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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강물에 안긴 동네 안거)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강물에 안긴 산동네 안거(安居, Anju)는 수려한 경치와 고색이 창연한 건물, 적갈색의 땅으로 흐르는 맑은 강물 등 그 어디서나 순박함과 고요함을 풍긴다. 대안계(大安溪)라는 이름의 강물이 동네를 경유하는 안거는 예로부터 수로와 육로의 교통 요충지였다. 험준한 지세의 안거는 15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번화한 동네이다. (사진설명: 안거의 옛 건물) 역사를 보면 유리한 지세를 가진 이 곳에는 언제나 군사들이 주둔했고 상업은 더욱 발전해 실크와 대나무, 마제품, 쌀, 술 등 거의 모든 물품이 이 곳에서 거래되었다. 안거의 종교문화도 더 없이 풍부해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파륜사(波侖寺)와 도교문화의 원천궁(元天宮), 유교문화의 문묘(文廟), 민속문화의 마조묘(妈祖廟)가 각자 다양한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또한 한림원(翰林院)과 사당을 비롯한 일반 가옥들도 그 속에서 찬란한 빛을 뿌리면서 모든 것을 수용하는 포용성이라는 안거의 지역문화 특색과 찬란했던 어젯날의 안거를 보여준다. (사진설명: 안거의 옛 성문) 군사적 기능을 감안해서인지 안거는 성을 쌓을 때 동쪽에 자기문(紫氣門),서쪽에 읍쌍문(挹爽門), 남쪽에 성휘문(星輝門), 북쪽에 승은문(承恩門)을 둔 외에도 그 사이에 인봉문(引鳳門), 영룡문(迎龍門), 안경문(安慶門), 소남문(小南門) 등 도합 8개의 성문을 설치했다. 높이 쌓은 성과 그 성에 설치된 8개의 성문 중 오늘날은 높이 15m, 너비 7m, 두께 5m에 달하는 인봉문을 비롯해 사거리의 두 성문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세월에 묻혀 버렸다....
판다번역 2011.02.15 추천 0 조회 2111
래탄: 어부의 불빛이 아련한 동네 2011-02-10 16:15:46 cri 글씨크기: A A A (사진설명: 래탄의 옛 거리)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어부의 불빛이 아련한 동네 래탄(涞灘, Laitan)에서는 물가의 여울에서 고풍스러운 건축문화와 생선중심의 음식문화, 순박한 민속문화를 느낄수 있으며 특히 채식문화제에도 참가할수 있다. 거강(渠江)의 서쪽의 산 기슭에 위치한 래탄은 천여년전의 당(唐)조때 동네가 형성되어 당조의 석각과 송(宋)조의 옛 동네, 청(淸)조의 옛 건물을 지금도 완정하게 보존하고 있다. (사진설명: 래탄의 청석길) 그리 크지 않은 래탄은 상래탄(上涞灘)과 하래탄(下涞灘)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강의 부두와 연결된 거강 기슭의 하래탄은 청석을 깔아 만든 옛 거리로 수백년동안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반들반들한 청석이 움푹 패여 부드러운 빛을 낸다. 세월의 풍상이 엿 보이는 거리는 고요하고 양켠에는 목조건물로 된 가옥들이 소박하게 줄지어 있다. 지붕에는 현지에서 나는 작은 청기와를 얹었고 길게 뻗어나온 처마와 흑갈색의 문, 하얀 벽이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상래탄) 하래탄보다 훨씬 큰 상래탄에 건물과 사람들이 집중되어 있다. 하래탄의 윗쪽에 위치한 상래탄의 건물은 높은 담을 가지고 웅장함을 자랑해 마치 거대한 용이 산허리에 둥지를 튼 것 같다. 형제처럼 상하 지척에 나란히 위치한 하래탄과 상래탄은 하나는 낮은 곳에 부드럽게 위치하고 하나는 높은 곳에서 강인함을 보여주면서 서로 대칭을 이룬다. (사진설명: 래탄의 옹성) 1862년에...
