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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롱성의 행사장면)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스토리가 많은 여와(女娲)의 고향 롱성(陇城, Longcheng)에는 중국의 비조로 공인되는 여와씨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그로부터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순수한 자연의 롱성) 전하는데 의하면 7800여년전에 중국인의 선조들이 이 곳에서 맥을 잇기 시작했으며 전설속 인류의 비조인 여와씨가 바로 이 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06년에 한무제(漢武帝)가 이 곳에 량주(凉洲) 자사부(刺史部)를 두고 이름을 롱성이라 했고 그 뒤 역대로 이 곳에 상응한 행정중심을 설치해 오늘에 이르렀다. (사진설명: 롱성의 옛 성) 역대로 롱성을 관리하던 곳이 바로 고성(故城)이라고 하는 롱성 옛성인데 762년에 외족의 침략에 의해 이 땅에서 소실되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옛성은 구백여년전에 재건한 일명 팔괘성(八卦城)이라고 하는 옛동네이다. 1837년에 큰 물이 져서 동네의 반이 물에 밀려가고 그 뒤 장기간에 걸친 보수를 통해 너비 8m, 높이 10m의 성이 10m길이로 한 구간만 남아 내려오면서 어제를 이야기한다. (사진설명: 롱성의 옛 거리와 건물) 예로부터 실크로드선상의 무역도시인 롱성에는 많은 타지방의 상인들이 모여 다양한 건물을 지었다. 명(明)나라때의 건물풍을 보여주는 도헌패방(都憲牌坊)에서 시작해 청(淸)조의 풍을 보여주는 와황(娲皇)의 고향 패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물들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대부분 무너지고 가게건물만 남아 있다. 약 200m 길이의 거리에 당시 현지인들의 건축기술과 풍토인정을 보여주는 고건물 4,50여채가 모여 높은 관상적 가치와...
판다번역 2011.03.30 추천 0 조회 2170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합달포)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홍군장정의 주유소로 불리우는 동네 합달포(哈達鋪, Hadapu)는 홍군 북상의 이정표와 만리장정 승리의 전환지이기도 하다. 합달포는 바로 그런 특수한 위상으로 중국혁명의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사진설명: 합달포의 유적지 장가대원) 1935년 9월 20일 만리에 달하는 장정을 통해 남부에서 북상한 중국 공농홍군(工農紅軍)이 민산(岷山)기슭에 위치한 합달포에 이르러 이 곳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섬서(陝西, Shanxi)북부에 본거지를 설립할데 관한 결정을 내렸다. 중국혁명사에서 중요한 한 폐지를 차지하는 이 결책이 합달포에서 내려졌기 때문에 합달포는 "중국공농홍군 장정운명을 결정한 결책지"로 명명되어 사서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로도 부상했다. (사진설명: 합달포 홍군장정 기념관) 1978년에 신축된 합달포 홍군장정 기념관과 2006년에 세운 장정 기념관은 모택동(毛澤東, Maozedong)의 주거지 의화창(義和昌)과 홍군 사령부 동선사(同善社), 회의실인 관제묘(關帝廟), 홍군 지휘부 장가대원(張家大院), 합달포 소비에트 정부, 소비에트 합달포 빨찌산 사령부 등 명소로 구성되어 있다. 기념관에는 또한 혁명 문화재 52점과 장정에 참여했던 장군들이 남긴 글과 그림 116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설명: 합달포 옛 거리) 합달포 상하(上下) 옛 거리는 홍군의 장정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상과 역할을 자랑한다. 382개의 가게로 구성된 1200m 길이의 이 거리에는 많은 혁명 유적과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장정과정에 홍군이 걸었던 가장 긴 거리이고 그 때의 장면이 가장 완정하게 보전된 이 거리는 "중국...
