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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사진설명: 아름다운 랑목사) 라마교 사원인 랑목사(郞木寺)는 높은 산과 푸른 초원, 울창한 소나무숲, 맑은 시냇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무릉도원에 위치해 있다. 사원앞에는 스님의 모자를 방불케 하는 나지막한 언덕이 마주하고 동쪽에는 붉은 사암으로 빚어진 산봉이 솟아 있으며 서쪽에는 아아한 절벽이 막아서고 푸른 소나무가 우거진 골에는 맑은 백룡강이 흐른다. 감숙(甘肅, Gansu)성 랑목사향(郞木寺鄕)에 위치한 랑목사는 해발 4600m의 산자락 백룡강(白龍江)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1747년 현지의 한 스님에 의해 축조되었던 랑목사는 한때 번성일로를 달리다가 1969년에 거의 훼손되었으며 현재 점차 원상복귀되고 있다. (사진설명: 랑목사의 탑과 언덕) 산 좋고 물 맑은 속에 금빛으로 찬란한 사원건물과 소박한 가옥들이 아기자기 사이좋게 자리잡고 있다. 랑목사는 감숙과 사천, 청해(靑海, Qinghai)지역의 신도들이 라마교 흑호여신(黑虎女神)을 참배하는 성지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과거 이 곳 사람들은 모두 흑호여신으로 불리우는 호랑이를 토템으로 신앙했다고 한다. "랑목"이란 티베트어로 "호랑이 동굴속 선녀"를 뜻한다. (사진설명: 랑목사의 이른아침) 랑목사 부근의 동굴에 사람모양의 종유석이 있는데 이 종유석은 한 스님이 이 곳에 이르러 불교의 교리로 호랑이를 길들여 착한 선녀로 만든 화신이라고 한다. 오늘날 이 호랑이 선녀인 "랑목"의 몸에는 상서로운 의미의 하다가 알록달록 걸려 있다. 그밖에도 랑목사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아주 많다. 랑목사의 서쪽에 위치한 벼랑 상단에 1m 길이의 손바닥 자욱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는 동굴과 바다가 연결되었던 옛날 바닷물이 동굴로 흘러들어 동네에 큰 물이 지게 되자 한 스님이 나타나 벼랑을 손바닥으로 쳐서 바닷물을 멈추게 했던 자국이라고 한다....
판다번역 2012.10.22 추천 0 조회 1664
(사진설명: 멀리서 본 라부렁사) 라마교 겔룩파의 6대사원인 라부렁사(拉卜楞寺)는 포탈라궁전의 버금으로 가는 규모를 자랑한다.  라부렁사는 감숙(甘肅, Gansu)과 청해(靑海, Qinghai), 사천(四川, Sichuan)지역 최대의 종교 및 문화중심이다. 대학 6개와 불전 및 활불의 거처 48곳, 승려 숙소 500여곳을 거느린 라부렁사는 중국에서 가장 완벽한 라마교 교학체계를 보유한 한(漢)족풍의 건물과 티베트풍 건물이 어우러진 건물군락이다. (사진설명: 라부렁사 탑과 시냇물) 라부렁사란 티베트어로 최고 활불의 관저라는 뜻이다. 원(元)나라 초반에 이 곳은 친왕의 관저였고 청(淸)나라때인 1709년에 이 곳의 수려한 경치에 매료된 한 스님이 절을 지었다. 그 뒤로 역대 활불이 사원을 증축하면서 라부렁사는 티베트를 제외한 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라마교 겔룩파의 또 다른 중심 및 최고의 불교대학으로 부상했다. (사진설명: 라부렁사 건물일각) 라부렁사는 크고 작은 건물을 수많이 거느린다. 그 중 7층건물 1채, 6층건물 1채, 4층건물 4채, 3층건물 8채, 2층건물 9채에 달하며 노오란 기와를 얹은 높은 레벨의 건물 4채, 푸른 기와의 건물은 2채이다. 이런 건물들 중 31채 건물은 활불의 관저로 사용되고 6채는 주방, 2채는 스님의 별장으로 사용되며 경을 논하는 방만 해도 500여칸에 달하고 스님의 숙소는 만여칸이 넘는다. (사진설명: 대경당 내부) 불교경전을 논하는 장소인 경당(經堂)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은 라부렁사의 본전격인 대경당이다. 1772년 증축을 통해 대경당은 140개의 기둥에 받들려 있는 3천여명을 수용할수 있는 규모로 확장되었다. 그 뒤 1946년에는 앞쪽에 별채를 증축해 앞뒤에 별채와 정원을 거느린 라부렁사 최대의 건물로 부상했다. 평평한 지붕위에 노란 보병(寶甁)과...