판다번역 2011.02.11 추천 0 조회 2762
(사진설명: 멀리서 본 주마)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바같세상이 아무리 화려하게 변해도 민간 이야기의 고장으로 불리우는 옛 동네 주마(走馬, Zouma)는 여전히 어젯날의 질박함과 아늑함을 지키고 있다. (사진설명: 주마의 고건물) 육칠백년전의 명(明)조때에 벌써 동네가 형성된 주마는 예로부터 교통이 편리해 철도와 도로가 이 세상에 나타나기전에 이 곳은 사천(四川, Sichuan)성 소재지 성도(成都, Chengdu)에서 대 도시 중경(重慶, Chongqing)을 오가는데서 필히 거쳐야 하는 요충지었다. 말을 타고 이동했던 옛적에 중경에서 출발해 주마에 이르면 마침 사람과 말이 모두 피곤해져 사람들은 이 곳에 역참을 세웠고 그로부터 이 곳에서 쉬어가는 사람들이 타지역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교류해 주마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사진설명: 주마의 옛 거리) 세상사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입으로 자자손손 전해지면서 주마의 어제를 보여주고 그로 인해 주마는 "구비문학의 고장"이라는 미명을 가지게 되었다. 주마의 옛 거리를 따라 백년역사를 보유한 옛 가게에 들어서면 옛 건물의 처마는 불에 그을려 검어지고 기름때가 묻어 반들반들한 옛 식탁이 놓여져 눈을 감으면 바삐 오가면서 손님을 접대하던 어젯날 가게 점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사진설명: 주마의 무대 건물 성무희루) 옛 가게에서 나와 돌계단을 따라 가면 사오백년전에 세운 무대 건물인 성무희루(聖武戱樓)가 한 눈에 안겨온다. 중국 최대의 황실정원인 베이징(北京, Beijing) 이화원의 무대건물과 유사한 넓은...
판다번역 2011.02.10 추천 0 조회 1840
(사진설명: 아름다운 금도협)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중경(重慶, Chongqing)의 강남으로 불리우는 동네 금도협(金刀峽, Jindaoxia)은 물가에 자리잡았는데 우거진 느릅나무아래 고풍스러운 고건물과 아늑한 골목이 수려한 경치와 조화를 이룬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금도협) 사오백년전 명(明)조와 청(淸)조가 바뀌면서 세상이 어지러울때 광동(廣東, Gungdong)인들이 난을 피해 이 곳 깊은 산속에 들어와 터를 잡고 동네를 형성해 번영하는 무역상업센터로 만든 것이 바로 일명 편암(偏岩)으로도 불리우는 금도협이다. 옛 동네 금도협은 삼백여년의 역사속에서도 완정한 모습을 유지해 오늘에 이르는데 동네 옆에 기운 바위가 있다고 해서 원래 이름이 편암이고 후에경치가 수려한 계곡 금도협의 이름을 빌어 동네도 금도협으로 부르게 되었다. (사진설명: 금도협의 옛 거리) 동네의 옛 거리는 동네 중앙의 시냇물위에 가로 드러누운 청석교를 중심으로 상가(上街)와 하가(下街)로 나뉜다. 청석을 깔아 만든 이 거리는 흑수탄하(黑水灘河)를 따라 연연 400m나 뻗어 있고 거리 양쪽에는 대나무로 벽체를 삼은 건물들로 된 가게들이 즐비하다. 특히 교통중심에 위치한 상가에 가게들이 집중되고 상가의 북쪽은 대중들이 모이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며 무묘(武廟)와 우왕묘(禹王廟), 무대건물도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물가를 따라 조성된 거리양켠의 물가쪽 건물이 산 기슭쪽 건물보다 상대적으로 낮아서 물가쪽 건물의 전망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산 기슭에 위치한 건물에서도 시냇물이 보여 동네 조성에서 겸양의 미덕도 느낄수 있다. (사진설명: 금도협의 옛 건물 구합잔상호)...
