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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사진설명: 동강 두부찜) 스토리: 동강의 두부찜 동강양두부(東江釀豆腐)는 광동(廣東)성 동강의 객가(客家)인들이 만든 요리이다. 객가인이란 원래 황하(黃河)강이 흐르는 중국의 중부에 살다가 남쪽으로 이주해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백여년전의 중화민국(中華民國)때에 광주(廣州)에 진기주가(陳記酒家)라는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주인인 진씨는 젊었을때 보디가드였다. 그가 보디가드로 있을 때 일이었다. 어느 한 번 진씨는 동강일대의 산을 지나다가 산적의 손에서 한 사람을 구했다. 그 사람의 아내는 남편의 생명을 구해준 진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 상을 차려 대접했다. 객가인인 그들 내외는 온갖 산짐승으로 음식을 만들었는데 진씨에게는 그 중에서 두부요리가 가장 최고였다. 무슨 두부가 이토록 맛있냐는 진씨의 물음에 주인여자는 이 요리는 객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돼지고기 살코기와 생선, 새우, 버섯, 절임생선 등으로 소를 만들어 두부속에 넣어 먼저 약한 불에 노랗게 구운 다음 뚝배기에 보골보골 끓였다고 조리법까지 소상하게 설명했다. 사실 북방에 살때 물만두를 즐겨 먹던 객가인들은 밀가루가 거의 나지 않는 남방에 정착해 살면서도 고향인 북방에서 먹던 물만두가 생각나서 두부로 밀가루를 대신해서 이 두부찜을 개발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온 진씨는 산에서 들은 조리법을 알려주면서 집사람에게 그대로 만들라고 시켰다. 과연 산에서 먹은 두부의 맛이 났고 그 두부를 먹은 이웃들도 엄지를 내들었다. 하여 진씨는 아예 보디가드를 그만두고 레스토랑을 차렸다. 그는 양두부보(釀豆腐煲)라는 스페셜 메뉴를 내걸고 두부찜을 만들기 시작했다. 빚을 양(釀)은 객가인들에게 있어서 소를 의미한다. 그 뒤로 진씨가 보디가드로 있을때 사귄 친구들이 항상 진씨네 레스토랑인 진기주가에...
광둥요리 판다번역 2013.08.26 추천 0 조회 1721
(사진설명: 동강의 통닭) 스토리: 동강의 통닭절임 동강염국계(東江鹽焗鷄)는 광동(廣東)성 동강일대에서 만들어진 정통요리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300여년전 동강의 바닷가에는 염전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매일 거의 모든 시간을 소금과 씨름해야 했고 그 때문에 여유롭게 요리를 만들어서 끼니를 챙겨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런 생활속에서 염전 근로자들은 시간이 있을때 닭을 삶아서 소금으로 절여두었다. 소금으로 절인 닭은 오랜 시간 두어도 변질하지 않아서 끼니때가 되면 편리하게 먹거나 집에 손님이 오면 그 때 손쉽게 닭을 꺼내서 손님을 대접할수 있었다. 그리고 소금에 절인 닭은 맛이 변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달콤하고 고소한 맛을 가지게 되어 염전에서 만들어진 통닭절임은 점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그 뒤에 동강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현지에서는 단순하게 소금에 절인 통닭이 아니라 소금을 이용한 새로운 조리법을 개발했는데 동강의 염전에서 기원한 음식이라 동강염국계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요리체계: 동강의 통닭절임 동강염국계(東江鹽焗鷄)는 광동(廣東, Guangdong)요리 중 객가(客家)계에 속한다. 일명 월채(粤菜)로 불리우는 광동요리는 독특한 모양과 운치로 승부하며 특히 귀중한 식재를 잘 사용한다. 자연여건이 좋고 물산이 풍부한 지역에 위치하고 바다를 통해 해외의 조리법을 받아들인 광동요리는 식재가 풍부하고 조리법이 다양하며 음식의 맛은 담백하면서도 싱싱하고 모양은 풍만하면서도 색채가 풍부하다. 광동요리 중 동강(東江)계로도 불리우는 객가계는 혜주(惠州, Huizhou)지역의 요리로 황하강 유역에서 남쪽으로 이주한 객가인들이 만든 음식이다. 객가계의 요리는 야채보다 육류를 많이 사용하고 맛은 짙고 약간 짜다. (사진설명: 동강의 통닭) 식재: 암탉 1마리(1500그람 정도) 양념: 생강과 파 10그람씩,...
