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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선시의 고건물)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옛 수송로위의 보석으로 불리우는 선시(仙市, Xianshi)에 들어서면 지구의 가장 깊은 곳에 숨은 듯 산과 물속의 선시는 그렇듯 순박하고 그렇듯 원초적이다. (사진설명: 부계하 기슭의 선시) 부계하(釜溪河)기슭에 자리잡은 선시는 1400여년전의 수(隨, Sui)조때 형성된 동네로 정염문화를 토대로 조성되고 발전해온 유규한 역사를 자랑하는옛 동네이다. 과거에 선시는 부계하연안에서 중요한 부두의 하나였다. 그로 인해 오늘날까지 선시에는 어젯날의 풍모를 보존한 고건물과 절, 사당들이 많아 남아 있다. (사진설명: 선시의 거리) 선시는 네 개의 거리와 네 개의 옛 도로, 다섯개의 절, 세 개의 부두, 세 개의 패방, 아홉개의 비석, 흥성한 불교문화로 내외에 이름을 떨치고 정염의 수송로에 위치한 원인으로 옛 수송로위의 보석으로 불리운다. 선시는 부계하의 기슭에 자리잡은 동네가 선녀가 모로 누은듯한 모습이라고 해서 옛날에는 선탄(仙灘)이라 했다. 또한 신서는 "긴 용이 남북을 관통하는데 성문을 닫으면 감방으로 변"하는 구도를 가진다. (사진설명: 선시 패방) 모두가 고풍스러운 선시에는 옛스러운 풍속과 아름다운 전설, 순박한 민요 등으로 선시만의 문화가 형성되어 사천의 고대 문화를 연구하고 사천의 민속풍토를 읽는데 좋은 표본으로 된다. 선시 입구에 위치한 선시패방(仙市牌坊)은 기둥 네 개에 문 세 개를 가진 심플하면서도 대범한 느낌을 준다. 선시패방을 지나면 바로 정가(正街)에 들어서게 된다. (사진설명: 선시의 가옥) 정가의 오른쪽에는 원래...
판다번역 2011.01.26 추천 0 조회 1783
(사진설명: 아름다운 리장)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장강기슭의 첫 동네로 불리우는 리장(李庄, Lizhuang)에 들어서면 청석을 깐 거리 양켠에 푸른 기와를 떠인 아담한 고건물들이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전설과 순박한 민풍이 정답게 안겨온다. (사진설명: 리장의 건물과 물과 산) 중국 최장의 하천인 장강(長江)은 사천(四川, Sichuan) 의빈(宜賓, Yibin)에서 시작된다. 의빈에서 동남쪽으로 19km 떨어진 옛동네 리장은 그래서 장강기슭의 첫 동네로 불리운다. 1460년전에 벌써 동네가 형성된 리장은 장강에 의해 경치좋고 교통이 편리하며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 인정되고 그로 인해 많은 옛 거리와 고건물을 보존하고 있다. (사진설명: 리장의 골목) 완정하게 보존된 18갈래에 달하는 리장의 옛 거리에는 모두 큰 청석돌을 깔았고 과거에 소와 양을 거래한 거리는 양가(羊街), 멍석을 가공판매한 거리는 석자항(席子巷) 등 거리의 특징과 기능 등에 따라 거리 이름도 다양하게 부른다. (사진설명: 리장의 석자항) 리장 옛 거리의 대표인 석자항은 길이가 60m이고 너비는 2.5m미만이다. 골목의 양켠에는 상하 2층으로 된 건물이 줄지어 있는데 고상 가옥식으로 된 2층의 건물이 거리쪽으로 몸을 내밀어 좁은 거리가 거의 막힐 정도이다. 그래서 석자항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면 실같은 하늘만 보이고 그로 인해 석자항은 일명 일선천(一線天)으로도 불리운다. 푸른 기와와 건물로 외계와 연락을 단절한 듯 이 곳 사람들은 아늑한 골목에서 여유있게 살아간다. (사진설명: 학을 조각한 창문) 장가사(張家祠)는 사합원(四合院)식...
