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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무당산: 도교사원의 성산

작성자
판다번역
작성일
2013-11-13 16:52
조회
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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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무당산의 도교사원)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 12중 여덟번째인 무당산(武當山)은 4대 도교명산으로 도교사원의 성산으로 험준한 산위에 웅장한 규모의 도교건축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무당산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무협지에 나오는 무술의 일파인 무림파(武林派)를 머리에 떠올린다. 중국에서는 불교의 사원인 소림사(少林寺)에서 기원한 소림파와 도교 사원인 무당산에서 기원한 무림파가 중국을 대표하는 두 가지 무술로 공인된다.


(사진설명: 무당산과 태극권)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무당검술과 태극(太極)권술이 바로 무당파의 대표하는 무술이다. 태극권의 시조는 장삼풍(張三豊)인데 사서에는 그가 명(明)나라초반에 무당산에 올라 제자들에게 자신이 깨우친 무술 태극권을 가르쳤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민간에서 그에 관한 전설은 버전이 아주 많다.

도교의 시조인 현천진무대제(玄天眞武大帝)가 수행산 성산으로써 무당산은 기원전부터 "진무(眞武)가 아니면 마땅치 않다"는 의미로 무당산으로 불리웠다. 그 뒤에 선학을 깨닫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당산에 은둔했고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장삼풍이다.


(사진설명: 무당산의 패방)

무당산에 입산하기도 전에 길가에는 뒤에 동네가 있음을 알려주는 패방(牌坊)이 우뚝 솟아 있다. 기둥 네개에 받들려 있는 그 패방은 석조로 된 누각식 축조물이다.

흘러간 세월이 패방에 흔적을 남겨 여기 저기 귀퉁이가 떨어졌지만 청(淸)나라 가경(嘉慶)의 어필로 된 "치세현악(治世玄岳)"이라는 글자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사진설명: 무당산의 남암궁)

패방을 지나 앞으로 가면 저 산기슭에 자리잡은 옥허궁(玉虛宮)이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 이 건물은 무당산에서 규모가 가장 큰 대궐이었으나 청나라때 무너져 지금은 잡초가 무성한 옛터에 커다란 비석만이 남아 있다.

산 허리에 자리잡은 남암궁(南岩宮)은 옥허궁보다는 괜찮다. 1926년의 화재에서 현무대전(玄武大殿)을 망라한 대부분 대궐이 재로 되었지만 많은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사진설명: 무당산의 용두향바위)

남암궁의 맞은켠에는 아찔한 절벽의 좁은 둔덕에 건물들이 지어져 위태로와 보인다. 그 건물의 옆에는 용모양의 바위가 낭떠러지쪽으로 툭 튀어나왔는데 발아래는 깊이를 알수 없는 심연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용의 형상을 한 바위에 올라 향을 피우면 용두향(龍頭香)이라 하여 아주 영험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바위에 올라 향을 피우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러면서 바위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청나라때 용두향 금지령을 내리면서 더는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사진설명: 무당산의 자소궁)

자소궁(紫霄宮)은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대궐이다. 첩첩하게 손에 손 잡은 대궐들이 산발을 따라 자리잡아 심히 장관이다. 무당산 건물 중 가장 대표적인 건물 자소전에는 도교 최고의 신인 옥황대제(玉皇大帝)가 공양되어 있다.

도교무술인 무학의 시조인 장삼풍은 조배전(朝拜殿)에 공양되어 있다. 오늘날도 도교신앙을 가진 많은 도인들이 무당산에 올라 장삼풍을 참배하고 무술을 연마하지만 일반인들의 눈에는 거의 띄지 않는다.


(사진설명: 무당산 태화궁과 일출)

자소궁보다도 더 장관을 이루는 건물은 태화궁(太和宮)이다. 키 높은 돌담이 무당산의 정상인 천주봉(天柱峰)을 안고 돌고 그 성위에 웅장한 대궐을 지은 태화궁은 베이징(北京)의 자금성과 흡사하다.

대궐의 중앙에 노오란 구리로 지어진 건물 금전(金殿)이 유난히 눈에 띈다. 목조건물을 본 따서 지은 금전은 건물의 부위별로 주조해서 조립했는데 틈 하나 없이 구도가 엄밀하고 오백여년의 세월동안 끄떡없이 정상에 솟아 있다.


(사진설명: 자소궁과 정상의 태화궁)

무당산이 번성일로를 달릴때는 9궁, 9관(觀), 36암당(庵堂), 72암묘(庵廟), 39교(橋), 12정(亭)이 있었다. 이토록 웅장한 규모의 도교사원을 가난한 도인들이 지었을리는 없다.

사실 무당산의 건물은 대부분 명나라 황실에서 돈을 내서 지은 것이다. 전한데 의하면 명나라의 개국황제 주원장(朱元璋)이 장삼풍을 찾으려 시도했고 그 뒤를 이은 명성조(明成祖)도 장삼풍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사진설명: 무당산의 도교사원들)

편법으로 조카의 손에서 황권을 빼앗은 명성조는 명나라의 도읍을 남경(南京)으로부터 베이징으로 천도한 후 북쪽에 자금성을 짓고 남쪽에 무당산을 축조했다.

명성조는 황권을 탈취한 자신의 허점을 감추기 위해 도교의 힘을 빌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야 세인들의 앞에서 자신은 신의 허락을 받은 황제임을 나타낼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설명: 몽롱한 무당산)

설명:

무당산 산위로 올라가는 과정에 인적이 드문 곳이 적지 않다. 외벽진 곳에는 진입하지 말고 가장 좋기는 무당산에 익숙한 가이드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도교사원에서는 조용히 하고 대궐에 드나들때는 문턱을 밟지 않도록 유의하며 도인들을 만나면 나이나 도교수련을 시작하게 된 이유, 혹은 사적인 일을 묻지 않는다.


(사진설명: 무당산의 선경)

위치: 호북(湖北, Hubei)성 단강구(丹江口, Danjiangkou)시

교통: 호북성 소재지 무창(武昌, Wuchang)에서 열차를 이용해 십언(十堰, Shiyan)에 이른 다음 무당산행 버스를 바꾸어 탄다. 혹은 단강구에서 무당산행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출처: 중국국제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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