판다번역 2011.03.30 추천 0 조회 2081
(사진설명: 멀리서 본 신성)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언덕위의 세월속 동네 감숙(甘肅, Gansu)의 신성(新城, Xincheng)은 뭇 산의 품속에 안긴 수려한 경치와 황묘(隍廟), 뢰조묘(雷祖廟) 등 문화유산, 신 맞이 단오절 등 민속행사, 호방하면서도 부드러운 산 노래 등으로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신성의 조주변장) 신성은 먼 옛날부터 주변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중심지였다. 산 기슭에 둥지를 틀고 앉은 거대한 용처럼 웅장함을 자랑하는 신성은 어제의 모든것을 잘 보전하면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신성에는 조주변장(洮州邊墻)이라고 하는 사오백년전 명(明)조때 쌓은 성이 있다. 이 성은 평야와 골에는 높은 성을 쌓고 산등성이에는 깊은 해자를 팠으며 아찔한 절벽을 만나면 자연형성된 절벽으로 방어역할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설명: 조주변장의 문음문) 벼랑과 해자, 성으로 연결되면서 기복을 이룬 조주변장은 높은 곳에 연대를 만들어 조화를 기했다. 성의 길어귀마다에는 문음문(門音門)이라는 통로를 만들고 문의 안쪽에는 군대가 입주할수 있는 보루를 쌓았다. 세월이 흘러 어젯날 이 땅을 지켜온 성이 오늘날은 뭇 산속에 몸을 숨기고 터만 남았다. 하지만 군사적 기능만으로 쌓여졌던 이 성이 오늘날은 관광지로, 경제의 흐름선으로, 지역획분선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사진설명: 가까이에서 본 조주변장) 신성의 소비에트 유적지는 원래 원(元)조 쿠빌라이 황제가 운남(雲南)으로 남진할때의 행궁으로 1400년대에 세워졌다. 높은 등성이에 올라앉은 유적지는 성곽이 둘러서고...
판다번역 2011.03.28 추천 0 조회 2274
(사진설명: 멀리서 본 대정)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감숙(甘肅, Gansu) 4대 옛 동네의 하나인 대정(大靖, Dajing)은 단하지모의 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으로 끝간데 없이 넓은 사막을 가까이 하고 동쪽에는 사막과 가장 가까운 원시림을 낀 대정은 웅장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사진설명: 가까이에서 본 청산사 건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정은 일찍 사천여년전에 벌써 사람들이 모여 일하고 살던 곳으로써 찬란한 역사문화를 보유한다. 상가들이 성을 쌓은 대정에 모여들면서 이 곳은 실크로드와 하서주랑(河西走廊)의 주요한 동네로 부상했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성안에 주거하고 넓은 땅을 가지고 부유하게 살았으며 사업도 번창했다"고 한다. 번성기에 대정에는 성곽이 완정하고 가옥들이 빼곡하며 가게가 즐비하고 절이 많았다. 그로부터 재신각(財神閣)과 마가(馬家)사당, 마묘회관(馬廟會關), 청산사(靑山寺) 등 유적들이 오늘날 대정의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이밖에 대정협 댐과 황하 인공수로의 기슭에 무성한 숲과 순박하면서도 짙은 현지의 특색을 보이는 민속도 좋은 볼거리이다. (사진설명: 재신각 일면) 일명 고루(鼓樓)라고도 하는 재신각은 1718년에 세워졌고 1987년에 재건을 거쳤다. 16개의 기둥에 받들려 있는 21m 높이의 재신각에 올라서면 온 동네가 한 눈에 안겨온다. 3층 건물의 재신각 중 벽돌로 된 1층에는 사면으로 문을 냈고 목조건물로 된 2층에는 날아갈듯한 지붕을 떠인 중앙의 건물을 중심으로 사면에 복도를 만들어 전망대로 사용할수 있다. 2층의 사면에도 문을 내고 그 문위에...
