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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밖에서 본 강소로 교회당)   산동(山東, Shandong)성 청도(靑島, Qingdao)에는 독일인들이 남긴 교회와 성당이 10여개나 남아 있다. 그 중 도심에 위치한 강소로 교회당은 유화와 같은 예술적 효과를 자랑하고 성미앨 성당은 심플하고 우아함으로 명성이 높다. 강소로 교회당은 소박하면서도 둔탁해 보이는 중세기 보루식의 건축양식을 자랑하면서 백여년동안 끄떡도 하지 않고 오늘까지 이어온다. 화강암으로 둥글게 쌓은 창틀과 가파롭게 뻗은 빨간 지붕, 뾰족하게 솟은 푸른 종루, 울퉁불퉁한 돌을 쌓은 외벽은 방대한 외관으로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강소로 교회당)   독일의 건축설계사가 설계한 강소로 교회당은 1908년에 시공을 시작해서 1910년에 완공했다. 당시 청도에 주거하던 독일인들의 예배당으로 독일예배당으로도 불리운다. 강소로 교회당은 복잡한 무늬의 외벽을 가진 높고 낮은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종루와 예배당으로 분류되는데 종루의 삼면 외벽에는 시계가 장착되어 있다.   (사진설명: 다정해 보이는 강소로 교회당)   교회당 건물은 남북향의 중심선 중앙에 커다란 홀을 만들고 동쪽과 서쪽, 남쪽에 낮은 별채를 조성했다. 18m 높이의 홀은 양쪽에 나지막한 2층 건물을 거느리는데 정교하고 우아한 실내장식의 건물속에 서면 저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홀의 앞쪽 중앙에는 제단을 조성하고 그 윗쪽에 유리로 예수를 그렸다. 제단 오른쪽의 계단은 연단으로 연결되고 왼쪽에는 세례시 사용되는 대리석 함지가 놓여 있다.   (사진설명: 강소로 교회당의 오르간)   예배당의 뒷쪽에는 오르간이 놓여 있고 천여명을 동시에 수용할수 있는 넓은 공간에는 긴 등받이 의자가 정연하게 줄지어 있다. 창문에는 채색의 유리로 다양한...
판다번역 2012.08.21 추천 0 조회 1463
(사진설명: 운무속의 봉래각)   중국 4대 누각인 봉래각(蓬萊閣)은 절보다는 선인들이 출몰하는 곳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2층 목조건물의 봉래각은 아찔한 절벽위에 세워져 있는데 붉은 바위와 푸른 바다가 조화롭다. 거기다가 운무가 자욱하게 끼면 붉은 봉래각은 구름위에 솟은 선경을 방불케 한다. 전한데 의하면 당(唐)나라 황제 현종(玄宗)이 비 양옥환(楊玉環)을 그리는 중에 이 곳에 이르러 시를 읋고나서 정말로 그를 만났다고 한다.   (사진설명: 선경같은 봉래각)   신비로운 전설과 아름다운 경치, 많은 시를 한 몸에 안은 봉래각은 푸른 소나무가 울창한 붉은 바위위에 세워져 산과 바다가 일체를 이룬다. 진(秦)시황제와 한무제(漢武帝) 등 역대 황제들이 이 곳에서 불로장생의 약을 찾고 여덟선인이 이 곳에서 바다로 갔다는 전설과 가끔 나타나는 신기루로 인해 봉래각은 속세의 선경으로 불리운다. 절과 도교암자, 신전을 한 몸에 모은 봉래각은 미타사(彌陀寺)와 용왕궁(龍王宮), 천후궁(天後宮), 봉래각, 삼청전(三淸殿), 여조전(呂祖殿), 중련사(仲連祠) 등 7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수는 백여칸에 달한다.   (사진설명: 옛스러운 봉래각)   송나라때인 1061년에 신축한 봉래각은 이중 지붕을 떠인 2층 건물이다. 여덟명의 선인이 이 곳에서 잔치를 베푼 후 날아서 바다를 건넜다는 팔선과해(八仙過海) 전설로 이름난 곳이다. 봉래각은 건물높이 15m이고 건물의 사면에 복도를 조성해 전망대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아찔한 바위위에 세워진 높은 건물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구름이 떠 다니고 바다가 저 멀리 펼쳐져 허공에 뜬 누각을 방불케 한다.   (사진설명: 봉래각과 여덟 선인)   힘있는 필체로 쓴 봉래각이라는 세 글자는 청나라때 유명 서예가의...
