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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공죽사: 동방조각의 보고

작성자
판다번역
작성일
2012-09-25 20:11
조회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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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공죽사 대웅전)


운남(雲南, Yunnan)성 곤명(昆明, Kunming)의 공죽사(筇竹寺)는 오백나한의 생동한 조각상으로 동방조각의 보고로 인정된다.


공죽사 나한상의 특징은 모든 불상이 똑 같은 틀에서 벗어나 현실생활에서 취한 인물상을 불교의 전기적인 스토리와 접목시킨데 있다.


진실된 인간과 같은 크기의 오백나한상은 각자 다양한 모습을 자랑한다.


범음각(梵音閣)의 나한상이 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면 대웅전의 나한상은 대중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사진설명: 공죽사 화엄각)


중원(中原)지역의 불교가 운남에 전파된 후 지은 첫 사원인 공죽사의 창시인은 1228년부터 1301년까지의 웅변법사(雄辯法師)라고 한다.


하지만 그 뒤에 공죽사는 수차 무너지고 재건되었으며 오늘날 건물은 청(淸)나라때 보수한 것이다.


청나라 관리로 있다가 벼슬에 싫증을 느끼고 공죽사에서 노후를 보내던 라불스님이 무너져가는 절을 보수증축하고 당시의 유명 조각가를 초청해 오백나한상을 빚게 했다.



(사진설명: 공죽사 건물)


세 겹의 뜰을 거느린 공죽사는 산발을 따라 산문(山門)과 대웅전, 화엄각(華嚴閣)이 양쪽에 범음각과 천대래각(天台來閣) 등 건물들을 거느리고 펼쳐져 있다.


공죽사를 유명하게 한 나한상은 범음각과 천대각, 대웅전 등에 산재해 있다.


 중국 최고의 진흙조각상인 공죽사의 오백나한상은 범음각과 천대래각에 216점이 있고 대웅전에 69존이 있다.



(사진설명: 공죽사 조각)


려광수(黎廣修)라고 하는 청(淸)나라말의 한 민간조각 대가가 제자들과 함께 7여년에 걸쳐 마친 이 조각상들은 광물과 식물을 원료로 했는데 오늘날도 변함없이 색채가 연하면서도 맑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한 려광수는 집안 내력으로 진흙조각의 기술을 이어받았다.


불교신자인 려광수는 불교의 교리에도 밝아서 제자 5명을 데리고 1883년부터 1890년까지의 7년동안 오백나한상을 마무리했다.



(사진설명: 공죽사 조각)


공죽사의 나한상은 인간세상의 각계각층의 인간을 본땄기 때문에 신선이 아니라 낯익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정답게 보인다.


려광수는 황제와 어부, 농부 등 인간세상의 다양한 인간은 물론이고 자신의 제자들도 나한상으로 조각했다.


또한 다른 절의 나한상은 모두 굳은 표정으로 정좌하고 있는데 비해 공죽사의 나한상은 혹은 앉거나 혹은 서 있으며 시를 읊조리는 나한도 있고 그림을 그리는 나한도 있다.



(사진설명: 공죽사 조각)


그 중 49번째 나한은 비파를 들고 노래를 부르면서 건강하고 즐거운 심정을 보여주고 8번째 나한은 두 눈썹을 모아 앞쪽을 노려보면서 분노와 불만을 나타낸다.


50번째 나한은 바짝 마른 모습에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데 몰아적인 심경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


그밖에 공죽사에는 역대로 남아 내려온 비석과 주련이 많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주련이 대웅전에 걸려 있다.


 "두 손으로 땅과 산천을 주물러서 공으로 빚어 하늘에 던지니 아무런 볼것도 없고, 단숨에 천조의 기운을 받아 이리저리 씹어서 뱃속에 넣었더니 빛이 뿜어져 나오네"라는 주련은 불교의 기백과 도교의 억양을 두루 갖추고 있다.



(사진설명: 아늑한 공죽사)


곤명시서쪽의 옥안산(玉案山)은 푸른 병풍같은 산발이 길게 뻗어 있고 골에는 맑은 샘물이 흘러 항상 물안개가 자욱한데 아늑한 푸른 소나무속에 공죽사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공죽사는 운남(雲南, Yunnan)성 곤명(昆明, Kunming)에서 12km 떨어진 근교에 위치, 7선 버스나 곤명예술극장에서 출발하는 공죽사행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입장권은 50위안이고 개원시간은 08:00-17:00이다.


출처: 중국국제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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