판다번역 2011.03.25 추천 0 조회 1863
(사진설명: 연성 패방)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티베트 불교의 승지로 불리우는 동네 연성(連城, Liancheng)은 기후가 좋고 녹음이 무성하다. 만리장성 이북지역의 호방한 경치와 강남의 정교한 경관을 두루 갖춘 연성은 산수가 수려하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연성) 감숙(甘肅, Gansu)과 청해(靑海, Qinghai)이 연결된 곳에 위치한 연성은 대통하(大通河)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다. 금속제련의 야금밸리로도 불리우는 연성은 여덜 보물의 계곡이라는 의미로 팔보천(八寶川)이라는 미명도 가진다. 특수한 지리적 위치와 우월한 자연여건으로 인해 일찍 신석기시대에 벌써 연성에는 사람들이 살았다. 현재 고대문화 유적 십여곳을 발견했고 많은 정교한 도자기들이 출토되었다. (사진설명: 연성에서 출토된 도자기) 마가요(馬家窯)문화를 대표하는 채색 도자기와 제가(齊家)문화, 신점(辛店)문화를 대표하는 채색도자기가 출토되었다. 그 중 둘레 148cm, 높이 62cm의 채색 도자기는 중국 최대의 채색 도자기이다. 연성의 고건물은 대부분 뜰 하나와 그 주변에 건물이 줄지어 선 사합원(四合院)구도이다. 안채와 홀, 양쪽의 별채, 문을 가진 이런 가옥은 사용된 목재의 수량과 조각의 화려함으로 다양하게 분류된다. (사진설명: 연성의 건물과 뜰) 모든 사합원에서 안채와 문의 급별이 가장 높고 홀과 별채가 그 다음순이다. 방향을 중시한 뜰은 주변의 환경에 근거해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에 근거해 뜰의 주변에 안채와 별채의 위치를 정한다. 현지의 독특한 건축풍을 보여주는 연성의 가옥은 고대인들이 오랜 세월동안 창조하고 쌓아온 지혜의 결정체라고 할수 있다. (사진설명: 연성의...
판다번역 2011.03.24 추천 0 조회 2109
(사진설명: 멀리서 본 청성)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다양한 문화와 고색이 창연한 고건물을 가진,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황하(黃河)기슭의 푸른 동네 청성(靑城, Qingcheng)은 고대 실크로드상의 무역동네이고 오랜 세월동안 군사요충지이기도 하다. 중국 제이의 하천인 황하(黃河)협곡과 오금협(烏金峽)사이의 좁은 계곡에 위치한 청성은 일조성(一條城)으로도 불린다. 황하가 동네를 관통하는 청성은 황토고원에서 보기 드물게 물산이 풍부한 담배의 동네이다. (사진설명: 청성의 건물과 산)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천여년전의 송(宋)조때 이 곳을 관리하던 적청(狄靑)이라는 이름의 칙사가 이 곳에 동네를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이름이 청성이다. 사서에 의하면 청성은 예로부터 수연통으로 피우는 살담배인 수연(水煙)의 집산지였다. 편리한 수륙교통으로 인해 베이징(北京, Beijing)과 천진(天津, Tianjin), 태원(太原, Taiyuan) 등지의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 외래문화를 받아들인 청성의 가옥은 산서(山西, Shanxi)의 건물풍과 베이징의 사합원(四合院)풍을 두루 갖추었다. (사진설명: 가까이에서 본 청성의 건물) 현재 청성에는 수백년전 청(淸)조때 지은 사합원 건물 50여채가 남아 있다. 이런 고건물들은 문에서부터 시작해 조벽(照壁), 건물, 처마, 창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교한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동물이나 꽃 등 다양한 내용의 이런 무늬는 모양과 뜻, 동음이의어 등 방법으로 예술적 언어를 구성하고 또한 모든 무늬가 사람들의 상서로운 소망을 보여준다. (사진설명: 청성서원 정문) 유구한 역사와 좋은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예로부터 많은 문인묵객들이 이 곳에 주거하면서 청성의 찬란한...