판다번역 2012.10.18 추천 0 조회 1962
(사진설명: 화각항 이슬람사원 정문) 화각항(化覺巷) 이슬람사원은 중국에서 역사가 가장 유구하고 규모가 가장 크며 가장 완정하게 보존된 중국풍 건물의 이슬람사원이다. 동서향의 중심선상에 네겹의 정원이 있고 정원마다 한(漢)족양식의 건물들이 위치해 있다. 화각항 이슬람사원은 당(唐)나라때 신축했고 그 뒤에 수차 보수와 확장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네 겹의 정원에서 첫번째부터 세번째까지는 본전에 이르기 위한 준비단계라 할수 있고 정원마다 다양한 건물들이 조화롭다. (사진설명: 사원의 목조 패방) 첫번째 정원의 가장 앞쪽에는 국화와 연꽃무늬가 새겨진 영벽(影壁)이 장관이고 가운데는 날아갈듯한 처마에 반짝이는 오지기와를 얹은 목조 패방(牌坊)이 웅장함을 자랑한다. 17세기경에 세운 이 패방은 남과 북 양쪽에 별채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런 별채들에는 오늘날 명(明)나라와 청(淸)나라때의 옛스러운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설명: 사원의 석조 패방) 오간루(五間樓)를 지나 두번째 정원에 들어서면 숲이 울창한 가운데 화단이 대칭을 이루고 그 사이에 석조 패방(牌坊)이 우뚝 솟아 있다.  기둥 네 개에 받들려 있는 패방에는 "천감재자(天監在玆)"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돌패방의 동쪽과 서쪽에 통로를 만들었는데 서쪽통로의 양쪽에 용을 조각한 비석 두 기가 있다. 1768년에 세운 이 두 비석에서 특히 비문의 서예가 국보급을 자랑한다. (사진설명: 칙수전 외관) 두번째 정원에서 세번째 정원으로 가려면 칙수예배사(勅修禮拜寺)를 거쳐야 한다. 칙수전(勅修殿)으로도 불리우는 이 건물은 1522-1566년 재건때는 이 사원의 정문이었고 현재 이 사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귀퉁이가 건듯 들린 지붕을 떠인 칙수전의 붉은 문에는 금빛의 못이 박혀 있고 벽돌에는 은빛의 조각으로 장식했다. 칙수전에는 1455년의 돌비석 한...
