도, 그쯘한 시설, 방어적 기능을 오늘날까지 보존하고 있다. 단, 세월의 풍상고초속에서 옛 성은 어제의 웅장함을 잃어버리고 남문과 50m 길이의 성벽, 200m 길이에 30m 너비의 해자, 해자위의 다리만 남아 있다. 백여년전의 민국(民國)초기에 조성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남양기루(南洋騎樓)단지는 "민국 제일의 거리"로 인정된다. 7.5m 너비에 200m 길이의 거리 양켠에는 중국 남방 건물특색을 자랑하는 건물인 기루들이 줄지어 있다. 남양의 건축풍을 가미한 이런 기루들은 1층은 가게로 사용되고 2층은 주거용으로 사용된다. 그밖에 기루들 사이에는 회관과 유사한 공공건물도 자리 잡고 있다. (사진설명: 애성의 골목) 애성에는 또한 청(淸)나라때 지은 가옥들도 많다. 혹은 무너진 건물이나 개조중인 건물도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고풍스러운 느낌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옥들은 남북과 동서향으로 된 두 갈래 중심선을 둘러싸고 조화롭게 위치해 있다. 청나라때의 가옥은 대부분...
판다번역 2011.05.09 추천 0 조회 1880
(사진설명: 아름다운 황요)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꿈속의 아름다운 고향 황요(黃姚, Huangyao)는 고요한 동네이다. 아침이나 정오, 아니면 황혼 그 어느때나 그토록 고요하다. 황요는 푸른 동네이다. 물도, 산도, 나무도, 이끼도, 밭도, 심지어 공기도 푸르게 느껴진다. (사진설명: 황요의 맑은 물) 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는 황요는 육칠백년전의 명(明)나라때에 동네가 형성되어 삼사백년전의 청(淸)나라때에 최고에 이르렀다. 동네에 황씨성과 요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해서 이름이 황요이다. 리강(漓江)의 하류에 위치한 황요에는 동굴, 정자와 누각, 절과 암자, 사당, 고목, 액자 등 여섯가지가 많다. 산이 있는 곳에는 필히 물이 있고 물이 있으면 다리가 있고 다리가 있는 곳에는 정자가 있고 정자에는 주련이 있으며 주련은 필히 액자속에 들어 있다. 이 것이 바로 황요이다. 카르스트 지형이기 때문에 황요에는 진무산(眞武山)을 비롯해 기이한 산봉이 많고 요강(姚江)과 소주강(小珠江), 흥녕하(興寧河)가 그 산 기슭에 자리잡은 고건물사이를 굽이 돌아 흐른다. (사진설명: 황요의 고건물) 300여채의 명청(明淸)때 고건물과 푸른 산, 맑은 강, 그리고 강기슭의 무성한 반얀나무와 기이한 바위들은 황요를 시처럼 그림처럼 아름답게 만들면서 모든 사람들의 꿈속에 머문다. 황요의 아름다운 운치는 크지는 않지만 특이한 모양으로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바위들이 만드는 황요팔경에서 볼수 있다. 이런 바위는 모양에 따라 길위에 똬리를 튼 물고기와 해바라기를 하는 닭, 동굴속에서 나오는 뱀, 모래사장위의...