판다번역 2011.02.09 추천 0 조회 2280
(사진설명: 아름다운 용흥)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말 다섯이 모이는 동네 용흥(龍興, Longxing)은 주변에 솟은 산봉이 말 다섯을 방불케 하고 동네 중심으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말의 고삐와 유사해서 말 다섯이 모이는 동네로 불리운다. 용흥의 산에는 기암괴석, 골에는 맑은 물, 산 허리에는 쏟아지는 폭포, 산에는 고목이 무성해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고 그 사이로 고풍스럽고 장엄한 절과 신비스러운 옛 거리, 우아한 고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설명: 용흥의 옛 거리) 장수(長壽)산맥을 마주하고 뒤로 철산(鐵山)산맥을 업은 용흥은 장강(長江)의 지류인 어림하(御臨河) 기슭의 아담한 분지에 위치해 있는데 동서남북으로 잘 빠지는 편리한 교통을 자랑한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용흥은 팔구백년전의 명(明)조초기에 동네로 형성되었고 사오백년전의 청(淸)조에 이르러서는 경제가 발전했다. 전설에 의하면 명조초기의 건문(建文)황제가 이 곳에 작은 절을 지어놓고 몸을 피했다고 해서 절 이름이 용장사(龍藏寺)이고 그로 인해 동네가 흥했다고 해서 동네 이름도 용흥이다. (사진설명: 용장사 입구) 그 뒤에 청조때인 1804년에 용장사와 마주하는 위치에 우왕묘(禹王廟)를 지었고 용장사와 우왕묘 사이에 길이 250m에 달하는 옛 거리가 형성되어 오늘에 이른다. 용장궁이라고도 불리우는 용장사는 도교신도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앞쪽과 뒷쪽 두 부분으로 나뉘는 용장궁의 건물은 엄밀하고 질서있는 구도를 보여준다. (사진설명: 회룡교) 용장궁에서는 내용이 풍부하고 풍격이 다양하며 형상이 생동한 인물조각이 특히 유명하고 라인이 미끈하고 당장이라도 살같이 달릴것 같은...
판다번역 2011.02.08 추천 0 조회 2087
(사진설명: 아름다운 풍성)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기이한 장수의 동네로 불리우는 풍성(豊盛, Fengsheng)은 해발 500m의 산 허리에 위치해 좋은 기후와 맑은 공기를 자랑하고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고요함을 보여준다. (사진설명: 풍성의 거리와 건물과 사람들) 시골경관을 자랑하는 풍성은 예로부터 상업중심지로 각광을 받아 천여년전의 송(宋)조때 동네가 형성되어 칠팔백년의 명(明)조때에 클라이막스를 이루어 그 때 이 곳에는 많은 상가들이 집중되었다. 풍성에는 천평채(天平寨)와 공산채(共山寨), 노아채(老鴉寨), 철와채(鐵瓦寨), 관산채(冠山寨), 승평채(昇平寨) 등을 비롯해 13개의 옛날의 산 동네가 남아 있다. (사진설명: 풍성의 옛 가옥) 그 중 완정하게 보존된 관산채에는 옛 가옥 3채가 남아 있고 철와채는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산동네이다. 이른 아침 해발 815m에 달하는 철와채 산동네에 서면 맑은 공기가 가슴 깊이 스며들고 뭇 산이 발 아래 기립해 선인이 된 듯 하다. 동쪽을 바라보면 청산녹수가 아름다운 가운데 둥근 태양이 두둥실 떠올라 땅위에 금빛을 뿌리고 서쪽을 바라보면 거대한 와불이 한 눈에 안겨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준다. 규모가 크고 신도들이 많이 몰려드는 풍성의 절로는 자운사(紫云寺)와 철와사, 운향사(云香寺), 법조사(法祖寺), 관방사(官房寺), 흥복사(興福寺), 그리고 옛 거리의 문묘(文廟), 여왕묘, 강서묘 등이다. (사진설명: 풍성의 망루식 건물) 뭇 산에 안긴 풍성은 높은 산봉이 둘러서고 물산이 풍부해 살기 좋은 곳이고 그로 인해 강탈의 대상이기도 해서 이 곳의 가옥은 주거와...