판다번역 2012.10.16 추천 0 조회 2477
(사진설명: 서악묘의 성과 건물) 서악묘(西岳廟)는 오악의 절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역사도 가장 유구한 산신묘이다.  서악대제인 화산신(華山神)이 공양하는 서악묘는 기원전의 한무제(漢武帝)때 신축되었다. 안팎으로 두 겹에 걸친 성곽과 중심선을 둘러싼 엄격한 대칭구조는 황궁사원에 버금간다. 오늘날의 서악묘는 명청(明淸)때 황궁인 자금성(紫禁城)을 본따서 지은 건물로 미니 고궁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한라나때 시작되어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를 거쳐 수당송원(隨唐宋元) 시대에 보강되고 명청(明淸)때 번성일로를 달리다가 청나라 말에 몰락한 서악묘는 지금까지 이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서악묘와 화산) 일명 화악묘(華岳廟) 혹은 화산묘(華山廟), 황묘(皇廟), 대묘(大廟)로도 불리우는 서악묘는 일반 의미의 절이 아니라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나라를 대표하여 화산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황제의 주거시설과 유사하게 지으라"는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의 어명에 의해 지어진 서악묘는 부지 14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대 규모의 황실정원식 고건물군락이다. (사진설명: 서악묘와 화산) 주요 건물들이 중심선을 둘러싸고 펼쳐져 있는데 조화롭게 높고 낮은 건물들이 기복을 이루면서도 엄격한 대칭을 이룬다. 따라서 서악묘는 더욱 웅장하고 질서정연해 보인다. 남쪽으로 화산을 바라보는 서악묘는 여섯 공간이 각자 다양한 모양을 자랑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떨어질수 없는 일체를 이룬다. 첫번째 공간은 서악묘의 입구인 오봉루(五鳳樓)에서 시작된다. 이 공간에는 목조 패루와 오지기와의 조벽(照壁), 호령문(灝靈門), 돌난간에 둘러싸인 기반가(棋盤街), 돌사자, 쇠 솟대 등이 있다. (사진설명: 어제화산명잔자비) 두번째 공간은 오봉루 뒷쪽의 정원이다. 과거 이 곳에는 다양한 서체를 자랑하는 조대별 돌비석들이 즐비했다. 오늘날은 당현종(唐玄宗)의 어제화산명잔자비(御製華山銘殘字碑)라는 비석만이 남아 있다.  이 비석은 당현종이 화산에서 제사를 지낸후 어필로 쓴...
판다번역 2012.10.08 추천 0 조회 2215
(사진설명: 대자은사 산문) 대자은사(大慈恩寺)는 당(唐)나라 장안(長安)성에서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가장 큰 황실사원이었으며 삼장(三藏)법사가 머나먼 서역에 가서 불교경전을 가져다가 번역하고 그 경전을 소장한 곳이기도 하다. 자은사는 당나라때인 648년에 태자 이치(李治)가 자신의 모친인 문덕(文德)황후를 기념해 지은 절로써 지금까지 장장 135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대안탑) 대자은사의 산문(山門)에 들어서면 종루(鐘樓)와 고루(鼓樓)가 서로 마주 바라보고 그 사이로 뻗은 중심선상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과 법당(法堂), 대안탑(大安塔), 현장삼장원(玄奬三藏院) 등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종루에는 1548년 명(明)나라때 주조한 쇠종이 하나 걸려 있다. 무게 15톤의 종에는 "안탑신종(雁塔晨鐘)"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대안탑의 새벽 종소리를 뜻하는 안탑신종은 관중(關中)팔경이다. (사진설명: 삼장법사 동상과 대안탑) 652년 삼장법사가 인도에서 모셔온 불상과 사리를 공양하기 위해 세운 대안탑(大安塔)은 내부에 계단을 조성해 탑정상까지 등반이 가능하며 오늘날도 서안시전경을 볼수 있는 좋은 전망대이다. 대안탑(大雁塔)은 또한 서안(西安, Xi'an)시의 심벌이다. 당나라 풍의 심플한 누각식 건물인 대안탑은 지나친 장식은 하지 않았지만 웅장한 기세와 대범함을 자랑한다. (사진설명: 가까이에서 본 대안탑) 5m 높이의 단위에 세워져 있는 7층 64m의 아아한 높이를 자랑하는 대안탑은 중국 불교건축사에서 명성높은 대표작이다. 대안탑의 남쪽 단에 조성된 문에는 당나라때 유명 화백이 그린 불상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양쪽에는 역시 당나라때 유명 서예가의 필치를 새긴 돌비석 두 점이 있는데 당나라때 장안성의 선비들이 과거시험에 급제하면 이 비석에 이름을 새길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설명: 대웅전 석가모니 삼신불)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삼신불이 공양되어 있고 동쪽과 서쪽에는 18나한상이 있다. 이...
