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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사진설명: 소박한 야채떡) 각 지역들마다 그 지역만의 특미를 자랑하는데 산동(山東, Shandong) 조장(棗庄, Zaozhuang)의 특미는 소박한 야채떡이다. 조장의 거리들에서는 길게 줄을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늘 볼수 있는데 그들이 바로 야채떡-채전병(菜煎餠, Caijianbing)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전병은 옛날부터 산동의 주요 식사였다. 먹거리가 풍부하지 못하던 시절에 산동사람들은 얇게 밀어서 기름에 구운 밀가루 전병에 파를 둘둘 감아서 된장에 뚝뚝 찍어 생계를 유지했다. 그 때문에 파전병은 산동의 명요리로 부상했다. 그 뒤에 생활이 좋아지자 산동인들은 떡과 떡 사이에 파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야채와 계란, 당면, 두부 등을 추가하고 후추, 기름, 소금 등 온갖 조미료를 넣어 약한 불에 구은 야채떡인 채전병을 만들었다. 이런 야채떡을 만드는데는 제법 깊은 학문이 있다. 먼저 밀을 가루내서 풀처럼 묽게 풀어 기름에 얇게 굽는다. 그리고는 당근, 호박, 부추, 배추 등 좋아하는 모든 야채를 짓찧어 거기에 후추, 소금, 고추 등 조미료를 넣어 소를 만든다. 이미 밀어놓은 떡위에 야채소를 듬뿍 올려놓고 그 위에 다시 떡을 덮어 번져가면서 약한 불에 은근히 익힌다. 얼핏 보기에 투박한 이 야채떡은 일반 서민들이 가장 즐기는 식사이고 상큼한 매운 맛과 바삭바삭한 떡, 영양분이 풍부한 소로 호방하면서도 무게를 잃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정열을 잃지 않는 산동인들을 방불케 해서 외지인들도 즐겨 찾는 요리이다. 조장의 크고 작은 거리들에는 야채떡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늘 볼수 있다. 막일을 하는 노동자나 우아한 오피스걸이나 신사복을 차려입은 사장이나 할...
산둥요리 판다번역 2011.03.18 추천 0 조회 1481
(사진설명: 꽃떡) 사천요리(川菜, Chuancai)는 백가지 요리면 백가지 맛을 내는 중국의 명 요리인데 많은 사람들은 사천요리 하면 매운 요리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사천요리의 키워드는 매운 맛이 아니라 요리속의 문화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사천요리의 고향인 사천(四川, Sichuan)성 소재지 성도(成都, Chengdu)에는 모양이 이쁘고 색갈이 아름다운, 매운 맛이란 조금도 없는 꽃떡이 인기이다. 봄날, 성도의 야시장은 빼놓을수 없는 볼거리, 먹거리이다. 부드러운 불빛과 조용한 성도의 야시장은 다른 곳의 야시장처럼 북적거리지 않고 그렇다고 적막하지도 않다. 유유히 거리를 거니는 인파와 찻집 창가에 앉아 몸과 마음을 기댄 연인들, 맛 있는 요리를 맛 보면서 술이나 차 한 잔 하면서 인생을 논하는…성도는 말 그대로 레저의 도시이다. 이런 성도 특미의 하나가 꽃떡이다. 성도에서 언제부터 꽃떡을 만들었는지는 사서의 기록을 찾지 못했지만 이런 일화는 지금까지 전해진다. 성도가 고향인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악기를 다룰때 현악기위에 꽃잎을 두어 줄을 튕길때마다 꽃 향기가 멀리 나가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사마상여가 탁왕손(卓王孫)의 만찬에 초청돼 음악을 연주했고 그의 음악과 향기에 취한 재녀(才女) 탁문군(卓文君)이 사마상여를 사랑해 둘이서 야반도주를 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성도에 이르러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작은 식당을 차리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낮에는 손님을 치고 밤이면 여전히 꽃잎과 함께 악기 줄을 튕기며 즐겼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면서 그들은 꽃잎이 아까워 내일 다시 쓰려고 물에 담그어 두었다. 이튿날 아침 탁문군이 밀가루를 반죽하는데 어디선가 꽃향기가 풍겨 보니 꽃을 담그어둔 물속에서 향기가 풍겨왔다. 문군은...