판다번역 2011.01.26 추천 0 조회 3310
(사진설명: 아름다운 복보)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아늑한 동천복지의 동네 복보(福寶, Fubao)에 들어서면 푸른 산이 둘러선 가운데 세 갈래의 강물이 하얀 비단띠처럼 동네를 감돌고 그 사이로 높고 낮은 고상 가옥들이 조화롭다. (사진설명: 우아한 복보의 고건물들) 사면에 산이 둘러선 복보는 벌써 팔구백년전에 동네가 형성되어 번성을 거듭해왔다. 산간오지라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은 절을 많이 지어 종교에 소망을 의탁하면서 불교의 보호를 의미해 동네를 불의 보호를 받는 의미로 불보(佛保)로 불렀다. 그러다가 오백년전에 동네 전체가 불에 타서 재로 되었고 동네를 복구하는 중에 거리에서 커다란 자갈을 파내고 그 자리에 다시 도장을 새로 세워 새로운 도장으로 삼았다. 중국 건국 후에 불보라는 이름을 복보로 바꾸었다. (사진설명: 일반 가옥과 유사한 복보의 절) 오늘날 옛 동네 복보로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입장권을 구매하는 건물이 바로 사오백년전의 건물인 토지묘(土地廟)이다. 이름은 절이지만 얼핏 보면 일반 가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복보에는 절이 많아서인지 절의 규모가 다 작다. 그 때문에 일반 가옥과 유사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절들에는 지금 대부분 사람들이 주거하기 때문에 더욱 일반 가옥처럼 보인다. (사진설명: 복보의 조각) 하지만 아무리 민가와 비슷하고 절에 사람들이 주거하지만 액자와 돌사자, 기둥, 비석 등 문화재에서 이 곳이 종교의 도장인 절이나 암자임은 선명하게...
판다번역 2011.01.21 추천 0 조회 1943
(사진설명: 멀리서 본 요패)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인물이 나는 영험한 동네 요패(堯坝, Yaoba)는 아홉마리의 용이 모이는 곳으로 산정에 서서 요패를 내려다 보면 모든 산이 요패를 둘러서서 예로부터 풍수 좋은 곳으로 인정되어 왔다. (사진설명: 요패의 거리)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요패는 천여년전에 벌써 주변 여섯 동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군사요충지로 뽑혔고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역사를 이야기하고 문화를 형성한다. 청석을 깐 1km 길이의 옛 거리는 칠팔백년전의 명(明)조때 조성된 남북향의 거리이다. 북가(北街)에는 주씨(周氏)가문이 살고 남가(南街)에는 진사에 급제한 이씨(李氏)가문이 살면서 이 거리는 두 가문의 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설명:요패의 건물) 거리 양쪽에 높고 낮게 줄지어 선 가옥들은 집집마다 뜰을 가지고 있고 보통 다섯겹 내지 여섯겹의 건물뒤로 우물도 갖추고 있다. 건물과 건물사이에는 대나무나 나무로 담을 쌓았고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방화벽도 가끔 보인다. 나무로 만든 문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고 상서로운 의미의 무늬가 그려져 있기도 한다. 문 양옆에는 돌 사자가 석각물이 놓여져 있으며 건물들이 각자 공관과 찻집, 염색실, 술집, 여관, 무대, 정자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어 전문가들은 요패가 사천 고민가의 활화석이라고 한다. (사진설명: 진사패방) 옛 거리의 남쪽 입구에 위치한 진사패방(進士牌坊)은 청조의 황제가 진사에 급제한 이씨를 위해 세워준 것이다. 기둥 네개에 문 3개를 가진 이 석조패방은...