판다번역 2012.10.05 추천 0 조회 1795
(사진설명: 법문사와 탑) 금빛찬란한 법문사(法門寺)는 석가모니의 불지사리와 당(唐)나라때의 많은 문화재들이 발굴되어 내외를 놀래운 절이다. 동한(東漢)때 신축되어 당나라때 황실사원으로 부상한 법문사에 석가모니의 불지사리가 모셔져 있다. 당나라 황제 8명이 법문사 지궁(地宮)에 모셔진 불지사리를 친견하면서 공물로 많은 보물을 하사했고 그런 보물들이 모두 지궁에 소장되어 있다가 함께 발굴되었다. 발견된 보물들로는 121점의 금은기와 17점의 영롱한 유리자기, 700여점의 면과 비단, 자수 등 많은 견직물들이다. (사진설명: 법문사와 산문) 남쪽을 바라보는 법문사는 북쪽으로 교산(喬山)을 뒤에 업고 남쪽으로 위수(渭水)를 이웃하며 저 멀리 진령(秦嶺)을 마주한다. 산문(山門)과 나한전(羅漢殿), 진신보탑(眞身寶塔), 대웅전(大雄殿), 장경루(藏經樓)가 양쪽에 방장실과 조사당(祖師堂) 등 건물을 거느린다. 동쪽의 정원에는 옥불각(玉佛閣)과 스님들의 숙소, 식당, 불학원(佛學院) 등이 위치해 있다. 당나라 건물을 본따서 지은 법문사는 부지만 해도 73,200제곱미터나 된다. (사진설명: 법문사와 대웅전) 진신보탑을 중심으로 한 법문사는 옛스러우면서도 우아함을 자랑한다. 청기와를 얹은 날아갈듯한 지붕과 드러난 세 문과 보이지 않는 두 문을 가진 산문은 모두 대표적인 당나라식 건물이다. 산문밖에는 광장이 조성되고 광장의 남쪽에 양쪽에 화단을 거느린 보탑로(寶塔路)가 펼쳐져 있으며 보탑로의 중앙에 연못이 있고 연못의 가운데는 동산이 꾸며져 있다. (사진설명: 고루와 패루) 연못의 남쪽에 문 세 개와 3층으로 된 패루(牌樓)가 세워져 있다. 붉은 기둥에 화려한 채색의 그림으로 가득한 대들보, 건듯 들린 처마, 지붕에 새겨진 뭇 짐승 등이 장관이다. 산문을 넘어 웅장한 천왕전(天王殿)을 지나면 13층으로 된 사리탑이 한 눈에 보인다. 당나라때의 탑과 명나라때의 탑을 기준으로 한 사리탑은 누각식...
판다번역 2012.10.05 추천 0 조회 2439
(사진설명: 숭성사와 삼탑) "구름속에 솟은 삼탑과 비바람과 함께 하는 종"을 가진 운남(雲南, Yunnan)의 숭성사(崇聖寺)는 대리(大理, Dali) 바이족 문화의 대표인 동시에 중국의 남부지역에서 역사가 가장 유구하고 건물이 가장 웅장한 절이다. 1978년 숭성사에 대한 대규모 보수공사에서 지금까지 발견한 문화재중 양이 가장 많은 대리국(大理國)과 남조국(南詔國)시기의 불교문화재 600여점을 발견했다. (사진설명: 숭성사 정문) 숭성사 삼탑은 824년과 859년 사이의 남조국과 대리국때 지은 사원이다. 그 때 운남에서는 불교가 성행해 크고 작은 절 천여채가 있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숭성사이다.  먼저 세 탑중 큰 탑을 짓고 남과 북에 작은 탑 두 개를 세운 다음 세 탑 사이에 사원을 지었다. 날마다 날이 밝아오면 세상과 동떨어진듯한 숭성사에서는 맑은 종소리가 울리고 승려들의 발자국소리가 새벽의 고요를 깨뜨린다. 불밝은 대웅전에서 목탁소리와 함께 승려들의 독경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사진설명: 수려한 삼탑) 숭성사를 둘러선 세 탑은 수백년동안 매일 이 같은 광경을 묵묵히 내려다 보면서 변함없이 하얀 탑신으로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또한 세 탑이 거꾸로 비낀 호수의 수면위를 새들이 날아예며 반긴다. 삼탑은 명(明)나라 여행객 서하객(徐霞客)의 여행기와 무협지의 대가 김용(金庸)의 소설에 많이 등장한다. 삼탑이 둘러싸고 있는 절은 이름이 숭성탑이지만 세 탑의 인기로 인해 삼탑사로도 불리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운남을 생각하면 먼저 삼탑을 떠올린다. 대리의 역사와 모든것을 보아온 이 삼탑은 오늘날도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설명: 아아한 삼탑) 당(唐)나라때의 풍격을 지닌 삼탑은 모양이 서안(西安, Xi'an)의 소안탑(小雁塔)과...