판다번역 2011.03.24 추천 0 조회 1832
(사진설명: 멀리서 본 진로)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고풍스러운 천년 청자의 동네 진로(陳爐, Chenlu)의 거리를 거닐면 그 어디서나 어젯날의 도자기 가마 흔적이 보이고 곳곳에서 고대 건축예술을 느낄수 있다. (사진설명: 진로의 도자기 가마)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산 등성이에 자리잡은 진로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많이 진열되었다는 의미의 "도로진열(陶爐陳列)'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1400여년의 도자기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진로는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도자기 가마의 불을 천년동안 이어오는 고장이다. 또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도자기 가마로 인해 진로는 내외 도자기사에서 하나밖에 없는, 보기 힘든 동방의 고대 도자기 동네의 활화석으로 인정된다. (사진설명: 진로의 도자기 도로와 도자기 담) 진로에 들어서면 오륙백년전 명청(明淸)시대에 도자기를 굽던 원시적인 장소가 여전하다. 산속에서 흙을 파서 손밀차로 수송해온 다음 도자기 자재를 섞어 반죽하고 손으로 모양을 빚은 다음 여기저기에 놓아둔다. 흰 벽과 푸른 숲속에 도자기로 쌓은 담이 아담하게 천태만상을 이루면서 말없이 유구한 역사를 보여준다. 산속에 뿌리 내린 이 기이한 보석은 도자기로 내외의 관광객을 끌고 있다. (사진설명: 진로의 도자기벽) 진로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도자기를 만들수 있는 진흙이고 가장 많은 것은 남아도는 도자기이다. 현지인들은 실패한 도자기를 가지고 담을 쌓고 길을 만들어 도자기 가마와 도자기 가마사이, 도로와 도로사이에 도자기 담을 줄줄이 세웠다. 조금 여유가 있는 집들에선 검은 도자기...
판다번역 2011.03.24 추천 0 조회 2881
대양: 산서 최대의 옛동네 2011-03-16 10:22:16 cri 글씨크기: A A A (사진설명: 역사문화의 동네 대양)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산서(山西, Shanxi) 최대의 옛동네 대양(大陽, Dayang)은 동쪽과 서쪽에 두 동네로 구성되고 남과 북에 산채 네 채, 강가에 산장 18채, 골목 72갈래를 가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대양의 성루) 옛적에 양아(陽阿, Yang'a)로 불리운 대양은 일찍 기원전 200여년전인 춘추전국시대에 제철업을 발전시키고 수공업도 전성기를 누려 내외에 이름이 자자한 동네이다. 옛 동네에 들어서면 높은 성루에 걸려 있는 "고양아현(古陽阿縣)"이라는 석각액자가 한 눈에 보인다. 그 성문을 지나면 양쪽으로 고건물을 거느린 옛 거리가 맞이해준다. (사진설명: 대양의 옛 거리) 옛 거리 양켠의 고건물들은 대부분 2층 목조건물이다. 1층은 가게로 사용하고 2층은 주거시설로 사용된 이런 건물들이 빼곡이 줄지어 있는데 문틀과 기둥은 여전히 옛스럽고 매대는 오랜 세월속에 가맣게 반들반들해졌다. 오늘날 대양에서는 어젯날의 대추시장과 쌀시장, 꽃시장, 채소시장, 소금시장은 찾아볼수 없지만 현지인들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어젯날의 찬란함을 찾아볼수 있다. (사진설명: 광록제의 복잡한 구도) 옛 거리의 중앙에는 광록제(光祿第)라고 하는 사오백년전 명(明)조때 예부상서(禮府尙書)의 저택이 자리잡고 있다. 키 높은 정문에서부터 웅장한 기세를 자랑하는 이 저택은 구궁팔괘(九宮八卦)식의 구도로 설계되었다.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뜰과 뜰이 연결되고 건물과 건물이 손을 잡아 제일 주요 건물까지 이르려면 18개의 문을 거쳐야 한다. 또한...