광둥요리 판다번역 2013.08.26 추천 1 조회 1548
(사진설명: 연근과 족발찌개) 스토리: 연근과 족발찌개 연우민저제(蓮藕焖猪蹄)는 편식하는 부자를 위해 만든 음식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옛날 광동(廣東)의 한 시골에 음식에 아주 까다로운 편식하는 부자가 있었다. 그 시골부자는 특히 족발이니 곱창이니 거죽이니 하는 것들은 불결하다고 생각해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입에 올리지도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끼니마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라고 요리사에게 성화였다. 그 바람에 한 요리사가 자신의 요리를 다 만들면 그 집에서 더는 일하지 못하고 좆켜나 항상 새 요리사를 바꾸대야 했다. 때는 한 새로운 요리사가 이 집에 온 다음의 일이다. 시골부자집에 오자 그 요리사는 주인의 식성을 알아보고 주인이 먹지 않는 식재는 피하면서 음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1개월도 못 돼서 그 요리사는 자신이 아는 음식을 다 만들어 더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요리사가 머리를 앓고 있는데 채소를 사들이던 아줌마가 주인이 아직 연근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 정보에 새로운 메뉴를 생각해낸 요리사는 연근과 족발을 가지고 뭉근히 끓여 찌개를 만들었다. 주인은 맛을 보니 별미여서 요리사의 재능에 엄지를 내들었다. 하지만 주인이 싫어하는 식재로 음식을 만든 요리사는 변을 당할가봐 편지 한 장만 남긴채 벌써 스스로 시골부자집을 떠난 뒤였다. 편지를 본 시골부자는 아직도 입안에 가득한 연근과 족발찌개 고소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못 잊어 그 요리사를 찾도록 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그 뒤로 시골부자는 편식하는 식습관을 고치고 전에 먹어본적 없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으며 특히 연근과 족발찌개는 거의 매일 찾았다. 그로부터 연근...
광둥요리 판다번역 2013.08.26 추천 0 조회 1508
(사진설명: 황포육군사관학교 옛터) 스토리: 사관학교의 계란볶음 황포초단(黃埔炒蛋)은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맛이 좋은 광주(廣州)의 정통요리이다. 전한데 의하면 이 요리는 광주의 외곽지에 위치한 황포(黃埔)부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황포사관학교라는 이름의 중국 최초의 사관학교도 바로 이 인근에 위치해 있다. 이 계란볶음이 처음부터 사관학교와 연관된 것은 아니다. 이 나룻터에 자리를 잡은 어선 한 척이 있었는데 어느날 친구가 찾아왔다. 연락도 없이 찾아든 친구를 위해 식사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준비할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인은 생각하다가 어선에서 기르는 닭이 낳은 계란으로 볶음을 만들었다. 하지만 계란볶음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파도 없어서 주인은 그냥 기름을 두고 계란만 볶았다. 그런데 친구가 맛을 보니 전에 없이 부드럽고 맛 또한 고소하기 그지없어 엄지를 내들었다. 그 뒤에 조리법을 수차 개진해 계란전과 일반 계란볶음사이의 맛을 유지한 이런 계란볶음이 널리 전파되게 되었고 황포부두에서 처음 만들어진 음식이라 황포계란볶음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후문에 의하면 장개석(蔣介石)이 황포사관학교 총장을 할때 황포계란볶음을 아주 즐겨 그로부터 그는 어디로 가든 이 계란볶음을 먹었다고 한다. 심지어 치통이 심해 다른 음식은 전혀 먹지 못하면서도 황포계란볶음만은 찾아 황포계란볶음은 그가 거의 매일 먹는 필수메뉴로 되었다. 그로 인해 황포계란볶음은 사관학교의 계란볶음으로도 인정되기 시작했다. 요리체계: 사관학교의 계란볶음 황포초단(黃埔炒蛋)은 광동(廣東, Guangdong)요리 중 광부(廣府)계에 속한다. 일명 월채(粤菜)로 불리우는 광동요리는 독특한 모양과 운치로 승부하며 특히 귀중한 식재를 잘 사용한다. 자연여건이 좋고 물산이 풍부한 지역에 위치하고 바다를 통해 해외의 조리법을 받아들인 광동요리는 식재가 풍부하고...