쓰촨요리 판다번역 2011.03.18 추천 0 조회 1568
(사진설명: 연근과 건두부를 가지고 만든 두유권) 연근과 건두부를 가지고 만든 요리인 두유우권(豆油藕卷, Douyoudoujuan)은 일명 두유권(豆油卷, Douyoujuan)이라고도 한다. 호북(湖北, Hubei) 효감(孝感, Xiaogan)에는 연근이 많이 나고 현지인들은 연근을 가지고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든다. 특히 명절이 되면 거의 모든 집들에서 연근요리를 만드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요리가 연근과 건두부를 가지고 만든 전통 요리 두유권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송태조(宋太祖, Songtaizu)가 어려서 집이 가난해 걸식하면서 이곳에 이르러 운수업으로 생계를 연명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해 겨울 효감 서호촌(西湖村)에 이르러 연근을 마차에 가득 실었는데 때는 황혼이 진 뒤라 춥고 배도 고팠다. 송태조는 호수옆의 한 주막집에 들어갔다. 술로 몸을 덥히고 요리로 배를 불리려 했지만 때는 전란이라 술판매 금지령때문에 술도 없고 심지어 요리도 없었다. 주방에는 먹다남은 건두부와 파, 생강밖에 없었다. 총명한 주방장은 손님이 연근을 조금 주면 그 연뿌리를 가지고 요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송태조의 허락하에 주방장은 연근을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긴다음 실처럼 가늘게 썰어 소금에 재웠다가 파, 생강, 버섯 등 야채를 넣어 건두부에 싸서 차바퀴모양으로 만들었다. 그 것을 기름에 튀겨 식탁에 올렸고 그 요리와 함께 자신이 몰래 빚은 술까지 내와서 송태조는 자신이 원하던 두 가지, 술과 요리를 다 맛 보게 되었다. 고마운 마음을 이기지 못한 송태조는 "두유우권요리에 맛 좋은 술 한잔 곁들이니 빈 배가 따스해지며 모든 근심이 어디론가 사라졌네"라는 시를 남겼다. 그로부터 10여년후 960년에 송태조가 송조의 개국황제로 등극했다. 황제로 된 후 송태조는...
후베이요리 판다번역 2011.03.18 추천 0 조회 1712
(사진설명: 한림닭 요리) "한림계(翰林鷄, Hanlinji)"라고 하는 닭요리는 호북(湖北, Hubei)성 안육(安陸, Anlu)시 태백(太白, Taibai)주루(酒樓)의 이태백 요리 중 하나이다. 이백(李白, Libai)이 한림(翰林)직에 머문적이 있다고 해서 이름지은 닭요리이다. 통닭에 온갖 조미료를 묻혀 통채로 70%정도 익힌 다음 뼈를 잘라내고 접시에 통닭모양으로 이쁘게 담는다. 그리고 계란 노른자로 "한림계"라는 세 글자를 써서 앞쪽에 둔 다음 닭 국물과 버섯, 새우를 곁들여 찐다. 이렇게 만든 닭 요리는 모양이 이쁘고 맛 또한 일품이다. 사서 기재에 의하면 당(唐, Tang)조 시인 이백은 26살에 안육에 와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는 안육에서 많은 유지인사들을 사귀면서 "술로 안육에 몸을 숨기고 10년을 보냈다". 전하는데 의하면 안육에 살다가 승진한 이태백이 더 좋은 시를 많이 써서 그 재능에 감탄한 당조의 재상이 자신의 손녀를 이백에게 시집보냈다고 한다. 안육에 사는 동안 이태백은 술안주로 특히 닭요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닭 요리외에 오리, 거위, 생선, 야채요리를 많이 찾았고 쇠고기와 양고기 요리도 가끔 맛을 보았으나 유독 돼지고기요리만은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태백의 친구들은 늘 닭요리와 오리요리 등을 만들어 그의 흥을 돋구어 주었다고 한다. 후에 이태백은 조정의 부름을 받고 승진해서 안육을 떠나면서 이런 시를 남겼다. "흰 술이 익어 산속에서 돌아오니, 노란 닭이 가을을 물어 살찌도다. 동자 불러 술 덥히고 닭 잡으라 하니 어린 동자 웃으며 옷깃을 당기네." 곧 상경해 높은 직에 머물게 될 이태백의 즐거운 심정이 그대로 보이는 시이다. 한림계 닭요리는 이태백의 친구들이...
후베이요리 판다번역 2011.03.17 추천 1 조회 1989
(사진설명: 조조닭) 조조닭(曺操鷄, Caocaoji)은 삼국(三國, Sanguo)시기에 만들어진 안휘(安徽, Anhui)성 합비(合肥, Hehei)의 전통 명요리이다. 닭을 잡아 깨끗이 씻은 다음 통채로 꿀을 발라 기름에 튀기고 다시 조미료를 넣어 뼈가 물러나고 고기가 푹 익을때까지 찐다. 가마에서 꺼내면 색갈이 붉고 향이 진하며 껍질이 바삭바삭하고 기름기 나며 모양이 이쁘다. 닭다리를 흔들어 뼈를 털어내고 고기를 먹으면 그 맛 또한 일품이다. 특히 요리를 다 먹은 뒤에도 입안에 그 향이 가득 남아 인기가 좋다. 합비를 찾는 관광객들은 이 요리를 맛 보고나서 "명실공히 절묘한 요리이다"라는 평가를 내린다. 요리에 깃든 이야기를 알아본다. 삼국시기에 합비는 오(吳, Wu)나라와 초(楚, Cu)나라 인접지대에 위치해 모두가 다투는 중요한 곳이었다. 기원 208년에 조조(曺操)가 북방을 통일한 후 83만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그 때의 도읍지인 낙양(洛陽, Luoyang)을 떠나 손오(孫吳, Sunwu)를 치려 합비까지 내려왔다. 합비에 도착한 조조는 군무에 시달리다보니 병으로 몸져눕게 되었다. 주방장은 의사의 주문에 따라 닭을 잡아 닭의 배속에 중약, 술을 넣어 요리를 만들었다. 그 요리를 먹은 조조가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후에 조조는 끼니마다 그 닭요리를 찾았다. 하여 그 요리는 조조의 이름때문에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고 합비의 요리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 조조닭 요리는 합비의 명요리로 부상했는데 현지의 닭과 조조의 고향인 합비 호주(毫州)에서 나는 술, 천마(天麻), 버섯, 죽순, 산초, 계피, 파, 생강 등 건강에 좋은 18가지 재료를 가지고 만든다. 그렇게 만든 이 요리는 건강에도 좋고 영양분이 충분하고 맛 또한...