판다번역 2012.08.20 추천 0 조회 2068
(사진설명: 첩첩한 남보타사)   남보타사(南普陀寺)는 아름다운 절일뿐만 아니라 맛있는 절이기도 하다. 뒤에 수려한 뭇산을 업고 푸른 바다를 마주한 남보타사의 건물은 하나같이 날아갈듯한 이중지붕을 떠인 궁궐식이다. 반짝이는 노오란 오지기와를 얹고 정교한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엄밀한 구도를 형성하고 절의 둘레에는 돌담이 세워져 흩어진 보석을 한 그릇에 모아 담는듯 하다.   (사진설명: 아늑한 남보타사)   남보타사는 환경 또한 아주 아늑하다. 푸른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온갖 꽃들이 화려한데 건물의 남쪽에는 맑은 연못, 뒤에는 푸른 산이 위치해 있으며 정자와 방갈로, 꼬불꼬불한 다리가 이채를 돋운다. 담백하고 우아한 채식으로 유명한 남보타사에서는 먹거리 또한 빼놓을수 없는 명물이다. 색갈과 맛, 모양, 분위기, 기물 등 모두가 우아한 남보타사의 채식에는 요리마다 "반월침강(半月沈江)", 강물에 잠긴 반달과 같이 우아한 이름이 따른다.   (사진설명: 남보타사의 채식 반월침강)   1962년에 당시 중국의 대문호였던 곽말약(郭沫若)이 남보타사에 이르러 채식을 맛 보는데 표고버섯 등 야채를 넣은 수제비가 식탁에 올랐다. 곽말약은 국물에 반만 잠긴 검은 표고버섯과 하얀 수제비를 보고 반월침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밖에도 남보타사의 채식에는 채화영빈(彩花迎賓) 울긋불긋 손님을 맞이하는 꽃, 남해금련(南海金蓮) 남해의 금빛 연꽃, 설영은랑(雪映銀浪) 눈위의 은색파도, 백벽청운(白壁靑雲) 하얀 담벽의 푸른 구름 등 시적인 이름이 따른다. 남보타사는 천여년전의 당(唐)나라때 신축된 절이다. 그 뒤에 사주원(泗洲院), 무진암(無盡岩), 보조사(普照寺) 등으로 불리다가 1341년에 절이 무너지게 되었다.   (사진설명: 남보타사 일각)   명(明)나라때인 1368년에 절을 재건했는데 명나라 말기의 1628년에 전쟁에 의해 또 무너져...
판다번역 2012.08.17 추천 0 조회 1673
(사진설명: 개원사 대웅정과 보리수)   복건(福建, Fujian)성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절 개원사(開元寺) 는 바로 천주(泉州, Quanzhou)의 번화한 도심에 위치해 있다. 부지 8만 제곱미터의 개원사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고 동쪽과 서쪽에 높이 솟은 두 탑은 천주의 심벌이기도 하다. 사원 계단(戒壇)에 조각된 24존의 보살상은 개원사의 높은 급별을 말해준다. 따라서 중국 남부의 승려는 이 곳에서 계를 받아야 주지스님으로 될수 있다. 686년 당(唐)나라때 신축된 개원사는 중심선상에 자운병(紫雲屛)과 천왕전(天王殿), 배정(拜亭), 대웅전, 감노계대(甘露戒台), 장경각(藏經閣) 등 건물을 두었다.   (사진설명: 천왕전 입구)   개원사 산문인 천왕전은 1925년의 건물이다. 하지만 상단과 하단이 가늘고 가운데가 굵은 천왕전의 기둥은 당나라때의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돌기둥에는 "예로부터 불교의 나라로 불리우는 이 곳에서는 모두가 성인이어라"라는 시구가 새겨져 있다. 전한데 의하면 이 시는 남송(南宋)때의 대문호인 주희(朱熹)가 쓰고 근대의 고승 홍일법사(弘一法師)가 새긴 것이다. 천왕전의 양쪽에는 불교 밀종(密宗)파의 룰에 의해 금강신과 범왕신이 공양되어 있다.   (사진설명; 대웅전앞의 마당 배정)   배정(拜亭)앞쪽에는 돌을 깐 뜰 배정(拜庭)이 조성되어 있다. 풀 하나 자라지 않는 이 돌의 정원은 과거 불교행사장소였다. 마당의 중앙에는 돌로 된 향로가 있는데 향로에는 용과 구름, 연꽃 등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밖에 돌의 정원에는 1145년 인도에서 들여온 석탑 2기가 있다. 그리고 정원의 양쪽에는 200-800년 수령의 보리수 8그루가 짙은 그늘을 만든다. 보리수 그늘에는 당나라와 송나라, 명나라때 다양한 모양의 경번 11점이 있다.   (사진설명: 아아한 진국탑)   동쪽과 서쪽 광장에는...