광둥요리 판다번역 2013.08.19 추천 0 조회 1758
(사진설명: 새끼돼지 바베큐) 스토리: 우연한 새끼돼지 바베큐 고유저(烤乳猪)는 광주(廣州) 최고의 정통음식으로 기원전에 벌써 여덟가지 보배라는 의미로 광주 "팔진(八珍)"에 입선되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요리에는 당연히 이야기가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전한데 의하면 머나먼 상고시대에 멧돼지잡이에 능한 한 사냥꾼이 있었는데 그에게 화제(火帝)라는 아들이 있었다. 사냥꾼 내외는 매일 산에 올라 멧돼지를 잡았고 화제는 입에서 잡아온 새끼 멧돼지를 사육했다. 그러던 어느날 화제는 우연하게 부싯돌을 발견해 가지고 놀다가 짚을 지붕으로 한 돼지우리에 불이 붙게 되었다. 그래도 화제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활활 타오르는 불을 구경했다. 불에 짚과 나무가 타는 소리가 탁탁 들려왔고 그 중에는 멧돼지의 아츠러운 소리까지 겹쳤다. 불이 한 동안 타올라 탈것이 다 타고 불길이 약해지자 폐허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화제의 부모가 산에서 돌아와 보니 돼지우리가 다 타서 재만 남고 기르던 새끼돼지도 다 불에 타죽어 있었다. 화제를 불러 영문을 물으려는데 화제가 불에 타서 기름기가 흐르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새끼돼지 바베큐를 부모에게 올렸다. 그 맛을 본 화제의 부친은 아들을 훈계하지 않고 돼지고기의 새로운 조리법을 발견했다고 오히려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인류는 육류를 불에 굽는 조리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요리체계: 우연한 새끼돼지 바베큐 고유저(烤乳猪)는 광동(廣東, Guangdong)요리 중 광부(廣府)계에 속한다. 일명 월채(粤菜)로 불리우는 광동요리는 독특한 모양과 운치로 승부하며 특히 귀중한 식재를 잘 사용한다. 자연여건이 좋고 물산이 풍부한 지역에 위치하고 바다를 통해 해외의 조리법을 받아들인 광동요리는 식재가 풍부하고 조리법이 다양하며...
광둥요리 판다번역 2013.08.19 추천 0 조회 2531
(사진설명: 족발) 스토리: 나뭇꾼이 만든 족발 백운저수(白雲猪手)에는 이런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옛날 광동(廣東)의 백운산(白雲山) 구룡천(九龍泉)부근에 오래된 절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주지스님이 탁발하러 산을 내려가고 절에는 어린 동자스님 한 명만 남아 있었다. 오래동안 기름기를 접하지 못한 어린 스님은 주지스님이 절을 비운 사이 육붙이를 맛보려고 절밖에서 족발을 가져왔다. 어디서 오지단지를 찾은 어린 스님은 절과 약간 떨어진 구룡천에서 흘러나오는 시냇물가에 대충 불을 지피고 그 위에 족발을 넣은 단지를 얹었다. 그런데 족발이 거의 익어갈 무렵 주지스님이 돌아왔다. 어린 스님은 주지스님이 족발을 보고 계율을 지키지 않았다고 벌을 내릴가봐 무서워 급급히 단지에서 족발을 꺼내서 바로 곁에 있는 시냇물에 던저버렸다. 이튿날 산아래의 나뭇꾼이 나무를 하고자 산에 올라 절을 에둘러 흐르는 그 시냇물가에 이르렀다. 뜻밖에 시냇물속에서 족발을 발견한 나뭇꾼은 집에 돌아오자 바람으로 설탕과 소금, 식초로 양념을 만들어서 족발을 먹었더니 달콤새콤한 맛이 별미였다. 그 뒤 나뭇꾼은 여러 번 족발을 만들면서 조리법을 익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족발은 명요리로 부상했다. 그 족발이 백운산 기슭에서 기원했다고 해서 사람들은 족발에 백운저수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요리체계: 나뭇꾼이 만든 족발 백운저수(白雲猪手)는 광동(廣東, Guangdong)요리 중 광부(廣府)계에 속한다. 일명 월채(粤菜)로 불리우는 광동요리는 독특한 모양과 운치로 승부하며 특히 귀중한 식재를 잘 사용한다. 자연여건이 좋고 물산이 풍부한 지역에 위치하고 바다를 통해 해외의 조리법을 받아들인 광동요리는 식재가 풍부하고 조리법이 다양하며 음식의 맛은 담백하면서도 싱싱하고 모양은...