판다번역 2012.10.05 추천 0 조회 2128
(사진설명; 공죽사 대웅전) 운남(雲南, Yunnan)성 곤명(昆明, Kunming)의 공죽사(筇竹寺)는 오백나한의 생동한 조각상으로 동방조각의 보고로 인정된다. 공죽사 나한상의 특징은 모든 불상이 똑 같은 틀에서 벗어나 현실생활에서 취한 인물상을 불교의 전기적인 스토리와 접목시킨데 있다. 진실된 인간과 같은 크기의 오백나한상은 각자 다양한 모습을 자랑한다. 범음각(梵音閣)의 나한상이 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면 대웅전의 나한상은 대중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사진설명: 공죽사 화엄각) 중원(中原)지역의 불교가 운남에 전파된 후 지은 첫 사원인 공죽사의 창시인은 1228년부터 1301년까지의 웅변법사(雄辯法師)라고 한다. 하지만 그 뒤에 공죽사는 수차 무너지고 재건되었으며 오늘날 건물은 청(淸)나라때 보수한 것이다. 청나라 관리로 있다가 벼슬에 싫증을 느끼고 공죽사에서 노후를 보내던 라불스님이 무너져가는 절을 보수증축하고 당시의 유명 조각가를 초청해 오백나한상을 빚게 했다. (사진설명: 공죽사 건물) 세 겹의 뜰을 거느린 공죽사는 산발을 따라 산문(山門)과 대웅전, 화엄각(華嚴閣)이 양쪽에 범음각과 천대래각(天台來閣) 등 건물들을 거느리고 펼쳐져 있다. 공죽사를 유명하게 한 나한상은 범음각과 천대각, 대웅전 등에 산재해 있다.  중국 최고의 진흙조각상인 공죽사의 오백나한상은 범음각과 천대래각에 216점이 있고 대웅전에 69존이 있다. (사진설명: 공죽사 조각) 려광수(黎廣修)라고 하는 청(淸)나라말의 한 민간조각 대가가 제자들과 함께 7여년에 걸쳐 마친 이 조각상들은 광물과 식물을 원료로 했는데 오늘날도 변함없이 색채가 연하면서도 맑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한 려광수는 집안 내력으로 진흙조각의 기술을 이어받았다. 불교신자인 려광수는 불교의 교리에도 밝아서 제자 5명을 데리고 1883년부터 1890년까지의 7년동안 오백나한상을 마무리했다. (사진설명: 공죽사 조각) 공죽사의 나한상은 인간세상의 각계각층의 인간을 본땄기 때문에...