판다번역 2011.02.01 추천 0 조회 1867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용의 동네 나천)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용이 나는 동네로 불리우는 나천(羅泉, Luoquan)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2.5km에 달하는 기원전 진(秦)조때의 옛거리이다. 긴 거리가 꿈틀대는 용과 같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 용이 나는 동네이다. (사진설명: 나천의 옛 거리) 그밖에 천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천에는 진조때에 소금을 캐기 시작한 염정(鹽井)도 있다. 나천의 정염개발은 삼사백년전의 청(淸)조에 이르러 최고에 달해 그 때 당시 정염을 생산하는 염정이 1500여개에 달했다.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엑스포에서 나천의 정염은 금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설명: 나천의 염신전) 나천에는 대궐 9개, 절 9개가 있었으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대부분 건물이 다 파손되고 염신전(鹽神殿)만이 완정하게 보존되어 있다. 관중(管仲)을 소금의 신으로 모신 염신전은 중국에서 이 곳에만 있다. 이 곳에 모인 소금업자들은 1868년에 돈을 모아 나천에서 용의 머리가 위치한 곳에 염신묘를 지었다. 절의 문과 패방(牌坊), 무대, 별채, 대궐, 복도, 뜰 이 잘 짜인 절의 구도를 형성한다. (사진설명: 염신전의 뜰과 건물) 대궐에는 소금의 신 관중이 모셔져 있고 관우(關羽)와 불의 신 축융(祝融)이 양쪽에 위치해 있다. 세 단계로 된 기초위에 올라앉은 대궐은 날아갈듯한 이중 처마를 가지고 있다. 대궐의 지붕에는 용들이 보석을 빼앗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백여년의 풍상고초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듯 생동하다. 웅장한 기세를 자랑하는...
판다번역 2011.02.01 추천 0 조회 2311
(사진설명: 멀리서 본 아름다운 노관)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식량이 많이 나는 산동네로 불리우는 노관(老館, Laoguan)은 해발고가 700m에 달하고 그 때문에 항상 운무가 자욱해서 작은 아미산(峨眉山)으로 불리운다. 교통중심지에 위치한 노관은 예로부터 군사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모두가 찾아드는 요충지이다. 육로의 교통중심에 속한 위치한 노관은 1500여년전부터 지역 소재지의 역할을 했다. (사진설명: 노관의 고건물)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노관에는 고대 장성 유적도 있고 1km에 달하는 옛 거리가 오늘날까지 보존되며 거리 양켠에는 특이한 모양의 가옥과 독특한 절, 웅장한 누각, 장엄한 비석 등이 자리잡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정교하고 색이 바래면서도 찬란함을 갖춘 이런 역사적 흔적들은 고건물과 사천(四川, Sichuan)지역의 파촉(巴蜀)문화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문화재이다. (사진설명: 노관의 돌길)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에 치여 반들반들해진 돌계단을 따라 걸으면 사극에서나 볼수 있는 화면이 눈앞에 나타난다. 푸른 기와를 얹은 건물의 색바랜 나무문 앞에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환담을 나누거나 지나가는 행인을 다정하게 바라본다. 풍구를 돌리며 쇠를 만드는 철공소의 주인내외도 행인을 보며 미소를 짓는데 검은 얼굴에서 하얀 이가 유난히 눈에 띄며 그토록 고요하고 안온함을 안겨준다. (사진설명: 노관의 식량 창고) 노관에는 중국에서 보기 드문 청(淸)조의 옛 식량창고가 남아 있다. 일조시간이 긴 노관에서 나는 벼가 질이 좋아 황궁의 공물로 선정되었기 때문에 이 곳에 식량창고를 만들었던...