판다번역 2011.01.21 추천 0 조회 1879
(사진설명: 태평의 옛 거리)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영원한 붉은 기억의 동네 태평(太平, Taiping)은 홍군이 네번이나 적수(赤水)를 건느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위해 기여한 붉은 역사문화동네이다. (사진설명: 태평의 옛거리) 고란하(古蘭河)와 적수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태평은 예로부터 중요한 무역동네였다. 지세가 높은 동남쪽과 상대적으로 낮은 서남쪽으로 비스듬히 자리를 잡은 태평은 거리가 대부분 돌계단으로 되어 산의 동네로 불린다. 수백개의 돌계단으로 된 태평의 옛 거리를 걸으면 양쪽에 오백여년전에 지어진 고건물로 된 가게가 즐비해 장이 서는 날이면 온갖 물건을 팔아 사람들로 붐빈다. (사진설명: 유화로 보는 홍군 장정의 한 장면) 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태평은 옛날에는 야랑국(夜郞國)에 속했고 삼국시기에는 제갈공명이 이 곳에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삼사백년전의 청(淸)조때는 유명갑부가 이 곳에 학당을 차리기도 했다. 그러나 태평이 내외에 이름을 떨치게 된 계기는 1935년 모택동(毛澤東)이이끄는 홍군이 2만 5천리에 달하는 기나긴 장정을 하면서 국민당 군대를 따돌리기 위해 적수를 네번 왕복하면서 이 곳을 경유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장정시 경유했던 적수하 뭍) 북상하는 홍군을 소멸하기 위해 장개석(蔣介石)이 수십만 대군을 파견했으나 홍군은 적수를 네번 왕복하는 기동전술로 국민당 군대를 이 곳에서 전멸시킴으로써 장정의 승리에 토대를 마련했다. 홍군은 그 때 태평에 머무는 동안 슬로건을 써서 벽에 붙이고 통지문을 쓰는 등 혁명과 연관되는 많은 유적과 문화재를 남겼다. 홍군이...
판다번역 2011.01.21 추천 0 조회 1662
(사진설명:공중에서 본 평락)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천부지국의 첫 동네 평락(平樂, Pingle)에 들어서면 산 좋고 물 맑은 곳 강기슭에 고목이 우거지고 그 사이로 고풍스러운 고건물들이 줄지어 움직이는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속에 들어선 듯 하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평락) 20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평락은 원래 평낙(平落)으로 불리웠다. 먼 옛날부터 사면에 산에 둘러싸여 있는 이 푸른 분지는 맑은 강물과 비옥한 땅으로 사천의 수상동네로 공인되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오늘날 평락에서는 어제의 번화함은 볼수 없지만 평락에서만 볼수 있는 건물과 거리의 분위기가 여전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사진설명: 고요한 평락) 강가에 지어진 평락의 건물들은 물고기의 뼈같이 울퉁불퉁 불규칙적이지만 조화를 이룬다. 강가쪽 건물들은 물속에 기둥을 박아 문을 열면 시원한 강바람이 부르는 듯 방안으로 불어 들어온다. 강 양안을 연결하는 통로는 상류의 낙선교(樂善橋)와 하류의 흥락교(興樂橋)이고 두 다리 중앙에는 부두가 있어서 강 양안의 거리까지 연결된 돌계단을 통해 오갈수도 있다. (사진설명;낙션교) 1862년에 축조된 낙선교는 7개 교각을 가진 돌다리로 길이가 120m, 높이 17m, 너비 10m에 달한다. 일반 돌다리의 교각은 반달모양인데 비해 낙선교의 교각은 마음을 뜻하는 복숭아모양이다. 10년동안의 긴 시간을 들여 교량을 완공하고 나서 교량축조에 사용되었던 나무를 가지고 팔점가(八店街)를 조성했다고 한다. 이 팔점가에는 평락의 2대 산업인 제지업과 제련업의 가게들이 남아 있다. (사진설명: 흥락교와 고목) 흥락교의...
