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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명13릉: 황제가 묻힌 청산

작성자
판다번역
작성일
2014-02-12 15:38
조회
2167

13.jpg


(사진설명: 아름다운 명13릉)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묘 10중 두번째인 명13릉(明十三陵)은 청나라 황제들이 묻힌 청산이다. 중국의 황제 능묘 중 가장 많은 황제가 묻힌 명 13릉의 열 셋 황제무덤에서 빼놓을수 없는 것은 장릉(長陵)과 정릉(定陵)의 지하궁전이다.

뒤에 산을 업고 앞으로 강물을 마주한 부지 80여 제곱킬로미터의 아늑한 벌판의 둘레에는 푸른 소나무가 울창한 청산이 둘러서고 그 속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흘러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명 13릉)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이 곳은 국립공원도 아니오 피서지도 아니며 사냥터는 더욱 아니다. 수백년전의 명(明)조때 이 곳은 경계가 삼엄하여 누구든지 범하는 자는 당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주변의 산에서 나무 한 그루 베거나 풀 한 포기를 뽑아도 잡혀서 형을 받았다.

이 곳이 바로 명조 13명 황제가 묻힌 무덤군락이다. 삼촌 명성조(明成祖)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죽어서도 명조 황제의 능묘에 묻히지 못한 명조 개국황제 주원장(朱元璋)의 장손을 제외한 명조 13명의 황제가 모두 이 곳에 묻혀 있다. 심지어 나라를 멸망시키고 자결한 명조 망국의 마지막 황제 숭정(崇禎)제도 명조를 이어받은 청(淸)조의 황실에 의해 이 곳에 묻혔다.


(사진설명: 명 13릉의 석 패방)

명 13릉의 구도와 급별은 주원장이 묻힌 남경(南京)의 명효릉(孝陵)을 이어받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효릉에 비해 구도가 더욱 치밀하다. 장릉을 중심으로 헌릉(獻陵)과 경릉(景陵), 유릉(裕陵), 무릉(茂陵), 태릉(泰陵), 강릉(康陵), 영릉(永陵), 소릉(昭陵), 정릉, 경릉(慶陵), 덕릉(德陵), 사릉(思陵) 등 12기의 무덤이 부채살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13기의 무덤은 각자 상대적으로 독립된 구도를 보유하는 동시에 하나의 큰 전체를 이루기도 한다. 이런 구도는 그 뒤에 청조에도 영향력을 행사해서 청조의 황제 능묘들인 서릉(西陵)이나 동릉(東陵)이 모두 이 구도를 본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조의 황제무덤은 지상건물이나 지하궁전의 규모에서 모두 명조의 무덤을 초과하지 못했다.


(사진설명: 명 13릉의 붉은 문)

붉은 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능묘에 들어섰음을 뜻한다. 과거에는 명13릉을 둘러싼 성이 있었는데 세월속에 어느새 다 무너지고 양쪽에 마주서 있는 하마석(下馬石)만 남아 있다.

과거에는 황제도 이 곳에 이르러서는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조상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나타냈다고 한다. 붉은 건물에는 영락(永樂)제의 일대기를 적은 커다란 비석에 세워져 있다.


(사진설명: 신도와 석인석수)

누각식으로 된 문의 네 둘레에는 용의 무늬를 새기고 상단에 사자를 조각한 돌기둥 화표(華表) 4기가 솟아 있다. 이 화표는 황궁인 자금성(紫禁城) 정문인 천안문(天安門)앞의 화표를 복제한 듯 하다.

그로부터 왕권의 위력을 알수 있다. 황제는 지상이나 지하에서 모두 최고의 지위를 누리려 했던 것이다. 그 뒤로는 곧게 뻗은 신도의 양쪽에 서로 마주보는 석인과 석수가 세워져 있다.


(사진설명: 가까이에서 본 석인석수)

사자나 말, 코끼리, 낙타, 기린 등 짐승들이 서거나 엎드려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그밖에 문신이나 무신들이 황제 생전처럼 다소곳이 서서 황제를 호위하는 듯 황제의 어명을 기다리는 듯 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명 13릉에서 규모가 가장 큰 무덤인 장릉에 명성조(明成祖)가 묻혀 있다. 그는 비록 주원장이 지정한 황제가 아니고 전쟁을 통해 조카의 손에서 왕권을 찬탈했지만 명조의 황제로서 많은 일을 했다.


(사진설명: 명 13릉 중 장릉)

명성조는 명조의 도읍을 남경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고 국토를 넓혔으며 경제건설을 강화한 동시에 백과사전격인 <영락대전(永樂大典)>을 편찬했을 뿐만 아니라 정화(鄭和)를 일곱번이나 서양으로 파견했다.

명성조가 묻힌 장릉은 풍수가 좋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능묘의 본전인 릉은전(祾恩殿)만 봐도 3층 높이의 한백옥 단위에 세워져 웅장함을 자랑한다. 방 아홉칸 너비에 방 다섯칸 깊이의 건물은 이중으로 된 날아갈듯한 지붕을 떠이고 있다.


