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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당대제릉: 산 무덤의 당왕릉

작성자
판다번역
작성일
2014-02-12 15:48
조회
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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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당대제릉)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묘 10중 여섯번째인 당대제릉(唐代帝陵)은 산을 무덤으로 하여 웅장한 기세를 자랑한다. 고대 중국의 왕릉 중 최고를 자랑하는 당대제릉에서는 석각예술이 극치이기도 하다.

과거에 벌써 국제 대도시였던 장안(長安), 오늘날의 서안(西安)에는 문화명소가 아주 많다. 그 중 비림(碑林)박물관 최고의 보물은 "소릉사준(昭陵四駿)"이라는 이름의 조각물이다.


(사진설명: 소릉사준 석각물)

이 조각물은 심플한 무늬의 부조수법으로 4종의 우질 전마를 조각해 사람들에게 어젯날 피비린 전장을 느끼게 한다. 이 전마들은 모두 당조의 개국황제 태종(太宗)제가 아끼던 말들이다.

이 전마는 원래 당시의 유명화가가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조각해서 태종제의 무덤옆에 세워졌었다. 그때는 모두 여섯마리였으나 오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은 것이란 비림박물관에 남은 석각물 4점뿐이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당대제릉)

무덤을 지키던 전마는 사라졌지만 태종제가 묻힌 소릉(昭陵)이 위치한 구종산(九嵕山)은 드팀없이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산을 능묘로 한 것은 당조때에 처음 시도한 것이 아니지만 그때부터 당조의 황제들은 모두 산을 능묘로 하여 돈도 절약하고 도굴도 방지했다.

구종산을 중심으로 한 소릉은 부지가 200여제곱미터에 달한다. 구종산 주변에 흙을 쌓아 봉분을 조성한 무덤 180여기가 산재해 있는데 이런 무덤의 주인은 모두 당시 유명한 문신과 무신들이다.


(사진설명: 당대제릉의 일각)

그들은 생전에 그랬듯이 죽어서도 황제의 주변에서 황제를 옹위하고 있는 것이다. 신하들의 무덤은 그들의 공덕에 근거해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운 무장의 무덤은 생전에 그가 싸운 적 있던 산의 모양을 본땄다.

태종제는 당왕조를 번성으로 이끈 황제이다. 태종에 이어 나라를 이어받은 고종(高宗)제의 지혜가 아버지 태종제에 미치지는 못하고 나약하기 그지없어서 권력이 황후인 무측천에게 장악되었지만 사회는 여전히 태종때의 모양을 유지했다.


(사진설명: 고종제와 측천무후의 합장묘 건릉)

고종제가 죽은 후 아들인 중종(中宗)제가 뒤를 이었지만 측천무후는 아예 아들대신 자신이 스스로 황제로 즉위해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로 되었다. 따라서 고종제와 측천무후의 합장묘는 유일하게 두 황제가 묻힌 능묘이기도 하다.

건릉(乾陵)은 산을 무덤으로 한 소릉의 방법을 이어받은 동시에 더욱 발전시켰다. 동쪽과 서쪽에 마주보는 두 산봉이 마치 자연이 만든 묘총인 듯 하고 북쪽에 솟은 높은 산봉과 어울려 장관이다.


(사진설명: 무덤옆의 석각물)

사서에 의하면 능묘에는 두 겹의 성이 있었고 건물들도 아주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성과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넓은 길 양옆에 석각물들만 남아 두 주인을 지키며 당조의 위풍을 보여준다.

무덤의 남쪽에는 고종제의 장례식에 참가한 소수민족 두령과 외국인 인듯한 인물상 61점이 세워져 있다. 비록 석물의 머리부분은 모두 없어졌지만 옷차림에서 당조의 대외교류의 번성함을 읽을수 있다.


(사진설명: 건릉앞의 비석)

고종제를 위해 세운 <술성기비(述聖記碑)>에는 고종제의 공덕을 적었지만 그 비석과 마주 보는 무측천의 비석에는 글자 한 자 없어 끝없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무측천의 공덕이 하도 커서 다 적을수 없어 적지 않았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아들의 왕권을 찬탈했기 때문에 부끄러워 글로 적지 않았다고 하기도 하며 또 혹은 공과 죄를 후세사람들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라는 의미라는 설도 있지만 정답은 누구도 모른다.


(사진설명: 건릉의 일각)

량산(梁山)의 정상속에 조성된 건릉의 지하궁전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열려본적 없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동안 이 능묘를 도굴하고자 하는 세력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여러가지 원인으로 도굴하지 못했다.

발굴기술이 발달된 오늘날에 와서 발굴의 목소리가 나오기는 하지만 정부가 발굴을 금지하고 있어서 지하궁전의 크기가 얼마고 어떤 보물들이 묻혀 있는지는 그 답안을 언제 찾을지 묘연하다.


(사진설명: 순장묘의 벽화)

건릉의 순장묘를 발굴하고 그 규모나 그 속에 묻힌 문화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건릉을 볼수는 있다. 고종제와 측천무후의 아들과 딸의 순장묘를 보면 규모가 당연히 황제에 비할수 없지만 아주 웅장하다.

특히 순장묘실 내벽의 벽화가 숫자나 제재, 기법이 전에없이 대단하다. 이런 순장묘들은 도굴을 면하지 못했음에도 정교하고 생동한 흙으로 빚은 인형과 금속기물들이 출토되어 감탄을 자아낸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당대제릉)

300년을 이어온 당왕조는 고대 중국의 번성일로를 달린 왕조였다. 당조의 21명 황제 중 소종(昭宗)제와 원종(袁宗)제를 제외한 황제가 모두 이 곳 관중십팔릉(關中十八陵)에 묻혀 있다.

동서향으로 장장 180km나 뻗어 있는 관중18릉은 서한(西漢)의 왕릉과 일직선상에 위치해 있지만 규모는 더 웅장하고 장관이다. 그야말로 전후무후한 제왕의 능묘인 것이다.


(사진설명: 당대 제릉의 일각)

설명:

당왕조의 황제무덤은 각자 분산되어 일일이 다 보기기 용이하지 않다. 또한 18기의 무덤을 다 볼 필요도 없다. 따라서 소릉과 건릉, 그리고 그 주변에 딸린 순장묘만 봐도 당조 왕릉의 모양을 읽을수 있다.

당재제릉에서는 지상에 남아 있는 석물과 발굴한 순장묘를 빼놓지 말아야 한다. 순장묘에 세워진 소릉과 건릉박물관도 당조 왕릉의 역사와 구도를 이해할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사진설명: 당대 제릉의 야경)

위치: 섬서(陝西, Shanxi)성 건(乾, Qian)현 등

교통: 섬서성 소재지 서안(西安, Xi'an)에서 예천(禮泉, Liquan)행 버스를 타고 북둔(北屯, Beitun)에 이른 다음 소릉행 버스를 바꾸어 탄다. 건릉은 서안역에서 직행 관광버스를 이용한다.

계절: 봄과 가을


출처: 중국국제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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