광둥요리 판다번역 2013.08.12 추천 1 조회 1654
(사진설명: 용과 호랑이 쟁투 요리) 스토리: 용과 호랑이 쟁투 용호투(龍虎鬪)는 사실 뱀고기와 고양이고기나 너구리고기, 닭고기를 가지고 만든 모듬찜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이 요리를 개발한 사람은 청(淸)나라때 경성에서 관리를 지낸 광동(廣東)출신의 강공전(江孔殿)이라고 한다. 요리에 애착을 가진 그는 중국 전역을 다니면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았고 음식 조리법에도 깊은 조예를 가졌다. 그가 70생신을 지내게 된 때의 이야기이다. 친구들이 모여와 칠십생신에 누구도 먹어본적 없는 음식을 만들라고 그에게 초청했다. 어떤 요리를 만들면 이 세상 최초의 요리가 될까 고민하던 그는 고양이와 장에 갇힌 뱀이 서로 싸우는 것을 발견했다. 고양이는 장속에 있는 뱀을 향해 앞발을 들고 달려들었고 뱀은 당장이라도 고양이에게 달려들듯 대가리를 건듯 들고 긴 혀를 내밀며 맞섰다. 그 순간 강공전의 머리속에 새로운 요리가 떠올랐다. 그는 뱀을 용에 비유하고 고양이를 호랑이에 비유하여 두 가지 식재로 요리를 만들어 용과 호랑이의 쟁투라는 의미로 용호투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작심했다. 드디어 생일날이 되자 강공전은 용호투를 만들어 생일상에 올렸다. 전혀 먹어본적 없는 음식을 맛 본 친지들은 모두 엄지를 내들었다. 그리고는 고양이 고기의 맛이 뱀고기에 비해 약함으로 닭고기를 더 넣는 것이 어떻냐 하는 제안도 했다. 닭고기를 추가하자 맛이 더욱 풍부해져 용호투는 일약 명요리로 부상해 널리 전파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요리에 세가지 식재가 들어갔다고 해서 용호투라는 이름외에 뱀과 고양이, 닭고기의 모듬이라는 의미로 용호계대회(龍虎鷄大烩)라 부르기도 했다. 요리체계: 용과 호랑이 쟁투 용호투(龍虎鬪)는 광동(廣東, Guangdong)요리 중 광부(廣府)계에 속한다. 일명 월채(粤菜)로...
광둥요리 판다번역 2013.08.12 추천 0 조회 2403
(사진설명: 해남요리 중 문창닭) 스토리: 두가지 뜻의 닭요리 광주문창계(廣州文昌鷄)는 광동요리의 여덟가지 닭요리 중 한 가지이다. 사실 문창닭이라 이름한 음식은 중국 남부의 섬인 해남(海南)도의 정통요리이다. 그런데 광주 문창로(文昌路) 어구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최초로 해남도의 문창현에서 나는 품질좋은 닭을 들여다가 이 요리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 두가지 의미를 담아 광주문창닭이라 이름했다. 전하는데 의하면 청(淸)나라때 해남도 출신의 한 관리가 대륙 양자강부근의 한 곳에서 벼슬을 지내다가 어느해 설에 고향으로 금의환향했다. 현지의 관리를 만나고 친척들과 상봉을 즐기면서 집을 떠날때가 되어서야 해남도 문창현에 있는 친구를 만나지 못한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서야 그는 바삐 바삐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문창현으로 갔다. 문창현의 그 친구는 벼슬을 지내는 친구가 자신을 찾아오자 아주 반가워하며 문창현의 정통음식인 문창닭을 식탁에 올렸고 돌아갈때 몇 마리를 선물로 주면서 대륙에 가서 선물하라고 했다. 해남도 출신의 관리는 친구가 준 문창닭을 가지고 대륙에 돌아와 선물했고 그로부터 섬나라의 닭요리인 문창닭이 널리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광주요리에도 문창닭이라는 음식이 위치를 잡게 되었다. 광주 문창닭은 해남 문창닭의 식재와 조리법을 받아들인 동시에 닭고기외에 소세지와 닭의 간을 추가하고 조리법도 더 보강해 다양한 맛과 풍부한 영양분을 가진다. 요리체계: 두가지 뜻의 닭요리 광주문창계(廣州文昌鷄)는 광동(廣東, Guangdong)요리 중 광부(廣府)계에 속한다. 일명 월채(粤菜)로 불리우는 광동요리는 독특한 모양과 운치로 승부하며 특히 귀중한 식재를 잘 사용한다. 자연여건이 좋고 물산이 풍부한 지역에 위치하고 바다를 통해 해외의 조리법을 받아들인 광동요리는 식재가 풍부하고 조리법이 다양하며 음식의...
