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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황제릉: 문명 비조의 무덤

작성자
판다번역
작성일
2014-02-12 15:37
조회
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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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황제릉)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묘 10중 첫번째인 황제릉(黃帝陵)은 문명의 비조가 묻힌 무덤이다. 이 곳에서는 반만년동안 지속해온 중국의 찬란한 문명을 읽을수 있다.

<섬서통지(陝西通志) 능묘(陵墓)>에는 "중부(中部)현 동북쪽에 위치, 산의 모양이 다리와 같고 저수(沮水)강이 에돌아 흐르는 교산(橋山)이 바로 황제의 의관총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진설명: 조각으로 보는 황제)

전한데 의하면 황제는 110살까지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떠나는 황제를 아쉬워하던 서민들이 너도 나도 황제의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아 황제는 옷을 남기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황제가 두고 간 옷과 물품을 교산 정상에 묻었고 그 것이 바로 황제릉 최초의 규모였다. 교산이 위치한 곳도 따라서 황릉(黃陵)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교산과 황제릉)

황릉현의 북쪽에 위치한 교산은 산체가 웅장하고 산 기슭으로 저수강이 흐르며 산에는 사철 푸른 고목이 무성해 영산의 분위기를 풍긴다. 신축한 헌원묘(軒轅廟)의 주변에는 푸른 소나무가 빼곡하고 문앞으로는 강물이 흐른다.

헌원묘의 앞에는 5천개의 큰 자갈을 깔아 광장을 조성했다. 이 광장에서는 5천명이 모여 제사를 지낼수 있는데 5천이라는 숫자는 5천년동안 지속된 중국의 문명을 대표하기도 한다.


(사진설명: 5천년 수령의 소나무)

옛스러운 헌원묘의 정원에는 수령이 5천년에 달하는 소나무가 장관이다. 황제가 직접 심었다는 이 소나무는 소나무 줄기가 꿋꿋하게 뻗어 있고 최대의 너비는 11m에 달한다.

헌원묘 대궐의 한쪽에는 또한 황제의 발자국이 찍힌 바위가 놓여 있다. 전한데 의하면 이는 황제의 네번째 황비가 신발을 발명하고 황제의 신발을 만들때 취한 발자국이라고 한다.


(사진설명: 황제의 발자국)

이 발자국의 길이는 0.52m에 달한다. 인간의 비례에 따라 복원하면 황제는 3.9m신장의 거인이다. 대궐의 정문위에는 "인문초조(人文初祖)"라는 간판이 높이 걸려 있다.

대궐의 중앙에는 황제의 반신조각상이 공양되어 있는데 검소한 옷 차림을 했지만 기개가 범상치 않다. 황제상의 주변은 성스러운 새와 짐승, 용과 호랑이의 주작현무(朱雀玄武), 청룡백호(靑龍白虎)로 장식되어 있다.


(사진설명: 헌원묘의 대궐)

헌원묘의 대궐을 마주하면 머나먼 상고시대로 돌아간 듯 하다. 하늘땅이 열리고 여와씨가 하늘을 깁던 그 때 황제의 북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바로 그 때 문자가 창제되고 누에실로 옷을 지어 입었다.

도량형도 그 때 형성되고 피리가 만들어져 음악이 정해지기도 했다. 황제는 또 황제내경(黃帝內經)이라는 의학서적을 쓰고 오늘날까지 음력으로 전해지는 역법을 만들고 농사를 짓도록 백성들을 가르쳤다.


(사진설명: 황제릉의 고건물)

문명의 시작은 신비한 색채를 띠기 마련이고 확실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으며 황제의 진실한 존재를 아는 사람도 없다. 이 세상에 그 누가 우주의 뿌리를 파고 그 누가 생명의 시작을 해석할수 있으랴.

신화속의 삼황오제(三皇五帝)은 어느 개개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머리위의 눈부신 빛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소망이고 중화문명 발단의 시작인 것이다.


(사진설명: 황제릉의 하마석)

헌원묘를 나와 꼬불꼬불하게 뻗은 아늑한 산길을 따라 교산에 오를수 있다. 능묘의 입구에 이르면 하마석이 엄연히 자리잡고 있다. 제왕이 와도 이 곳에 이르면 가마에서 내려 참배를 해야 했다.

이 세상에서는 조대가 바뀌고 제왕도 쉬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다. 한무제(漢武帝)가 선인에 소망을 비는 단을 축조했지만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으며 나라를 천년 만년 지키지도 못했다.


(사진설명: 황제의 무덤)

고목들 사이에는 또 아치형의 문인 옛스러운 패방(牌坊)이 자리잡고 있고 무덤의 앞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이 곳에 향을 피우고 황제 헌원의 무덤을 성묘하면 저도 모르게 조상에 대한 경건함 마음이 생겨난다.

하늘과 땅사이의 인간을 생각하고 조상이 남긴 것을 기리는 이 곳에서는 어느 제왕의 나라를 위해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문명의 전승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사진설명: 황제릉의 제사현장)

황제릉에서 펼쳐지는 제사현장을 보는 것도 좋다. 만명이 모여 고두삼배예를 올리고 용과 봉황의 깃발을 든 의장대와 예복을 차려입은 600명의 가수가 헌원송을 부른다.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것은 채색의 깃발이고 들리는 것은 북소리와 노래소리뿐이다. 인간조상에 대한 제사는 생명을 교류하는 의식이고 역사와 문명간의 대화이다.


(사진설명: 황제릉의 일각)

설명:

황제릉은 뒷쪽의 산위에 자리잡고 있다. 2km 길이의 뉘연한 산길을 걸으면 도착이 가능하다.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제사의식 공제(公祭)는 해마다 4월 5일 청명절에 거행됨으로 그 때가 되면 일반 관광객은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가을철 음력 9월 초아흐레의 중양절에 모든 사람의 동참이 가능한 민제(民祭)가 벌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밀려와 흥성흥성한데 관광객도 임의로 참배가 가능하다.


(사진설명: 황제릉의 일각)

위치: 섬서(陝西, Shanxi)성 황릉(黃陵, Huangling)현

교통: 서안(西安, Xi'an) 성동(城東) 버스 터미널에서 황릉행 버스를 이용, 3시간이면 도착이 가능하다. 황릉에 도착하면 주변에 현지의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들이 적지 않아서 음식을 맛 보고 황제릉에 오를수 있다.


출처: 중국국제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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