판다번역 2012.08.16 추천 0 조회 1994
(사진설명: 이슬람사원 일각)   복건(福建, Fujian)성 천주(泉州, Quanzhou)시의 청진사(淸眞寺)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화강암과 섬록암으로 지은 아랍풍의 이슬람사원이다. 지금으로부터 천여년전에 지은 천주의 청진사는 중국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3대 이슬람사원이다.   성우사(聖友寺) 혹은 기린사(麒麟寺)라고도 하는 천주 이슬람사원은 북송(北宋)때인 1009년에 신축했다. 그때 당시 천주는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항구여서 각 국의 상선들이 드나들었고 그와 함께 이역의 종교와 문화가 물밀듯이 천주에 밀려들었다. 그런 역사의 견증자가 바로 천주의 이슬람 사원 청진사이다.   (사진설명: 사원의 정문)   시리아 디마스쿠의 이슬람교 예배당을 본따서 지은 천주의 청진사는 하얀 화강암과 푸른 섬록암으로 축조했는데 문과 창은 모두 둥글게 아치형으로 축조했다.   거리로 향한 문루(門樓)는 대표적인 중앙 아시아풍이다. 반듯하게 솟은 벽체의 문루는 첩첩한 문 세 개를 조성했다. 문의 상단은 둥근 아치형이고 문과 문 사이의 천정도 둥글게 조성하고 다양한 무늬를 새겼다.   (사진설명: 터만 남은 사원일각)   평평한 단으로 조성된 문루의 지붕은 원래 무슬림들의 행사장인 망월대(望月台)였다. 라마단에 앞서 이슬람교의 성직자인 이맘이 이 곳에서 라마단의 일자를 정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순박하고 돈후해 보이는 사원의 화강암은 현대도시속에서 유난히 세월의 풍상고초를 잘 보여준다. 남쪽으로 거리를 향한 사원은 건물높이가 13m, 너비 6.6m에 달하고 세 겹에 걸쳐 두 개의 뜰을 가진고 있다.   (사진설명: 축성정 일각)   사원입구의 동쪽에는 원래 축성정(祝聖亭)이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고 1350년과 1609년에 각각 세운 <청정사(淸淨寺)재건비> 두 점이 있다. 비석에는...
판다번역 2012.08.14 추천 0 조회 1692
(사진설명: 무이궁과 구곡계)   들어갈수록 비경이 많다는 의미의 "점입가경(漸入佳境)" 명소 무이궁(武夷宮)은 무이산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교의 암자인 동시에 무이산으로 입산하는 입구이기도 하다.   회선관(會仙觀) 혹은 충우관(沖佑觀), 만년궁(萬年宮)으로 불리우는 무이궁은 무이산 산자락의 구곡계(九曲溪)기슭에 위치해 있다. 역대 제왕들이 무이군에 제사를 지내던 곳인 무이궁은 송(宋)나라때 중국 6대 도관의 하나였다.   (사진설명: 점입가경이 새겨진 패방)   당(唐)나라때인 742-755년에 신축한 무이궁은 무이산에서 가장 오래된 고건물로 지금으로부터 천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송나라때 무이궁의 산문은 점입가경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진 패방(牌坊)이었다.   산문을 넘어서면 네모난 연못이 있고 연못 중앙에 돌 다리를 놓았는데 이름하여 망선교(望仙橋)이다. 무이궁의 본전인 삼청전(三淸殿)까지는 세 겹의 문이 있고 문과 문은 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설명: 송나라때의 금목서나무)   첫번째 문과 두번째 문을 연결한 통로의 양쪽에는 정자를 하나씩 세웠고 정자에는 시를 새긴 비석이 있다. 왼쪽 정자의 비석에는 무이산출신의 시인이 쓴 <무이산을 읊도다>라는 시가, 오른쪽 정자의 비석에는 무이궁의 관료를 지낸적 있는 시인의 <영만정(詠幔亭)>이라는 시가 적혀 있다.   푸른 녹음과 화사한 꽃속에 자리잡은 두 정자는 무이궁에서 가장 좋은 쉼터이기도 하다. 그밖에 무이궁에는 무이궁에는 우물 두 개가 있는데 한 우물은 내벽이 하늘을 의미해 둥글게 조성되고 다른 한 우물은 땅을 상징해 모나게 조성되었다.   (사진설명: 무이궁의 만년궁 건물)   무이궁에 보존된 두 건물 중 하나인 만년궁은 현재 주희(朱熹)기념관으로 사용된다. 만년궁은 송나라때 서예의 대가인 주희를 비롯해 많은 문인들이 관료직에 머물면서...