판다번역 2011.05.06 추천 0 조회 1803
(사진설명: 아름다운 흥평의 산과 물과 동네)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가장 아름다운 리강 동네 흥평(興平, Xingping)에는 한적한 시골과 푸르른 숲, 맑은 강물, 밥짓는 연기, 그 속의 사람들이 속세와 동떨어진듯한 아름다운 무릉도원을 만든다. 리강(漓江)의 동쪽에 위치한 흥평은 256년에 벌써 희평(熙平)현으로 되었다가 590년에 현이 오늘날의 양삭(陽朔, Yangsuo)으로 옮겨가면서 이름을 흥평으로 바꾸었다. (사진설명: 흥평의 황포도영) 빼어난 산봉을 뒤에 업은 흥평에서 흥평하가 리강에 합류하기 때문에 흥평에는 "담소 하나와 섬 세 개, 여울 세 개, 바위 세 개, 우물 다섯 개, 산 열두 개"가 있다. 강물이 푸른 숲속을 굽이돌고 강기숡에 아늑하고 수려한 시골경관이 펼쳐진 이 곳은 리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 모여 있는 곳이다. 1999년에 발행한 인민폐 20원 지폐 후면의 사진 <황포도영(黃布倒影)>이 바로 흥평의 경관이다. (사진설명: 흥평 옛 거리) 과거에 저자거리였던 흥평 옛 거리는 어젯날의 구도와 거리를 오늘도 유지하고 있다. 1km 길이의 돌길이 흥평 옛 동네로부터 시작해 리강기슭까지 뻗어 있다. 거리 양쪽에는 지방별 회관이 줄지어 있고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는 성터 곳곳에서는 벽돌과 기와가 보인다. "차와 말이 오가고 사람이 사람을 구경하던" 어젯날의 번성하던 동네가 오늘날은 푸른 산과 맑은 물이 고요한 자연의 동네로 바뀐 것이다. (사진설명: 흥평의 고건물) 가끔 검정칠을 한 반들반들한 가게의 매대와 구식 의자,...
판다번역 2011.05.06 추천 0 조회 2081
(사진설명: 아름다운 대서)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미니 계림(桂林, Guilin)으로 불리우는 동네 대서(大圩, Daxu)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고풍스럽고 아름답고 아늑하면서도 번영하는 동네라는 느낌을 준다. (사진설명: 대서의 건물과 물과 산) 이쁜 산과 맑은 강물로 내외에 이름이 자자한 관광지 계림에서 멀지 않은 대서는 수륙교통이 아주 편리하다. 천여년전의 북송(北宋)때 벌써 번화한 교통허브로 부상해 그 때의 도읍과 비교해 미니 장안(長安)으로 불리웠다. 남송말에 대서에 세관을 설립하고 강가를 따라 5리에 달하는 큰 장터를 조성했다. 그로부터 지명도 큰 저자거리라는 의미로 큰 대(大)자에 장터 서(圩)자를 붙여 대서라 하게 되었다. (사진설명: 대서의 석판가) 백여년전에 조성된 800m 길이의 석판가(石板街)는 대서의 심벌이다. 편리한 수륙교통으로 번성기를 달릴때 많은 외지인들이 이 곳에 회관을 짓고 가게를 만들면서 형성된 거리이다. 가게건물들은 대부분 2층으로 되어 있고 벽은 별돌로 쌓았으며 문은 나무문이다. 바람이 잘 통하도록 높게 한 천정의 건물벽에는 네모난 창을 내기도 했다. 거리쪽건물은 가게로 사용되고 그 뒷쪽으로는 강변까지 깊은 뜰을 조성하고 정원 주변에 주거용 건물을 지었다. 벽체만 벽돌이고 모두가 목조건물이라 화재만 발생하면 금방 재로 변하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큰 화재가 날수록 그 집의 부가 많다고 인정하면서 화재후에는 가장 빠른 시간안에 다시 건물을 새로 짓군 했다. (사진설명: 대서의 료충원) 대서에서 가장 대표적인 가옥은 청나라때 지은 키...