판다번역 2011.03.21 추천 0 조회 1844
(사진설명: 고요한 동네 분성의 거리)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고풍스러운 고요의 동네 분성(汾城, Fencheng)에서는 건물마다 자기만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현대 문명속에 감추어진 소박함으로 어제와 오늘이 함께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사진설명: 옛스러운 분성의 건물) 옛날에 태평(太平)현으로 불리운 분성은 려량(呂梁)산맥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예로부터 밀과 목화가 많이 나는 이 곳에는 어젯날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고건물도 즐비하다. 고풍스러운 학전탑(學前塔)과 대전탑(大砖塔), 보구사탑(普救寺塔), 금(金)조때의 구리종, 북위(北魏)때의 대종, 문묘(文廟)의 비림(碑林)속에 서면 옛 동네의 문화적 분위기가 서서히 몸을 감싼다. (사진설명: 성황묘의 문) 1369년에 세운 성황묘(城隍廟)는 영벽(影壁)과 깃대, 패방(牌坊), 산문, 무대, 헌정(獻亭), 대전(大殿), 종루(鐘樓) 등 건물을 거느린다. 찬란한 유리기와와 대들보의 정교한 조각이 특히 화려하다. 성황묘 동쪽의 이씨(李氏)민가는 건축양식으로 봐서 청(淸)조 건물로 판단된다. 뜰을 가진 남향의 건물이 깊이 3칸, 너비 3칸을 거느리고 날아갈듯한 처마를 떠이고 있다. 벽돌로 지은 괴성각(魁星閣)도 고풍스러운 느낌을 다분이 풍긴다. 지금도 괴성각을 지나면 당시의 문화를 지배하던 이 건물에 대한 숭배와 문화에 대한 그 때 사람들의 갈망을 느낄수 있다. (사진설명: 문묘의 령성문) 천여년전 당(唐)조때 신축한 문묘(文廟)는 완정한 구도를 보존하고 영벽과 령성문(棂星門), 연못, 대성문(大成門), 명환사(名宦祠), 향현사(響賢祠), 대성전(大成殿), 장경루(藏經樓), 계성사(啓聖祠) 등 건물들을 거느리고 있다. 문묘 동쪽의 왕씨(王氏) 지부(知府) 저택은 사오백년전의 명(明)조 건물로 사면이 막힌 뜰을 끼고 동쪽과 서쪽에 주요...
판다번역 2011.03.21 추천 0 조회 1753
정승: 산서의 첫 동네 2011-03-16 09:53:15 cri 글씨크기: A A A (사진설명: 고요한 동네 정승)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산서(山西, Shanxi)의 첫 동네로 불리우는 정승(靜昇, Jingsheng)은 유구한 전통문화를 보유한 옛 동네이다. 이 곳에서는 동네 곳곳의 일상생활속에서 상이한 시대와 그 시대 사람들의 소망 등을 읽을수 있다. (사진설명: 고풍스러운 정승의 저택)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면산(綿山)기슭의 물가에 자리잡은 정승에는 한길이 동서로 뻗어 있고 그 도로를 중심으로 골 9개, 보루 8개, 골목 18갈래가 위치해 있다. 정승이라는 동네 이름은 "고요함 속에 상서로움이 있고, 춤과 노래가 태평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고요할 정(靜)자와 오를 승(昇)자를 붙여 정승이라 하게 되었다. (사진설명: 아늑한 정승의 골목)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일찍 신석기시대에 이 곳에는 벌써 인류가 주거했고 기원전 천여년에 열심히 일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살기 좋은 곳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사오백년전의 청(淸)조에 이르러 농업과 상업의 발전과 함께 절과 가옥을 대량 신축해 산서의 첫 동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정승에는 크고 작은 가게와 우물, 돌길, 무대건물 등이 어젯날의 번성을 보여준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왕가대원) 산세를 따라 산기슭에 조성한 사합원(四合院)식의 페쇄된 왕가대원(王家大院)의 모든 뜰에 있는 단상에 서서 저 멀리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청조때 수십년에 걸쳐 건설을 지속한...
판다번역 2011.03.21 추천 0 조회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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