광둥요리 판다번역 2013.08.12 추천 0 조회 1819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팽조) 스토리: 양고기와 생선찜 양방장어(羊方藏魚)는 팽성(彭城)으로 불리우기도 하는 서주(徐州, Xuzhou)에서는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요리로 43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서주는 대팽국(大彭國) 임금 팽조(彭祖)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팽성으로도 불리운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팽조는 고대 중국의 현인으로 요리에 능하고 800살까지 장수한 중국 요리계와 양생계의 비조이다. 전한데 의하면 팽조에게는 아들이 아주 많았는데 팽조는 그 중에서 막내 아들 석정(夕丁)을 가장 사랑했다고 한다. 석정은 강물에 들어가 물고기 잡기를 아주 좋아했는데 팽조가 그의 안전을 우려해 강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어느날 팽조가 집을 비운 사이 석정은 몰래 강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왔다.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집에 돌아오니 그 때도 팽조는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양고기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석정은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어머니에게 주면서 생선을 양고기속에 감추어 끓여 아버지가 못 보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저녁이 되어 팽조가 돌아와 양고기를 먹어보니 예전보다 훨씬 맛이 더 좋아졌다. 양고기와 물고기를 함께 조리함으로써 양고기의 노린내와 물고기의 비린내가 모두 제거되고 맛이 더욱 싱싱해졌던 것이다. 그 이유를 묻자 어머니와 석정이 이실직고했고 팽조는 엄지손가락을 내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 뒤로는 석정이 강에 나가 물고기를 잡도록 허락까지 했다. 그 뒤에 사람들은 석정의 방법을 따라 양고기속에 생선을 숨겨 요리를 만들었으며 요리 이름도 네모난 양고기속에 생선을 감추었다는 의미로 양방장어라고 했다. 그로부터 새로운 한자로 양 양(羊)자와 물고기 어(魚)자를 합쳐 고울 선(鮮)자가 만들어졌고 중국어에서 고울 선자는 음식의...
장쑤요리 판다번역 2013.08.12 추천 0 조회 1698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소동파) 스토리: 오고가는 정 돈육찜 동파회증육(東坡回贈肉)은 천여년전 송(宋)나라때 서예가이고 시인이며 화가이고 관리로도 지낸 소동파(蘇東坡)가 서주(徐州, Xuzhou)에서 홍수를 다스릴때 만들어진 음식이다. 송나라 신종(神宗)년간 1077년에 소동파가 서주의 지주(知州)로 부임했는데 황하(黃河)강이 범람해 서주가 홍수에 포위되게 되었다. 소동파는 서주의 관민을 이끌고 1개월동안 노력해 끝내 홍수의 위험을 제거했다. 홍수가 물러간 다음 소동파는 다음해에도 황하강의 언덕이 무너져 홍수가 질것을 우려해 황하강의 방둑을 든든히 하고 서주의 외곽에 홍수방지 언제를 새로 쌓기도 했다. 현지인들은 조석으로 서민들과 함께 하고 동고동락하는 이 관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돼지와 양을 잡고 술을 마련해서는 북과 징을 울리며 소동파가 있는 관아로 보내왔다. 청렴결백한 관리 소동파는 백성들이 보내온 음식을 거절하다 못해 끝내 돌려주지 못하고는 받아서 관아의 요리사에게 시켜 돼지고기와 양고기 등으로 요리을 만들어 홍수방지에 나섰던 사람들에게 재선물했다. 관아의 요리사는 고기를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끓는 물에 데쳐낸 다음 다시 깨끗하게 씻어서 오지냄비에 넣고 온갖 양념과 육수를 두고 먼저 센 불에 끓이다가 불을 약하게 하고 뭉근히 끓였다. 사람들이 소동파가 선물한 요리를 먹어보니 살코기는 고소하고 비게는 부드러운데 전혀 느끼하지도 않아 별미였다. 그로부터 그 요리는 소동파가 돌려준 선물이라는 의미로 동파회증육으로 불리우면서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요리체계: 오고가는 정 돈육찜 동파회증육(東坡回贈肉)은 강소(江蘇, Jiangsu)요리 중 서해(徐海)계에 속한다. 중국 최장의 하천인 장강(長江)을 끼고 있는 강소에는 식재가 아주 풍부하고 다양하다. 소채(蘇菜)로 불리우는 중국 8대 요리 강소요리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짙은 맛속에 담백한...
장쑤요리 판다번역 2013.08.01 추천 0 조회 2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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