(사진설명: 장릉의 보성과 명루)

릉은전 뒤에 바로 둥글에 쌓은 보성(寶城)이 둘러서고 그 속에는 키 높은 소나무가 울울창창하다. 보성임을 알리는 명루(明樓)에는 "명성조문황제지릉(明成祖文皇帝之陵)"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보성이 둘러선 그 땅 지하에 바로 황제가 묻혀 있다. 한 때 장릉을 발굴할 계획이었으나 우연하게 정릉의 지하궁전이 발견되어 장릉대신 정릉을 발굴하고 지하궁전에서 출토된 문화재들 중 일부를 장릉의 릉은전에 전시했다.


(사진설명: 장릉의 릉은전)

하지만 보존기술의 미흡으로 인해 출토된 문화재를 효과적으로 보존할수 없는 상황에서 당시의 주은래(周恩來) 총리가 단호하게 발굴을 중지시켜 그로부터 중국 황제의 능묘가 더는 발굴을 계속하지 못했다.

장릉을 나와 조금 가면 하얀 한백옥 석교가 보인다. 그로부터 정릉이 시작되는 것이다. 건물의 외벽과 지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글자 하나 없는 비석만 세워져 있다.


(사진설명: 정릉의 비석)

명 13릉에서는 장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능묘의 비석에 글자 한 자 없다. 그 원인에 대해서 오늘날까지 답을 찾지 못해 온갖 설이 난무한다. 능묘의 본전인 능은전과 능은문은 오간데 없고 높은 단만 남아 있다.

심지어 청조때 기존의 건물보다 작은 사이즈로 지었던 건물도 전란에 또 무너져 아쉬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정릉에서는 릉은전보다 더 귀중한 볼거리가 뒤에 있다.


(사진설명: 정릉의 지하궁전)

보성의 입구인 명루를 지나 보성에 올랐다가 숲속 오솔길을 따라 얼마 가지 않으면 어디론가 들아가는 입구가 나타난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30m 내려가면 사면에 커다란 돌을 부착한 넓은 지하궁전이 나타난다.

텅빈 지하궁전의 별채를 거쳐 좁은 복도를 지나 지하궁전의 안채에 이르면 황제와 두 황후의 보좌가 놓여있고 그 뒤에는 황제와 두 황후의 시신이 담긴 관과 온갖 보물을 담은 나무상자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설명: 정릉의 문화재 중 금관)

정릉의 지하궁전은 바로 수십미터의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전란과 도굴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1950년대 고고학자들이 온갖 노력끝에 수백년동안 잠자던 지하궁전의 문을 열었다.

400여년을 지하에서 잠을 잔 황제의 시신은 벌써 썩었지만 황제의 시신과 함께 발굴된 3천여점의 문화재는 당시 온 세상을 놀래웠다. 그 중 황금으로 만든 금관과 옥으로 만든 옥관만 해도 관객들의 눈을 부시게 하기에 족하다.


(사진설명: 소릉의 일각)

정릉의 지하궁전에서 출토된 문화재들은 정릉 보성앞의 별채와 장릉의 릉은전, 13릉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밖에 정릉에서 멀지 않은 소릉은 규모는 장릉이나 정릉에 비해 작고 지상 건물도 전란에 파괴되고 터만 남았다.

1980년대에 명조 황제무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소릉의 릉은문과 릉은전을 다시 짓고 건물내부에 명조 제사때의 모양을 복원했다. 따라서 소릉에서는 명조의 제사현장을 생생하게 볼수 있다.


(사진설명: 정릉 문화재)

설명:

정릉의 입구에 위치한 13릉 박물관에는 명조 황제의 자료와 명조 황제능묘의 개요, 명 13릉의 구도, 정릉의 문화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정릉 입장권을 가지고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성수기가 되면 정릉의 지하궁전은 관객들로 붐빈다. 정릉의 지하궁전이나 장릉의 릉은전, 박물관내부에서 촬영이 허용된다. 단, 관객이 적은 때를 선택하면 더 쉽게 기념촬영을 할수 있다.


(사진설명: 명 13릉 일각)

명 13릉에서는 신도와 장릉, 정릉, 소릉 외에 다른 10기의 황제무덤은 모두 개관하지 않고 있다. 관심이 있을 경우에는 능묘의 밖에서 멀리 바라볼수만 있다.

그밖에 수확의 계절이 되면 능묘의 주변에 과수밭이 많아서 철따라 다양한 과일을 직접 따서 맛 볼수 있다. 과수원에 들어가서 자신이 직접 과일을 딸수 있는 반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사진설명: 명 13릉 중 보성일각)

위치: 베이징(北京, Beijing)시 창평(昌平, Changping)구

교통: 베이징의 도심 곳곳에 정릉행 버스가 있고 명 13릉과 만리장성으로 1일코스의 관관버스도 많다. 신도를 걷고 장릉까지 보려면 덕승문(德勝門)에서 창평행 버스를 이용한다.


출처: 중국국제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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