안후이요리 판다번역 2011.03.17 추천 0 조회 2438
(사진설명: 동파육 요리) 소식(蘇軾, Sushi)의 호는 소동파(蘇東坡, Sudongpo)이다. 그는 중국 북송(北宋, Beisong)시기의 정치가와 문학가로 시문과 서예, 그림에 모두 능할 뿐만 아니라 의학과 고고학, 수리 등 분야에서도 다양한 재능을 보였다. 또한 건강식과 조리에도 연구가 깊어 음식맛을 볼줄 알고 음식을 만들줄도 알아서 유명한 요리학자와 식도락가로도 불리운다. 그 때문에 동파로 명명된 요리가 아주 많고 그와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지금도 많이 전해진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동파육(東坡肉, Dongporou)이다. 약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소동파가 직접 만든 동파육은 현재 중국 전역에서 명 요리로 부상했다. 1080년 소동파는 조정의 한 사건에 연루되어 호북(湖北, Hubei) 황주(黃州, Huangzhou)로 좌천되었다. 황주에서의 소동파의 생활은 생계가 어려울 정도로 아주 힘들었다. 때문에 소동파는 친구의 도움으로 황주 동쪽 성밖의 버려진 땅을 받아 그 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황주성안에서 성밖으로 다니려니 힘들어서 소동파는 그 땅의 언덕진 곳에 초가집을 지어놓고 벽에 설경그림을 그려붙이고는 이름을 "동파설당(東坡雪堂)"이라고 했다. 소동파는 늘 이 동파설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장기를 두고 시를 쓰고 혹은 술을 마시거나 요리를 만들면서 자신의 실의를 달랬다. 황주는 물산이 풍부하고 돼지고기가 많이 나서 돼지고기 가격도 저렴했는데 소동파는 또 돼지고기를 아주 좋아해 늘 돼지고기를 가지고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었다. 어느 날 소동파의 집에 손님이 와서 소동파는 온갖 양념을 한 돼지고기를 가마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 약한 불로 끓이면서 고기가 익는 동안 손님과 장기를 두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장기에 정신이 팔려 가마에서 고기가...
기타 판다번역 2011.03.17 추천 0 조회 1496
(사진설명: 동파어) 생선요리 "오류어(五柳魚, Wuliuyu)"는 절강(浙江, Zejiang) 항주(杭州, Hangzhou) 서호(西湖)일대의 명요리이다. 오류어는 맛이 싱싱하고 향이 짙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요리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류어를 일명 동파어(東坡魚, Dongpoyu)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소동파(蘇東坡, Sudongpo)는 송조(宋, Song)조때의 유명한 정치인이면서도 식도락가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어느날 소동파는 주방장을 시켜 생선요리를 만들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란 나고 향이 코를 찌르고 버드나무잎같은 무늬가 저며있는 생선요리를 막 먹으려 하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소동파의 지기인 불인(佛印, Foyin)스님이 온 것이었다. 소동파는 "이 스님 발 한번 길다, 오늘 생선을 먹지 못하게 놀아보자"라고 생각하고 손님이 방안에 들어서기전에 생선을 서가위에 올려놓았다. 불인스님은 사실 창밖에서 이 모든것을 지켜보고 "어디보자,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스스로 생선을 내놓게 할테다"라고 생각했다. 소동파는 모르쇠를 놓으면서 웃음을 띠우고 불인스님에게 자리를 권했다. "스님께서는 절에서 경을 읽지 아니하고 어이하여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그러자 불인스님이 대답했다. "모를 글자가 하나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소동파 왈: "어떤 글자입니까?" 불인스님 왈: "성씨로 쓰이는 소(蘇)자를 어떻게 씁니까?" 출처: 중국국제방송국
저장요리 판다번역 2011.03.16 추천 0 조회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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