판다번역 2012.09.25 추천 0 조회 2328
(사진설명: 아름다운 불교의 산 범정산) 미륵(彌勒)보살의 도장으로 인정되는 불교명산 범정산(梵淨山)은 이름부터 블교와 끊을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 따라서 속세를 벗어난 깨끗한 땅이라는 의미의 범정산에는 많은 절이 있고 절의 향불 또한 백여년을 이어오고 있다. 버섯바위와 만권서(萬券書), 구룡지(九龍池) 등을 비롯해 범정산의 산과 물도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신화전설이 깃들어 있는 불교의 문화재이며 해마다 4월이 되면 많은 신자들이 몰려들어 경관을 이루기도 한다. (사진설명; 범정산의 사원과 산봉) 범정산은 명(明)나라때인 1570년대에 개발을 시작해 절을 짓고 길을 깔아 중국에서 이름난 불교의 명산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비문에 의하면 <뭇 명산의 뿌리>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무릉(武陵)산발의 주봉인 범정산은 풍부한 동식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급 자연보호구인 동시에 유엔 "인간과 생물권 보호구역"에 속해 있기도 한다. (사진설명: 두 산봉에 위치한 승은사) 수려한 범정산의 산과 물사이에는 황실사원 4개와 48채의 웅장한 사원이 산재해 있다. 정상의 승은사(承恩寺)로부터 시작해 산 여기저기에 보국사(報國寺), 종령사(鐘靈寺), 태평사(太平寺) 등 절들이 즐비하다. 범정산은 산 자체가 자연의 걸작이다. 정상이 두개로 나뉘어 있고 석가모니전과 미륵전이 각자 하나씩 자리잡고 있고 두 대궐은 아찔할 절벽을 가로지른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설명: 범정산 불광) 신자의 향불이 끊이지 않는 범정산 정상에는 항상 운무와 향불연기가 자욱하고 늘 불교명산임을 보여주는 듯 신비로운 불광(佛光)이 나타나 신자는 물론 일반인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 중에서도 해마다 음력 4월에 들어서는 향회기(香會期)가 되면 매일 수천수만명의 불교신자들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룬다. 그들은 범정산 기슭의 각암(脚庵)에서부터 세 걸음에 한 번 절하고 다섯 걸음에...
판다번역 2012.09.21 추천 0 조회 2279
(사진설명: 감자사의 건물들) 티베트 불교에서 겔룩파사원에 속하는 감자사(甘孜寺)는 티베트어로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길상스런운 사원이라는 뜻이다. 3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감자사는 티베트족과 한족의 건물양식이 어우러진 웅장한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사천(四川, Sichuan)성 감자(甘孜, Ganzi)현에 위치한 감자사는 원래 1662년 청(淸)나라때 달라이 5세가 제자를 파견해 지은 사원이다. 청나라때 건물은 무너지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은 1981년에 복원한 것이다. (사진설명: 감자사 대경당) 북쪽에 위치해 남을 바라보는 감자사는 메인대궐인 대경당(大經堂) 한 채와 작은 경당 열채, 미륵전(彌勒殿), 550여명을 수용할수 있는 자창(학교)을 거느리고 있다. 대궐의 지붕은 모나게 조성되고 네 귀퉁이에 날아갈듯한 처마를 만들었으며 지붕에는 반짝이는 오지기와를 얹었는데 둥근 보병(寶甁), 구리로 만든 여의(如意) 등이 햇빛아래 화려한 빛을 뿜으면서 비범함을 과시한다. (사진설명: 대경당의 내부) 4층으로 된 대궐에서 1층은 경당이고 2층이 호법신전(護法神殿)이며 3층은 티베트 불교에서 여래불격인 창바불을 공양하는 신전이고 4층에는 인도의 한 스님상이 공양되어 있다. 호법신전의 벽에는 다양한 모양의 칼과 총들이 걸려 있다. 이런 칼과 총은 모두 지역 민중들이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로 진헌한 것이고 감자사에서는 그런 살생무기를 이 곳에 전시하고 있다. (사진설명: 감자사의 도신장면) 경당의 내부는 금빛으로 찬란하고 대들보와 기둥에는 온통 화려한 그림이다. 화려한 벽화의 내용물은 살아 있는 듯 생동하기 그지없다. 감자사의 전시실 역시 아주 특색이 있다. 전시된 문화재로는 일명 탱화라고도 하는 탕카와 굿놀이의 일종인 도신(挑神)탈 두 가지이다. 전시된 40여점의 탕카는 그림이나 견직물로 되어 있는데 그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도신탈은...
판다번역 2012.09.20 추천 0 조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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