판다번역 2011.01.18 추천 0 조회 2076
(사진설명: 멀리서 본 신장)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사천 산 기슭의 수상동네 신장(新場, Xinchang)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청산녹수가 완연 그림 그 자체이고 산 좋고 물 맑은 그림속에 옛스러운 동네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신장은 뒤로 서령(西嶺)설산을 업고 있어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신장을 경유하면서 동네에 영기를 가져다 준다. (사진설명: 신장의 건물과 물길) 신장의 건물은 대부분 칠팔백년전 명청(明淸)시기의 건물로 사천의 건축풍격을 보여준다. 유교와 불교, 도교가 모인 이 곳은 교통 또한 좋아 예로부터 차마고도(茶馬古道)위의 역사문화 명소이기도 했다. 지난 수백년동안 신장은 목재와 석탄, 엽차, 쌀, 잡곡 등 오대 시장을 형성했고 그 거래량이 천문학적 숫자여서 예로부터 오대시장(五大市場)으로 불리워 왔다. (사진설명: 아담한 신장) 팔백년전의 명조때에 뒤에 산을 업은 물가의 부채모양의 뭍에 터를 잡고 물자를 거래하기 시작하면서 이 곳에 장터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다가 사오백년전의 청조에 이르러 전성기를 누렸다. 신장의 동네 구도는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되어 있다. 상정가(上正街)와 태평횡가(太平橫街), 향시가(香市街) 등 옛 거리와 골목들이 지금까지도 완정하게 보존되어 있다. (사진설명: 신장의 옛 거리) 거리 양켠에는 이씨(李氏)주택과 복림사(福臨社), 황학루(黃鶴樓) 등 15채의 고건물이 완정하게 보존되어 있다. 누각모양의 이런 건물들은 대부분 푸른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인데 거리쪽 건물은 가게로 사용하고 마당을 사이두고 물가에 위치한 건물은 안채로 한다. 건물의...
판다번역 2011.01.18 추천 0 조회 1983
(사진설명: 고풍스러운 안인의 거리)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고풍스러운 산장 동네 안인(安仁, Anren)에 들어서면 하얀 운무속으로 대나무숲 우거진 가운데 옛스러운 운치를 자랑하는 동네가 아름다운 그림처럼 안겨온다. (사진설명: 동서양 건물양식이 어울린 안인의 건물) 천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안인에는 중국 전통의 건축양식과 서양건축양식이 어울린 고건물들이 많아 장엄함과 우아함 대범함을 두루 갖추어 건축문화의 대표로 인정된다. 안인에서 잘 보존된 옛 거리로는 유성가(維星街)와 유민가(裕民街), 수인가(樹人街)를 꼽을수 있다. 옛 거리의 양켠에는 푸른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들이 줄지어 서서 경관이다. (사진설명: 유씨장원 구공관 정문) 그 중 가장 완정하게 보존된 고건물로는 구공관과 신공관, 진품관으로 구성된 유씨장원(劉氏庄園)이다. 유씨장원 구공관(老公館)은 1920년대에 신축된 건물로 오늘날은 유씨장원 박물관으로 활용된다. 불규칙적인 다변형으로 된 건물 주변에는 키 높은 담장이 둘러서 있는데 건물내부에는 홀과 안내실, 별채, 안채, 가든, 불당 등 다양한 기능의 방들이 설치되어 있다. 유씨장원의 구공관은 키 높은 담벽이 앞을 막아서고 무거운 문이 좁고 긴 골목의 사이사이에 위치한 미궁같은 건물군락이다. 그와 반면에 구공관에서 약 300m 떨어진 신공관은 1940년대초에 지어졌다. (사진설명: 유씨장원 신공관 정문) 오늘날 천서(川西) 민속박물관으로 활용되는 유씨장원 신공관은 혼인풍속홀과 생산생활홀, 민간공예 및 민간문화홀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밖에 신공관에는 가든 네개와 테니스장 4개가 딸려 있고 망월대(望月台)와 무대 등이 있어 보루처럼 폐쇄되고 조잡한 구공관에 비해...