판다번역 2011.02.01 추천 0 조회 2230
(사진설명: 멀리서 본 은양)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그리움이 강물같은 동네로 불리우는 은양(恩陽, Enyang)에는 두 갈래 강물이 동네를 흐르고 주변에는 청산이 둘러서고 그 속에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안겨 있다. (사진설명: 은양의 고건물) 14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은양에는 명승고적들이 수도 없이 많다. 산 좋고 물 맑은 은양은 또한 편리한 교통으로 상업이 발달해 예로부터 "미니 상해"로 불리우고 꼭 거쳐야 하는 곳의 의미로 "그리움이 강물같은 동네"로 불리운다. 최고의 번성기를 누릴때 은양에는 37갈래의 골목이 있었고 그 중 9갈래가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칠팔백년전 명(明)조의 풍격을 가진 노장가(老場街)가 가장 특색이 있다. (사진설명: 은양의 옛 거리) 전하는데 의하면 명조때 한 사람이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조성한 이 거리에는 현재 일반 가옥 50여채가 있다. 대체로 2층 구조로 된 이런 가옥들은 호화로운 조각물을 자랑한다. 지세를 따라 형성된 거리는 혹은 올리막길로 되거나 혹은 내리막 길로 되며 혹은 건물을 안고 굽이를 돌면서 인문과 자연간의 조화를 이루고 그로 인해 노장가는 은양에서 가장 운치 있는 보행가로 된다. (사진설명: 홍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상하정가) 그밖에 상정가(上正街)와 하정가(下正街)는 홍군문화유적이 가장 많은 거리이다. 1932년 12월 중국 공농홍군이 이 곳에 근거지를 설립해 400m길이의이 거리에는 현재 홍군유적지 13곳이 남아 있고 "홍군승리만세" 등 슬로건들이 남아 보는 이들을 어제로 데리고...
판다번역 2011.02.01 추천 0 조회 1833
(사진설명: 멀리서 본 소화)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사천(四川, Sichuan)의 두번째 동네로 불리우는 소화(昭化, Zhaohua)는 서쪽에 우뚝 솟은 산과 동, 남,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 세 갈래가 천혜의 요새를 형성한다. (사진설명: 소화의 옛 거리) 기원전 316년에 파촉(巴蜀)을 멸한 진(秦)이 이 곳에 도읍을 정하면서 소화는 지금까지 232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천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로 인정된다. 그리 크지 않은 동네지만 지난 세월 많은 중대한 역사적 사건과 전쟁들이 이 곳 소화에서 벌어졌다. 삼국시기 유비(劉備)가 이 곳에 군대를 주둔시켰고 장비(張飛)와 마초(馬超)가 싸움을 벌인 곳도 이 곳이다. (사진설명: 소화의 성문) 천여년전에 처음으로 쌓은 소화의 성은 흙으로 쌓았다가 육칠백년전의 명(明)조에 이르러 돌로 바꾸었다. 호로병 모양의 성에는 동서남북에 성문 네 개를 두었는데 남문을 제외한 세 개의 성문에는 모두 성루(城樓)를 지었다. 현재 옛성은 사리지고 동쪽의 첨봉문(瞻鳳門)과 서쪽의 임청문(臨淸門), 북쪽의 공극문(拱極門)만 남아 있다. 오늘날도 이 곳 사람들은 딸을 시집보낼때 임청문으로 나가는 풍속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우두산) 소화 옛성의 서문을 나와 산길을 따라 걸으면 바로 우두산(牛頭山)에 이른다. 삼국지에도 나오는 우두산은 모양이 거대한 소 머리와 같다고 해서 이름지어였다. 험준한 산봉사이에 우뚝 솟은 우두산의 천웅관(天雄關)은 검문봉(劍門峰)과 마주한다. 우두웅관으로도 불리운 이 관문에는 원래 관우묘(關羽廟)가 있었는데 전란에 의해 파손되고 오늘날은 천웅관의 돌문만...
판다번역 2011.02.01 추천 0 조회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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