판다번역 2012.08.13 추천 0 조회 2022
(사진설명: 구화산의 절과 탑)   중국 4대 불교명산인 구화산(九華山)은 신라의 스님 김교각이 화신인 지장보살의 도장이다. 무성한 숲속에 기이한 바위들이 산재한 구화산의 아홉 산봉이 마치 연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산 이름이 구화산이다. 구화산에는 현재 절 아흔아홉이 있고 불상은 만여존, 승려는 천여명에 달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절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 천태사(天台寺)와 가장 오래된 절 화성사(化城寺), 암벽위의 절 백세궁(百歲宮)이다.   (사진설명: 백세궁 산문)   구화산 동쪽의 삽소봉(揷霄峰)정상에 세워진 백세궁은 일명 만년선사(萬年禪寺)라고도 한다. 역시 중국 4대 불교명산인 오대산(五台山)의 무하(無瑕)스님이 명나라때 구화산에 이르러 이 곳에서 산열매를 먹으면서 20여년에 걸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썼다고 한다. 1623년 110세의 무하스님이 귀적한 후 세간에서는 그를 일러 백세공(百世公)이라 했다. 그로부터 3년뒤 한 신도가 밤에 이 곳에 이르렀는데 밝은 빛이 있어 그 빛을 따라 가보니 무하스님의 시신이 살아 있는 듯 빛을 뿌렸다고 해서 그의 진신을 공양하고 그 자리에 절을 짓고 백세궁이라 이름했다.   (사진설명: 민가모양의 백세궁)   백세궁은 대표적인 안휘남부 민가의 양식으로 지어진 절이다. 5층 높이의 건물은 산문과 대궐, 육신전(肉身殿), 재당(齎堂), 승려숙소, 손님방, 화장실 등 기능을 한 몸에 모았다. 단독 건물이 없이 커다란 한채의 건물로 된 백세궁은 멀리서 보면 마치 땅을 차고 일어선 고대의 성을 방불케 한다. 이런 양식의 절은 중국에서 찾아보기가 참으로 힘들다. 백세궁의 구도도 뉘연한 산발을 충분히 이용해 첩첩한 건물과 꼬불꼬불한 통로로 아늑하고 변화다단한 미궁을 연출한다.   (사진설명: 백세궁의...
판다번역 2012.08.10 추천 0 조회 2083
(사진설명: 불교명산 구화산)   중국 4대 불교명산인 구화산(九華山)은 신라의 스님 김교각이 화신인 지장보살의 도장이다. 무성한 숲속에 기이한 바위들이 산재한 구화산의 아홉 산봉이 마치 연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산 이름이 구화산이다. 구화산에는 현재 절 아흔아홉이 있고 불상은 만여존, 승려는 천여명에 달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절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 천태사(天台寺)와 가장 오래된 절 화성사(化城寺), 암벽위의 절 백세궁(百歲宮)이다.   (사진설명: 정면에서 본 화성사)   사면에 산이 성처럼 둘러서 있다고 해서 이름한 화성사는 유구한 역사의 지장보살 도장이고 구화산의 본산이다. 당(唐)나라때인 756년에 신라의 스님 김교각이 입주해 수행을 시작했고 794년에 김교각이 99세를 일기로 귀적한 후 사람들은 그를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인정했다. 구화가(九華街)에 위치한 화성사는 뒤에 호형산(虎形山)을 업고 부용산(芙蓉山)을 마주하고 있으며 왼쪽에는 동애봉(東崖峰), 오른쪽에 신광령(神光嶺)과 이웃한다. 따라서 겨울에 서늘하고 겨울에 따뜻한 화성사는 주거에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사진설명: 화성사 돌사자와 계단)   화성사 앞쪽에 둥근 광장이 있고 광장의 중앙에는 반달모양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데 전한데 의하면 이 연못은 지장보살이 사용하던 방생지(放生池)라고 한다. 연못의 북쪽 계단아래 돌사자 두 마리가 있는데 당송(唐宋)때의 유물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에 돌사자는 모난 곳이 하나도 없이 둥글둥글해졌다. 네 개의 뜰을 가진 화성사의 세 단상에는 산문과 대웅전, 뒷 뜰과 장경루(藏經樓)가 자리잡고 있다. 앞쪽에서 뒷쪽으로 가면서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단상은 계단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사진설명: 화성사 대웅전)   첫번째 단상에 산문인 천왕전(天王殿)이 있고 그로부터 아홉개의...