판다번역 2011.01.18 추천 0 조회 1925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낙대)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서부의 첫 객가인 동네로 불리우는 낙대(洛帶, Luodai)는 고급차와 좋은 책처럼 많은 시간을 가지고 오래동안 음미할수 있는 옛동네이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옛 거리와 다양한 문화가 어울려 깊은 내적 함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낙대의 일각) 객가인이란 천여년전에 중국 중부의 황하(黃河)일대로부터 남하해 남부에 주거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오래동안 외부와 동떨어진 생활을 하면서 자신만의 풍속과 언어를 유지해 오늘날에 중국의 한 소수민족으로 인정된다. 18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보유한 낙대의 한 호수바닥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호수와 연결되어 동해의 잉어가 오갔고 그 잉어를 먹으면 장수한다는 설이 있었다. (사진설명: 낙대의 옛 거리) 이 동네는 원래 이름이 견자장(甄子場)이라 불렸는데 한 관리가 잉어를 잡고저 우물에 내려갔다가 구조되고 대신 몸에 지녔던 옥띠가 우물에 떨어진 뒤로 이름을 낙대라 바꾸었다는 야사가 있다. 낙대에서는 거리 하나에 골목 7갈래가 대표적인데 고풍스러운 이런 거리와 골목에 마찬가지로 고풍스러운 고건물들이 기능별로 민가와 저택, 사당과 회관으로 나뉘어 질서있게 위치해 있다. (사진설명: 무씨 대부제 정문) 낙대의 가옥은 선조가옥과 일반가옥 두 부류로 나뉜다. 대부제(大夫第)는 무(巫)씨 가문의 조상가옥으로 낙대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잘 보존된 객가인의 가옥이다. 기존의 사당건물과 가든은 훼손되었지만 문과 홀, 담, 주요 건물 세 채와 양쪽에 딸린 부속건물 두 채를 망라한...
판다번역 2011.01.18 추천 0 조회 2121
(사진설명: 아름다운 황룡계)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온갖 풍토의 동네 황룡계(黃龍溪)에 들어서면 거울같은 강물에 붉은 태양이 비끼고 청산속에서는 은은한 종소리 들려오며 날아갈듯한 처마의 건물이 더 없이 고풍스럽다. (사진설명: 황룡계의 물가 건물) 사천(四川, Sichuan)성 소재지 성도(成都, Chengdu)에서 머지 않은 황룡계는 동쪽으로 금강(錦江)을 끼고 북쪽으로 목마산(牧馬山)을 뒤에 업었다. 216년부터 시작된 황룡계는 옛적에 적수(赤水)로 불리웠다가 "황룡이 푸른 강을 건느니 진짜 용이 속에 숨었네"라는 시때문에 이름을 황룡계로 바꾸었다. 이 곳은 예로부터 성도 이남의 군사요충지로 삼국시기 제갈공명도 이 곳을 남진의 교두보로 삼고 많은 군사를 이 곳에 배치해 촉나라를 위해 큰 공적을 세웠다. (사진설명: 황룡계의 옛거리) 황룡계는 정가(正街)와 횡가(橫街), 신가(新街), 상하가(上河街), 하하가(下河街), 배가(背街), 항자가(巷子街) 등 도합 1km에 달하는 일곱갈래의 골목으로 구성되어 사천의 최고로 인정된다. 어젯날의 모습을 가장 완정하게 보존하고 있는 황룡정가가 가장 흥성거린다. 거리 중앙의 부두에 서면 강 건너편의 커다란 나무가 있고 그 나무그늘아래에는 여유로운 노천 찻집이 보인다. (사진설명: 고룡사 입구) 그 그늘아래 대나무 의자에 앉아 차 한 잔 하면 이 세상에 무어도 부러울 것이 없을듯 싶다. 그밖에 정가는 북쪽에 진강사(鎭江寺), 남쪽에 고룡사(古龍寺)해서 양쪽에 절을 하나씩 두고 있다. 거리 중앙에 자리잡은 이 절은 모두 남향이고 두 절 사이의 민가속에는 또 자그마한 절 조음사(潮音寺)가 자리잡고...
판다번역 2011.01.18 추천 0 조회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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