판다번역 2011.05.04 추천 0 조회 1515
(사진설명: 아름다운 오양의 야경)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중국의 파타야로 불리우는 동네 오양(吳陽, Wuyang)에는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과 그물을 던지는 어부, 고요한 달, 극포어귀(極浦魚歸), 한문비설(限門飛雪)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감강(鑒江)이 바라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한 오양은 수려한 경치를 자랑할뿐만 아니라 넓은 벌에 하천이 많고 땅이 비옥하며 강우량이 충족해 풍부한 물산을 자랑한다. (사진설명: 오양의 고건물 중 장원부) 오양에는 또한 천여년전 남송(南宋)때의 극포정(極浦亭)과 독서루(讀書樓), 9백여년전 원(元)나라때의 성전(聖殿), 6백여년전 명(明)나라때의 쌍봉탑(雙峰塔), 3백여년전 청(淸)나라때의 장원부(狀元府) 등 다양한 역사문화명소가 있다. 푸른 산과 맑은 물 사이에는 고흥륭사(古興隆寺)와 성황묘, 금련암(金蓮庵), 중산(中山)기념당, 포대 유적, 항만 유적 등 많은 문화고적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진설명: 오양의 쌍봉탑) 1599년에 축조한 쌍봉탑은 풍수를 위해 강과 바다기슭에 쌓은 탑이다. 23m 높이의 탑은 팔각형에 7층 구조이며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지고 층마다 처마를 만들었다. 탑은 꽃무늬를 조각한 화강암기초에 받들려 있는데 1m 높이의 가장자리에 생동하고 상이한 모양의 탑을 받치는 장사를 조각해 고풍스러움과 장관을 연출한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몇백년전 현지의 유지들은 오천강(吳川江)이 오양을 거쳐 바다로 흘러들어가면서 오양의 부도 물을 따라 바다로 나가버리기 때문에 오양이 가난하다고 인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1599년 그 때의 관리는 오양의 산과 물을 지키고 오양의 경제부흥을 위한 의미로 오천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에 탑을 세우기로 했고...
판다번역 2011.05.03 추천 0 조회 1928
(사진설명: 홍양의 철산난)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유적이 많은 옛 동네 홍양(洪陽, Hongyang)은 삼면에 산이 둘러선 평야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물이 모두 이 곳에서 모이면서 유구한 역사와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홍양을 둘러싼 산 가운에 가장 대표적인 산이 일명 철산(鐵山)이라고 하는 철령(鐵嶺)이다. 산봉이 첩첩하고 소나무 울창한 철령에는 짙은 향기를 뿜는 천연 난이 특히 유명하다. 철산난(鐵山蘭)이라 이름하는 이 난은 어제는 이 곳 팔경의 하나였으며 현재는 홍양이 속해 있는 보령(普寧, Puning)시의 시화이고 예로부터 많은 시인들의 글에서도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사진설명: 홍양의 배풍탑) 1575년에 형성된 동네 홍양에는 배풍탑(培風塔)과 덕안리(德安里), 화엄사(華嚴寺), 문창각(文昌閣), 보령학궁(普寧學宮), 방방(方方)기념관, 성황묘(城隍廟) 등 다양한 명소가 있다. 속칭 오리탑(烏犁塔)이라고 하는 배풍탑은 1742년의 청(淸)나라때 축조되었다. 배풍탑은 흙으로 팔각형모양에 7층 높이의 탑을 쌓았는데 탑속에 계단을 만들어 그 계단을 이용하면 정상까지 올라갈수 있고 각 층에 난 창문을 통해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수도 있다. 그리고 층마다에는 붉은 벽돌로 조금 튀어나온 처마를 만들었고 제일 윗층인 7층에는 천정을 만들었으며 지붕에는 크고 작은 두 개의 호로박을 만들었다. 200여년의 세월속에서도 변함없이 솟아 있는 배풍탑 정상에 올라 난간에 의지해 저 멀리 바라보면 남쪽으로는 홍양이 한 눈에 안겨오고 북쪽에는 용강(榕江)이 장관이다. (사진설명: 홍양의 덕안리) 1868년에 신축한 덕안리는 청(淸)나라때 광동지역의 해군제독 방요(方耀)의 저택이다. 덕안리는 백마리...