판다번역 2012.08.09 추천 0 조회 1909
(사진설명: 불교명산 구화산)   중국 4대 불교명산인 구화산(九華山)은 신라의 스님 김교각이 화신인 지장보살의 도장이다. 무성한 숲속에 기이한 바위들이 산재한 구화산의 아홉 산봉이 마치 연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산 이름이 구화산이다. 구화산에는 현재 절 아흔아홉이 있고 불상은 만여존, 승려는 천여명에 달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절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 천태사(天台寺)와 가장 오래된 절 화성사(化城寺), 암벽위의 절 백세궁(百歲宮)이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천태사)   일명 지장사(地藏寺) 혹은 지장선사(地藏禪寺)로도 불리우는 천태사는 해발 1306m의 천태봉 정상에 지어져 있다. 구화산에서 천태봉은 불교신도들이 필히 참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구화산에서 가장 높은 산봉은 아니지만 구화산 정상으로 인정된다. 지장사의 역사는 아주 유구하다. 전한데 의하면 김교각이 이 곳에 묵었으며 많은 스님들이 이 곳에서 지장보살과 회동했다고 하며 따라서 "김선동(金仙洞)"유적도 남아 있다.   (사진설명; 가까이에서 본 천태사)   송(宋)나라때 천태사는 "맑은 종소리에 온 산이 화답하는"규모를 자랑했으나 후에 절이 무너지고 1368년 명(明)나라때 소연법사(昭蓮法師)에 의해 재건되었다. 청나라때에 이르러 구화산 천태봉 주변에 많은 절들이 세워지면서 1890년 사원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고배대(古拜台)를 지나 십왕봉(十王峰) 기슭의 산길을 따라 걸으면 천태봉의 천태사에 이르게 된다. 천태사를 마주하고 바라보면 왼쪽에 용두봉(龍頭峰)이 지켜서고 오른쪽에는 용주봉(龍珠峰), 맞은켠에는 십왕봉이 솟아 있다.   (사진설명: 험준한 천태사)   전한데 의하면 구화산은 용맥인데 용주봉은 바로 구화산 청룡이 가지고 노는 보석이고 십왕봉은 열 왕이 지방보살을 참배하는 형상이라고 한다. 절앞의 바위에는 "비인간(非人間)" 등 다양한 마애석각이 있다. 천태사의...
판다번역 2012.08.08 추천 0 조회 1999
(사진설명: 국청사의 수나라 탑) 천태종(天台宗)의 발원지인 국청사(國淸寺)는 심산속에 숨은 절이다. 사면이 산에 둘러싸인 국청사는 규방의 수줍은 소녀처럼 고요하고 아늑하다. 천태현을 나서면 벌써 저 멀리에 키 높은 탑이 아련히 보이는데 국청사 산 기슭에 이르러서야 탑이 완연한 모습을 드러내고 심산속에 몸을 숨겼던 절도 그제서야 문을 열고 나선듯 하다. (사진설명: 국청사 산문밖) 국청사는 산문밖에서부터 많은 건물들을 교묘하게 설계했다. 수나라때의 탑 수탑(隨塔)과 한십정(寒拾亭), 조벽(照壁), 풍간교(豊干橋) 등 구조물이 산발을 따라 산재해 있는데 어느 하나도 일직선상에 놓여있지 않고 임의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면서도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주변의 청산녹수, 키 높은 고목과 함께 사람들에게 우아한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벽돌로 쌓은 59.6m높이의 탑은 천여년동안 구름속에 우뚝 솟아 있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이 탑은 수나라때인 598년에 축조를 시작해 601년에 마감되었다고 한다. 그 뒤 남송때인 1129년에 6면9층으로 개보수했다. (사진설명: 아아한 수나라 탑) 고목이 울창한 산허리에 우뚝 솟은 탑은 뒤에 산을 업고 하천을 마주한다. 탑의 외벽은 갈색이고 정상에 불상을 조각했으며 층마다 처마를 조성하기도 했다. 국청사는 다른 절처럼 남쪽을 향한 것이 아니라 동쪽을 바라본다. 한십정(寒拾亭)을 돌아서면 수나라 사원의 일조벽(一照壁)이 맞이하고 풍간교(豊干橋)를 지나 동쪽으로 조금 더 가야 산문(山門)이 보인다. (사진설명: 산문안 통로) 산문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반은 폐쇄된 듯 반은 오픈된 듯한 특수한 공간에 처하게 된다. 산문을 넘어 굽이를 돌면 오솔길 양쪽에 1.7m의 노란 담벽이 있고 그 담벽뒤로 푸른 대나무가 꽉 박아서서 하늘을 가리며 아늑함과 신비감을...
판다번역 2012.08.07 추천 0 조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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