판다번역 2011.05.02 추천 0 조회 1818
(사진설명: 아름다운 갈석)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불상과 바다의 동네 갈석(碣石, Jieshi)은 1389년의 명(明)나라때 이 곳에 국가를 보호하는 관문격인 행정단위 위(衛)를 두고 갈석위(碣石衛)라는 비석을 세웠기 때문에 이름이 갈석이다. (사진설명: 갈석의 현무산 패방) 바다를 통해 홍콩, 마카오와 가까운 갈석은 갈석만을 중심으로 한 어업의 동네이다. 남해기슭에 위치한 현무산(玄武山)은 유구한 역사와 수려한 경치를 가진 관광지이고 불교와 도교의 도장이다. 현무산에는 원산사(元山寺)와 복성루탑(福星壘塔), 무대건물, 태평석(太平石), 사미정(四美亭) 등 유적들이 적지 않다. 1127년 남송(南宋)때 신축한 원산사는 광동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문화재가 가장 풍부한 절이다. (사진설명: 갈석의 절 원산사) 그 뒤 명(明)나라와 청(淸)나라에 걸쳐 수차 보수와 증축을 통해 오늘날의 규모를 이룬다. 산세를 따라 사합원(四合院)식의 궁궐식 건물 원산사는 엄격한 대칭을 이룬다. 세 겹의 건물을 거쳐 점점 높아지는 지세를 따라 원산사 정전(正殿)에 이르며 좌우에 산문(山門)과 전전(前殿), 중전(中殿), 별채, 홀, 스님 숙소, 복도 등 99채의 건물이 자리잡고 교묘한 구도와 무성한 숲속의 아늑한 오솔길을 자랑한다. (사진설명: 갈석 원산사의 정자와 비석과 정원) 종교건축과 궁궐건축, 민가건축, 원림건축을 한 몸에 모은 원산사는 금빛으로 화려하고 조각과 장식물이 정교하며 절을 지키는 돌 사자는 언제 봐도 위풍이 당당하다. 원산사에는 천여녀전 송나라때의 구리동상과 명나라때의 석가모니 목각상, 청나라 동치제(同治帝)가 하사한 간판을 비롯해 귀중한 역사문화재들이 많다. (사진설명: 갈석의 현산탑)...
판다번역 2011.05.02 추천 0 조회 2371
(사진설명: 아름다운 석룡)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전한데 의하면 용이 바쳐주는 역도의 동네 석룡(石龍, Shilong)의 동강(東江)바닥에는 돌로 된 용 한 마리가 있다고 한다. 꾸불꾸불 바닥을 기다가 머리 들어 저 멀리 바라보면서도 떠나지 않아 동네 이름이 석룡이다. (사진설명: 석룡의 중산로) 동강을 망라해 세 줄기 강물의 합수목에 위치한 석룡은 북쪽으로 광주(廣州, Guangzhou), 남쪽으로 심수(深圳, Shenzhen)를 두고 옆에는 홍콩을 끼고 있다. 편리한 수로로 인해 석룡은 벌써 몇백년전의 청(淸)나라때 동강 수송의 허브지역으로 부상했으며 광동의 쌀과 목재 등 주요 상품의 거래를 통제하는집산지였다. 1929년에 조성된 중산로(中山路)는 손문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석룡 최초의 거리이다. 번화한 상업거리의 양켠에는 완정하게 보존되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광동특색의 건물 기루(騎樓)가 있다. (사진설명: 석룡의 역도 동상) 손문선생은 군벌과 싸우던 대혁명시기 동정군(東征軍)의 본거지였던 이 곳을 14번이나 찾았고 이 곳에서 전투를 지휘했었다. 그로 인해 동정군이 전투동원을 했던 석룡공원도 1924년에 중산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석룡은 또한 역도의 고장이다. 이 곳에서 태어난 많은 역도선수들이 중국을 대표하여 세계와 아시아 경기에서 수차 금메달을 땄다. (사진설명: 석룡의 구선원) 1740년에 세워진 구선원(歐仙院)은 이 곳에서 태어난 한 유지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구선이라고 하는 그 사람은 젊어서 타지에서 높은 관직에 머물다가 노후에 고향에 돌아와 낚시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밤에...
판다번역 2011.05.02 추천 0 조회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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